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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Oct 15. 2020

(일상)  나이테

나무도 나무도 나이를 먹는다


2011. 04. 27.  나무도 나무도


가구공방에 나간 지 한 달 열흘만에 작은 가구 하나를 완성했다. 없는 시간 짬을 내어 1주일에 겨우 하루만 가다보니 한 달을 훌쩍 넘기고서야 겨우 완성할 수 있었다. 소파 옆에 둘 협탁이다. 

몸체는 홍송으로 하고 상판과 서랍은 물푸레나무로 하였다. 평소 나무라고 하면 그저 길거리의 가로수나 정원이 있는 옆집 소나무 정도로만 알고 있던 내가 홍송, 애쉬, 자작, 오크, 앨더……를 알게 된 것도 가구를 만들면서부터이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나무와 인연이 아주 없었던 것도 아닌데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 고리가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쯤인 것 같다. 명절 때나 혹은 볼일이 있어 다니러 가시는 엄마를 따라 목재소를 하시는 큰아버지 댁에 가면 커다란 기계톱 옆에 바위만한 원목들이 높다랗게 쌓여 있었다. 

금방이라도 나무를 두부처럼 썽둥썽둥 잘라 낼 것 같은 톱날이 무섭기도 했지만 언니, 오빠들과 집체만한 원목 위를 뛰어다니며 놀았던 그 때는 그것이 나무라기보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놀이터였다.

 


처음 만든 협탁



큰아버지댁에 갈 때마다 목재소에서 노는 시간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어린 여자 아이를 나무는 묵묵히 받아주었다. 

그래서인지 큰아버지 집이나 목재소 구조는 잘 생각나지 않아도 맨 허리를 놀이터로 내어준 나무의 색과 군데군데 곱사등처럼 튀어 오른 옹이자국은 지금도 기억이 선명하다. 

오랜 시간 햇빛과 바람에 몸을 말리면서 떠나온 자리가 그리워 그랬는지 나무는 제 속을 군데군데 가르며 야위어 갔다. 





어느 날 저녁, 아버지께서 커다란 책꽂이를 만들어 오셨다. 

흔히 책상 위에 놓는 작은 것이 아니라 내 키보다 훨씬 큰 책꽂이였다. 크고 작은 책과 두꺼운 앨범도 너끈히 꽂을 수 있게 선반의 폭과 모양을 다양하게 만든 것이었다. 아버지는 이따금 걸상과 자잘한 소품을 만들어 오셨는데 작업장이 딸린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작업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같이 놀아줄 언니, 오빠는 학교에 가고 없고, 앞마당에서 혼자 그네 타는 것도 시들해지고, 텃밭 귀퉁이에 심어놓은 꽈리를 따서 불고 노는 것도 더 이상 신이 나지 않으면 슬며시 아버지 작업장에 놀러가곤 했다.



두 번째 수납함


막내딸이 그곳에 온 것을 아는지 모르는 지 아버지는 연신 하시던 작업에만 몰두하셨다. 

노란 몽당연필을 귀에 꽂은 채 대패 날을 코앞에 대고 들여다보시기도 하고, 진한 잉크를 머금은 먹줄을 퉁기시는 모습은 어린 딸아이의 눈에도 무척 진지해보여 선뜻 아버지를 부르지도 못하고 몇 걸음 뒤에 서서 나도 언젠가 저 먹줄을 한 번 퉁겨봐야지 하는 생각만 하다가 슬그머니 작업장을 빠져나오곤 했다. 


아버지의 손끝에서 튕겨나간 먹줄은 나무 위에 선명한 푸른 직선을 찍어놓고 다시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것을 지켜보며 나도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단 한 번도 그래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자리를 비우신 빈 작업장에서 몇 차례의 기회가 있었지만 팽팽한 먹줄의 긴장과 아버지의 불호령이 두려웠는지 먹줄을 한동안 바라보고만 있다가 돌아서곤 했다. 



세 번째 수납장


아버지는 그곳에서 가끔 집안 살림에 쓰이는 소품들을 만들어 내오셨다. 그래서 아버지가 작업장에서 잠시 머무르기만 하면 물건이 뚝딱 만들어지는 줄 알았다. 

