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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Oct 13. 2020

(일상) 내 남편으로 산다는 것은

남편의 숙명


2020. 10. 13.  남편의 숙명

 

며칠 전 우연히 TV 채널을 돌리다가 미우새 재방송을 보게 되었다. 김종국의 복근에 수건을 문지르며 빨래를 하는 장면이었다. 순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이 세상에 또 있구나 하는 동지의식과 더불어, 내가 이상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누명을 몇십년만에 벗은 것 같아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20여 년을 훨씬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은 휴일이라 남편도 나도 소파에 앉아 느긋한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쉬는 날이라 남편은 면도를 하지 않고 있었다. 수염이 많이 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토요일부터 출근을 하지 않았으니 금요일 아침 면도 후 하지 않은 상태라 일요일 오후에는 제법 덥수룩하게 수염이 자라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가기 전부터 친정아버지는 수염이 거뭇거뭇 나오면 보드라운 내 손을 잡아다가 턱수염에 대고 비비곤 하셨다. 그러면 아프다고 앙탈을 부리는 나의 반응이 재미있으셨는지 싫다는 나를 붙들고 억지로 문지르곤 하셨다. 그 후로도 한참 더 자랄 때까지 나는 아버지의 수염 폭행(?)에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남자들의 턱수염은 언제나 따갑고 아픈 수세미 같다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 그것이 남편 것이라고 해서 다를 이유는 없었다.





휴일 오후가 너무 느긋해서였을까? 소파에 앉은 남편의 옆모습을 빤히 쳐다보다가 덥수룩하게 나와 있는 수염에 눈이 갔다. 제법 촘촘하게 삐져나온 것이 눌어붙은 찌든 때도 벅벅 벗겨내는 철수세미처럼 강해 보였다. 문득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자기 수염에 감자 한 번 갈아보면 안 돼?"
"뭐라고? 이 사람이!" 하며 남편은 벼락 같이 소리를 지른다.
"갈릴 것 같은데?"
"이 사람이, 남편 몸을 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니야"

남편은 조선시대에서 곧장 우리 집으로 넘어온 사람이다. 시대적 배경만 다를 뿐 사고방식은 옛날 그대로이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서 상하게 하면 안 된다.

서방의 신체를 귀하게 여겨야지 그렇게 장난감처럼 다루면 안 된다.

누가 남편 수염에 감자를 가느냐? 등등...... 남편은 한도 끝도 없는 이유를 늘어놓았다.

"이건 장난이 아니라 뜨거운 향학열이지 과학탐구를 위한. 정말 감자가 갈릴 것 같다니까? 딱 한 번 만 갈아보자~~~~"
"에이, 안 돼. 그리고 수염에 감자 안 갈려"

절대 안 된다는 논쟁에서 감자가 수염에 안 갈린다고 말하는 순간 남편은 이미 반은 넘어온 상태가 되었다. 그즈음에서 갈린다, 안 갈린다로 집중 공략을 하면 된다. 희망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수염이 이렇게 힘이 센데 감자가 갈리지 왜 안 갈려?"
"아이 안 갈린다니까"
"갈린다니까? 그러니까 한 번 갈아보면 되잖아"

그렇게 둘이서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된다, 안된다, 갈아보자, 안된다, 딱 한 번 만이다, 그래도 안 된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어려운 것도 아니고 수염에 감자 한 번 문질러보자는데 산 사람 소원 하나 못 들어주냐?

끝없는 파상공세로 설득과 애원, 회유와 유혹....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했다.

"에잇! 그럼 한 번 해 봐"

남편은 옆에 붙어 앉아서 전혀 물러날 기색이 없는 나한테 질렸는지, 아니면 그동안 살아본 경험을 토대로 '이 여자, 궁금해서 하고 싶은 건 끝내 하고 마는 사람이더라'는 과거의 사례로 보아 여기가 포기해야 할 포인트라를 것을 알았던지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고마워~~~~. 내가 얼른 감자 깎아 올게"

남편 마음이 변할까 봐 주방으로 쏜살같이 달려가 감자 하나를 후딱 깎아서 갈기 좋게 반쪽으로 나누어 가지고 왔다. 남편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아랫 턱을 순순히 내어주었다.





경건하고도 자신만만하게 감자를 남편 턱수염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내가 너무 살살 문질렀나? 힘을 좀 더 주었다. 마찬가지였다. 계속 문질렀지만 감자는 전혀 갈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 안 갈리네?"
"아, 그렇다니까"
"잠깐만 다시 한번 더 세게 갈아볼게"

그 후로도 힘을 주어 더 문질러 보았지만 끝내 감자는 갈리지 않았다.

