다시 만난 '치즈'
늘 누구보다 가까이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아 궁금했다.
그럴 때마다 '치즈'는 '엄마'에게 입덧을 선물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내곤 했다.
임신 초기 나의 입덧은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냄새와 소화불량.
어느 날 냉장고를 청소했는데도 계속 안에서 역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상한 냄새가 나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남편은 별 이상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냉장고 냄새에 이어 음식 조리할 때 나오는 여러 냄새에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덕분에 임신 초기 식사 준비는 모두 남편이 도맡아 하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우리가 사랑하여 마지않는 커피 향도 내겐 그저 끔찍한 '사약'일뿐이었다. 모카포트든 캡슐커피든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이 일하며 커피를 마실 때마다 나는 작은 방으로 도망쳤다.
온갖 냄새에 속이 안 좋다 보니 자연스레 입맛도 떨어지고 소화도 안 되기 시작했다.
나의 임신 초기 식단은 산모용 영양제와 오렌지 주스, 그리고 최소한의 죽 종류로 채워지고 있었다. 일반식을 먹을 때도 평소보다 반 수준으로 먹으며 호르몬에 시달리는 위장을 달랬다. 조금만 더 많이 먹으면 소화가 안 되고 화장실로 달려갔기 때문이었다.
8주 차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하기 시작한 구토는 11주가 되면서 두세 번으로 늘어났다. 몸무게도 임신 이전에 비해 (아주 적지만)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혹시 아기에게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라며 남몰래 불안해 했다.
몸이 편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몸이 불편하면 마음이 편한.
그런 날들이 반복되던 중, 어느새 다음 초음파 예약일이 다가왔다. 또 비가 오던 늦가을 날씨였다.
그날의 담당의는 조산사 M. 어떻게 지냈냐는 이야기에 입덧 이야기를 꺼냈다. 예상했던 대로 M은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다행히 몸무게가 과도하게 빠진 편은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혈압을 재고 나서 진료실 침대에 누워 복부 초음파를 시작했다. 처음 하는 복부 초음파였다. 한국 건강검진 때는 차디찬 젤이라 약간 긴장했는데 의외로 초음파용 젤은 의외로 따뜻해서 기분이 좋았다.
조산사 M은 태아의 크기가 4.7cm가량으로 추정된다며 이제부터는 이 기준에 맞춰서 출산예정일을 이야기하자고 이야기했다. 이전 추정일보다 이틀 앞당겨졌다.
전날 여러 초음파 영상을 보면서 예습한 덕분일까, 아니면 '치즈'가 그새 많이 큰 덕분일까. 머리, 심장, 팔, 다리를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어서 신기했다. 특히 우리가 탯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태아의 다리라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많이 자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길다고?)
게다가 어찌나 요리조리 움직여대는지 세상에 나오자마자 여기저기 휘젓고 다닐 것만 같았다.
꼬물대는 팔다리와 심장 박동을 가만히 보고 있던 중, 내 눈에는 다리 사이의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본 '그것'이 '그것'이 맞는 건지, 11주에도 성별이 보일 정도로 생식기가 발달하던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영상에서 단서를 잡아보려고 눈을 크게 뜨고 구석구석을 살펴봤다. 머리가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남편에게 내가 본 것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남편은 전혀 보지 못했다고 이야기했다. 어떻게 그게 안 보일 수가 있지? 의문을 가지며 집에 와서 성별에 대한 내용을 검색해 보았다. 역시, 여러 곳에서 11주는 아직은 태아의 성별을 알기 어려운 시기라고 했다.
이후 정밀초음파 때 그 자리(?)를 유심히 보니 아마도 내가 본 건 척추 마지막 꼬리뼈지 않았나 싶다.
집에 오면서 JUMBO(네덜란드 슈퍼마켓 체인)에 가서 방울토마토를 사 왔다. 뭔가 건강한 걸 먹여주고 싶은 마음에. 깨끗이 씻은 토마토를 몇 알 먹으면서 초음파 사진을 유심히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래, 이 구역질과 나른함, 피곤함이 괜한 게 아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