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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 해밀 Nov 05. 2020

(일상) ​남편의 바람 냄새

남편에게서 바람 냄새가 난다


2020. 10. 20. 바람 냄새




겨울 어느 날, 그날도 남편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귀가가 늦었다. 늘 그렇듯 자정을 훌쩍 넘기고서야 들어왔다. 다른 날에 비해 많이 취한 것 같지는 않다. 그게 어디냐 싶다. 덜 취한 만큼 내가 해야 하는 치닥꺼리가 줄었으니 그저 땡큐다.


부산 똥바람이 많이 추웠는지 바람을 맞고 온 그는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들어와 안방으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갔다. 그는 휴대폰과 지갑을 주머니에서 꺼내 화장대 위에 꺼내놓고 있었다. 입고 있는 패딩점퍼를 벗으면 받아주려고 그의 뒤로 다가갔다.





점퍼를 아직 벗지 않은 그를 잠시 뒤에서 안으며 등에 내 코를 박았다.


"으~~~~~~음! 바람 냄새!"
"........................ 으으으으응? 뭐라고?"
"바람 냄새, 자기 등에서 바람 냄새가 난다고"
"바람 냄새?"
"겨울바람 냄새 "





바람 냄새가 난다는 내 말에 신랑은 황급히 몸을 뒤로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불 꺼진 방 안으로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들어와 비추고 있었지만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난 이 겨울바람 냄새가 참 좋더라. 밖에 나갔다 오면 자기 옷에서 겨울바람 냄새가 나"
"어--------- 그래? 난 또 뭐라고"


그제야 그는 다시 돌아서서 소지품 정리를 마저 했다.





추위는 죽어라고 싫어하지만 나는 옷에 묻은 겨울바람 냄새가 참 좋다. 그래서 겨울에 남편이 외출했다가 들어오면 가끔 등에다 코를 박고 한동안 바람 냄새를 맡곤 했다. 향수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 안에 알싸한 겨울 정취가 있고, 길거리 풍경도 들어있다. 차가운 청량감과 더불어 영화 장면 같은 아늑한 겨울이 그려진다. 다른 옷보다 질감이 매끄러운 패딩점퍼가 적격이다. 낮보다 밤에 더 진하게 느낄 수 있다.




남편은 밤거리를 훑으며 오느라 바람을 잔뜩 묻혀왔다. 바람 냄새가 난다는 말에 왜 그토록 눈빛이 흔들렸는지 그날도, 그 후로도 물어보지 않았다.

흔들리던 그의 눈빛은 내 가슴에 남아 있고,
흔들렸던 그 눈빛의 이유는 그의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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