1밀리, 2밀리 계산이 틀려도 안 되고, 반듯한 직선에 한 치 오차가 있어도 안 되며, 대패나 끌날의 정교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 지 40년이 훨씬 지나 내가 직접 가구를 만들어 보고서야 알았다. 

먹줄 대신 연필로 선을 그으며 연필을 귀에 꽂아 보고, 대팻날에 몇 번이고 손가락도 베었다. 일회용 밴드를 붙였는데도 얼룩덜룩 나무에 묻은 피를 보며 아버지도 손가락을 베이기도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네 번째 수납장



위치를 바꾸느라 책꽂이를 옮길 때마다 유난히 무거운 책꽂이에다 대고 지청구를 하던 둘째언니의 푸념이 지금 생각하면 집에 사용할 가구라 좋은 나무로 하신다고 아버지는 하드우드로 만드셨던 것 같다.

 나 역시 이왕이면 좋은 나무로 하려고 값 비싼 앨더와 애쉬로 어렵게 5단 서랍장을 만들었더니 3층까지 들어 올리느라 힘들었다고 다시는 가구를 만들어 오지 말라는 남편의 구박을 들어야 했다. 

그때 둘째언니가 했던 푸념을 아버지가 듣지 않으셨기를 바란다. 



다섯  번째 CD장



처음 만든 협탁을 공방에서 가져오던 날,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크기가 애매하여 승용차 뒷좌석에 겨우 싣고 혹시 모서리가 찍히기라도 할까봐 아스팔트 도로의 작은 홈도 피해가며 신행길 나선 신부처럼 조심조심 달렸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집에 도착해서는 차 밖으로 꺼내지지 않아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한참동안 낑낑거리고 있었다. 때마침 담배를 피우러 나온 아랫집 아저씨가 도와주어 겨우 꺼낼 수 있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황급히 하고는 묻지도 않았는데,

“이것, 제가 만든 거예요” 하며 자랑을 했다. 
“아, 그러세요?” 

하는 아저씨의 놀란 눈빛이 어둠 속에서 가로등처럼 빛난다고 혼자 생각하며 협탁을 들고 단숨에 3층까지 올라갔다. 



여섯 번째 선반장


집 안에 가구를 들여놓고 한참동안 앉아 처음으로 나이테를 꼼꼼하게 들여다보았다. 넓었다, 좁았다, 단 한 줄도 같지 않은 굽이진 나이테는 나무도 세월을 견디는 것이 쉽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다.  

이미 오래 전, 땅에서 뿌리를 거두고도 나무는 물을 먹고 숨을 쉰다고 하니 나무에서 목재가 되고, 목재에서 가구가 되면서 형태만 바뀌었을 뿐 나무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곱 번째 5단 서랍장



물이랑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이테가 질곡의 삶을 산 노인네 손등에 툭 튀어나온 힘줄 같아서 가만가만 쓰다듬어 보았다. 

한 줄 두 줄 이어진 나이테가 그저 한 해, 두 해 세월만 보낸 표식이 아니라 그 속에는 오래도록 곰삭은 나무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것일 것이다.


목재를 재단할 때 어떤 것은 예쁘지 않아서 싫다고 말했던 못생긴 나이테조차 나무는 사력을 다한 삶이었을 텐데 무늬만 보고 함부로 말 한 것 같아 나무한테 자꾸 미안해진다. 





이제는 길을 가다가도 아무렇게 버려진 나무 동강에 눈이 가고, 동네 합판창고에 있는 얇은 합판에도 시선이 머문다. 한 때는 땅 속 깊이 뿌리를 박고 풍성한 초록으로 산을 이루었던 나무. 

무성했던 가지를 내리고 제가 섰던 자리를 떠나와 몸을 벗기어 몽당연필처럼 작아지고 판지처럼 얇아져도 고스란히 나이테를 간직하고 있는 나무.

지나는 이의 발길에 이리저리 차이면서도 끝내 나이테를 떨구지 않고 있는 나무를 보며 나도 내 나이테를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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