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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Nov 02. 2020

(일상)
​이렇게 가고 말 것을......

속절없는 이별



2020.11.02.   이렇게 가고 말 것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찌감치 출근을 했다. 커피 한 잔을 내렸다. 아무도 오지 않은 텅 빈 사무실을 커피 향이 가득 채운다. 이것저것 업무 준비를 하다 보니 9시가 가까워진다. 직원들이 하나, 둘 출근을 한다. 

책상 정리를 하고 업무 시스템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카톡이 왔다. 이 시간대에 한결같이 아침 편지를 카톡으로 보내는 수영회원이 있다. 늘 보내는 그 편지려니 했는데 오랜만에 친구한테서 연락이 왔다. 

"애들 아버지가 죽었다"
'.............................'





친구는 8년 전에 이혼을 했다. 남편은 이혼할 즈음, 10년 전부터 알고 지낸 여자가 있었다. 친구는 감쪽 같이 몰랐다. 25년을 넘게 살도록 남편은 단 하루도 자정을 넘기고 들어온 적이 없고, 술을 과하게 마시지도 않는다. 

부부는 시골에 있는 텃밭을 가꾸며 주말을 함께 보냈다. 농사일을 싫어하는 친구와 달리 남편이 그 일을 더 좋아했다. 힘들어서 하기 싫다는 친구를 굳이 데리고 가서 그늘에 앉혀놓고 땀을 뻘뻘 흘리며 혼자 일을 하는데도 그는 좋아라 했다. 

"내가 없으면 당신 혼자 어떻게 살겠어?"
하며 집안 청소나 화분 관리 등 집안의 자잘한 모든 일들을 살뜰히 살피던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런 그에게 10년을 함께 한 여자가 있다는 것을 친구가 알았다. 10년 동안 당한 기만이 억울하고 분해서 절대 이혼할 수 없다고 했다. 감쪽같이 속이고 배신한 그 교활함에 치가 떨려서 집에 들어오는 남편을 볼 때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솟구쳤다. 

사는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채로 친구 부부는 어근버근하며 지냈다. 제발 이혼해 달라는 남편과 절대로 이혼 못해 준다는 친구는 악몽 같은 시간을 버티고 있었다. 

"단 3일을 살다 죽어도 그 여자와 한 번 살아보고 싶다"




"너 이혼할 마음이 있어?"
"아니, 절대로 못 해. 누구 좋으라고?"
"그럼 이혼 안 할 거야?"
"응. 절대로 안 해. 난 이혼녀 딱지 붙이고는 못 살아"
"그럼 네 남편을 품어. 집에 들어오면 마음 붙일 자리를 만들어줘야 오지. 그 사람도 이성으로는 그게 길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을 거야. 마음이 자꾸 흔들려서 그렇지. 그러니까 그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네가 잡아줘"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그 인간 얼굴을 보면 또 열이 뻗쳐서......"
"그게 그렇게 쉽기야 하겠어? 네 마음도 지옥이지. 그래도 네가 이혼을 안 하겠다면 방법은 그것뿐이야"
"............... 알았어. 한 번 해 볼게"

이혼하지 않을 거라며 버티는 친구가 찾아오면 남편 자리를 만들어주라고 해서 돌려보내곤 했다. 며칠 안 가서 친구는 또 열을 받아서는 달려왔다. 그 인간을 쳐다보면 도저히 화가 나서 살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럼 이혼 해. 3일을 살다 죽어도 그 여자와 살고 싶다고 하잖아. 뭘 더 기대하겠어? 그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너를 더 아껴. 이혼은 누구 좋은 일 시키는 게 아니라 너를 위한 길이야"




친구는 그 후 생각을 정리해서 결국 이혼을 했다. 아파트 명의를 친구 앞으로 하고, 위자료와 아이들 양육비를 받기로 하고 힘든 싸움의 끝을 냈다. 그랬다고 모든 감정이 다 정리되는 건 아니었다. 한동안 친구는 남편의 부재로 인한 심한 상실감을 앓았고 배신의 상처는 그녀를 오랫동안 힘들게 했다. 

"내가 왜 진작 이 좋은 걸 안 해주고 그렇게 버텼을까? 막상 하고 나니까 이렇게 홀가분한 걸, 그 생지옥에서 버텼으니......"

시간이 약이었을까? 차츰 친구는 안정을 찾아갔다. 

건강한 웃음을 되찾고 활기찬 생활을 하는 친구를 보는 내 마음도 편안해졌다. 만날 때마다 간간히 남편에 대해 다 가시지 않은 원망과 미움을 내뱉긴 했지만, 그것은 그녀가 받은 상처가 그만큼 커서 그럴 것이다. 





얼마 전, 친구 아들이 결혼을 했다. 이혼한 부부가 나란히 자리해야 하는 것을 무척 어색하고 불편해했지만 친구는 무사히 아들 결혼식을 잘 치렀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환한 웃음으로 함께 하객을 맞이 하고, 식이 끝나자마자 다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 거지 같은 상황도 친구는 꿋꿋이 해냈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식사자리를 마련한다며 아들 내외가 친구 부부와 딸을 함께 초대했다. 따로 하기도 그렇고 남편 혼자 불러서 식사하기도 어색할 것 같다며 다 함께 모였다. 남편은 오랜만에 가까이에서 본 딸의 손을 잡고 싶어 했으나, 끝내 딸은 아버지를 온몸으로 거부했다. 이미 성인이 되었으나 지난날 아버지가 저지른 부정은 아직도 그녀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대한 산이었다. 

"요즘 심장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나더러 오늘이나 내일도 죽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네"
                                  


                                                          

그날 남편이 그런 소릴 하더라며 한 달 전 만났을 때 친구가 이야기했다. 

"그 소리 들으니까 고소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너 아직도 전남편에 대한 미련이 있는 거야?"
"미련은 무슨?"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해?"
"미우니까 그렇지"
"미련이 없으면 미움도 없어"

일찌감치 친구가 마음 편히 남편을 놔주길 바랬다. 미워도 말고, 아파도 말고......

사람의 인연이 어디 사람 힘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이던가? 그럼에도 친구는 8년이 넘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앙금을 다 털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 남편은 친구에게 뜨거운 감자 같은 존재였다. 뱉지도 못하고, 다 삼키지도 못한 채 아직 그 친구 가슴속 어딘가에 걸려 있는데 그는 속절없이 훌쩍 떠나갔다. 8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딸은 아버지를 향해 "왜 그랬어요?"하고 악다구니하며 한 번 따져 묻지도 못했는데, 그래서 원망을 털어내지도 못하고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남은 것은 또 친구의 몫이고 각자 남은 자의 몫이다. 

3일을 그 여자와 살아 보고 싶다는 그 남자는 8년 가까이 그녀와 살았으니 행복해하며 갔을까? 
우리는 한 사람도 제대로 다 사랑하지 못하면서 왜 또 다른 사랑을 꿈꾸는 건지......

온종일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떠난 그 사람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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