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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며 그리며 인도네시아
19화
그래, 그래, 조금씩......
by
파란 해밀
May 2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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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의 일정에 여유가 있어서 뭘 할지 알아보다가 클룩에 코코넛 오일을 만드는 클래스가 있는 것을 알았다. 현지인 집에서 하는 과정인데 보자마자 관심이 갔다.
그러나 정보 내용이 상세하게 나와 있지 않아 몇
번씩 검색만 하다가 예약은 하지 못했다. 몇 시에 시작하는지, 장소까지 어떻게 이동하는지, 수업은 몇 시간 소요되는지 등 디테일한 사항이 빠져있었다.
더구나 몇 안 되는 리뷰마저 2년 전에 작성된 것이라서 과연 클래스가 제대로 운영이 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어쩔 수 없이 포기는 했지만 미련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오일을 만드는 과정도 궁금하고, 더구나 현지인 집에서 진행하는 수업이라 더 해 보고 싶었다. 혹시나 해서 우붓 시내에 있는 투어사에 똑같은 프로그램이
있는지
알아보았지만 아무 데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최악의 경우 돈을 날리더라도 신청해보기로 했다. 가격이 24,000원 정도인데 일단 예약을 해놓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다행히 늦은 저녁쯤 진행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수업이 진행되는 곳은 우붓 시내에서 꽤 먼 곳에 있어서 이동 차량을 원할 경우 250,000루피아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차량을 원하면 그쪽에서 차량 기사를 연결해서 픽업을 비롯해 수업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숙소까지 데려다준다.
다음 날 아침, 숙소에 도착한 차를 타고
40분가량 가서 어느 집 앞에 도착했다. 문 앞에는 코코넛 오일이라고 적혀 있지만 눈여겨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만큼 작은 간판이다.
부부는 우붓 시내에 있는 식당에서 일을 했지만 출퇴근으로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 일을 그만두고 4년 전에 수업을 개설해서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1년 만
에 코로나를 만나 3년 동안 묶여 있다가 이제는 다시 여행객들이 조금씩 찾아온다고 한다. 내가 간 날은 다른 신청자가 없어서 완전히 개인 수업이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주인 내외는 차와 간식을 내어왔다. 수업 방식과 코코넛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코코넛이 코코넛이라는 것 밖에 모르는 나는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그는 모든 과정을 먼저 시범을 보여주고 내가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오일을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1. 칼로 코코넛 껍질을 벗긴다
2. 과실에 홈을 내어 코코넛워터를 분리한다.
3. 껍질을 벗긴 과실을 여러 조각으로 부순다.
4. 코코넛 과육과 속껍질을 분리한다.
5. 과육을 씻은 후 강판에 간다.
6. 분리한 코코넛워터와 물, 과육을 섞는다.
7. 6의 3종을 잘 섞은 후 체에 받쳐 걸러낸다.
8. 걸러낸 액체에 생강 한 조각을 넣고 끓인다.
9. 위에 뜨는 기름 성분만 분리한다.
10. 분리한 기름을 졸여서 수분을 제거한다.
11. 찌꺼기를
걸러낸 코코넛 오일을 병에 담는다.
처음에 꺼내 놓은 작은 수박만 한 코코넛을 보았을 때는 오일량이 제법 될 줄 알았는데 최종적으로 나온 기름량은 겨우 30cc 정도밖에 되지 않아 보였다.
병의 1/3도 안 되는 양에 실망하고 놀란 속내를 알아차렸는지 주인 아낙은 어제 만든 오일이라며 병에 듬뿍 채워준다.
남편이 오일을 끓이는 동안 그의 아내가 집 구경을 시켜주겠다며 안내를 했다. 아담한 정원에는 두리안, 패션 푸르트, 오렌지 등 온갖 유실수들이 심어져 있다.
그중에서 먹어보라며 몇 개를 따서 주는데 과일을 마트나 시장에서 사지 않고, 내 집 마당에서 따 먹는 게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신기하기만 하다.
그녀가 가지고 온 걸러낸 코코넛 과육을 돼지와 닭들에게 던져주니 서로 먹겠다고 난리 북새통이다. 달콤해서 아주 잘 먹는다고 한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 재미있다.
그러고 보니 코코넛은 하나도 버릴 게 없다. 껍질은 오일을 끓일 때 연료로 쓰고, 걸러낸 과육은 짐승들에게 특별 간식으로 주고, 마지막 오일에서 나온 찌꺼기도 사람이 먹을 수 있는데 먹어보니 고소하고 맛이 있다.
그렇게 알뜰하게 모두 다 쓰이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코코넛도 소처럼 모든 걸 아낌없이 다 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모든 과정의 끝을 내고 주인 내외와 차를 마셨다. 코코넛 오일 클래스를 운영하는 건 좋은 아이디어 같다고 했더니, 그도 예전에 식당일을 하는 것보다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훨씬 좋다고 한다.
클룩 외에도 우붓 중심가에 투어상품으로 홍보를 하면 더 많은 손님들이 오지 않겠느냐고 지극히 세속적(?)인 질문을 했다
.
그랬더니 그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도 힘들다며 크게 욕심 내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지만 그의 생각에 엄지척을 마구 날려 주었다.
돈벌이가 되면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랬다고 대부분 욕심을 내기 십상인데, 그는 그가 지키고 싶은 분명한 선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부부의 긴 배웅을 받으며 나도 답례로 오래오래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의 신조대로 일과 삶의 조화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알콩달콩 예쁘게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그의 집 지붕 꼭대기에 높이높이 걸쳐놓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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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해밀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어느 날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낯선 50대 중년과 마주했다. 어이없어 한동안 주저앉아 있었다. 여행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조금씩 그 동굴을 혼자 걸어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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