"이상하네. 감자가 좀 단단해서 그런가? 그럼 사과로 한 번 해보자"
"이 사람이, 사과도 안 갈려"
"잠깐만 있어봐 봐. 사과 가져올게"

이왕 시작한 일이라 사과의 시도는 남편의 허락 따위는 필요하지 않았다. 다시 주방으로 달려가 부리나케 사과를 깎아왔다.




다행히 남편은 모든 걸 포기했는지 더 이상 반항하지 않고 그대로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얘기했다.

"턱 밑에 그릇이라도 받쳐야 되는 거 아냐? 사과 갈리면 물이 뚝뚝 떨어질 텐데"
"아이 안 갈리니까 그냥 하기나 해"
"그럼 젖어도 모른다"

한 손으로 남편의 뒷목을 야무지게 부여잡고, 또 다른 한 손으로는 사과를 잡고 갈기 시작했다. 믹서기까지는 아니더라도 강판에 갈리는 것처럼 금세라도 사과 물이 뚝뚝 떨어지며 시원하게 갈려 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그것 봐, 이렇게 잘 갈리잖아' 하며 의기양양한 한 판 승을 선언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했다.



"엥? 왜 사과도 안 갈리지?"
"그러게 내가 안 갈린다고 했잖아?"

그러고도 한참을 더 문질러댔다. 수염이 사과를 갈지 않으면 힘으로라도 으스러뜨릴 심산으로 세게 문질러 보았지만 사과는 누렇게 색만 변해갈 뿐 끝내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안 갈리네........ㅠ.ㅠ"
"그것 봐. 안 갈리다고 했잖아. 가서 수건이나 갖고 와"

느릿느릿 수건을 갖다 주었다.





그날 눈으로 뻔히 확인했으면서도 해소되지 않은 의문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빳빳하고 거친 수염에 감자는 아니더라도 사과는 갈릴 것 같은데, 사람을 바꾸면 혹시 갈리지 않을까 하는 미련은 아직도 조금 남아 있다.


그렇다고 지나는 아무 남자나 붙들고 턱수염 좀 대 달라고 할 수도 없고, 풀리지 않은 미제 사건(?)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남편은 그 일이 있기까지 신혼 초부터 숱한 고난(?)을 겪어야 했다. 수북이 난 다리털에 샴푸로 씻겨보고 싶다는 요청에 다리 한쪽을 내어 주어야 했고, 나보다 앞서 계단을 오를 때마다 똥침을 찔러대는 통에 똥꼬가 편한 날이 없었다.


참빗으로 겨드랑이 털을 빗겨보고 싶다고 했을 때도 몇 날 며칠에 걸친 거센 항쟁(?)을 거듭했지만 결국 그는 한쪽 팔을 번쩍 들어주어야 했다.


주방에서 아침 준비를 하다가도 라디오에서 멋진 발라드 곡이 나오면 그럴 때마다 나는 남편을 목청껏 불러댔다. 그러면 그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건 총알 같이 튀어나와 춤이라면 잼병이면서도 팔을 두르고 아침부터 마누라와 짧은 엉거주춤(?) 부르스를 추어주어야 했다.


어쩌다 화장실에 앉아 있는 날이면 여덟 살배기 큰 아들에게 대리 춤을 추게 해서라도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다.


유독 바람 불고 흐린 날을 좋아해서 그런 날이면 바람나고 싶다는 마누라에게 "서방 하고 바람피워, 서방이랑 바람피워"하며 나의 욕정(?)을 구슬려 주었고,

"오늘도 바람 불고, 비 오니까 바람나지 말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시오" 하는 문자를 슬며시 보내주곤 했다.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아 기이한 행동도 많았고, 질문도 유난히 많아 끝없이 왜?를 달고 살았다. 그랬던 나를 만나 남편으로 살아가면서 그도 참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했던 요청이 한낱 장난이 아니라 탐구열(?)에 불타는 순수한 호기심이었음을 그도 잘 알 것이다.

되돌아보니 벌써 아주 오래전 일이다. 온갖 것이 다 궁금하고, 온갖 것을 다 해보고 싶었던 향학열(?)도 나이가 드니 많이 사그라진다. 역시 공부는 때가 있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젊은 날의 꽁냥꽁냥이 자꾸 생각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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