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했던 여행이 너무 계획한 대로 순조로웠던 걸까? 지금쯤 예약한 페낭의 호텔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을 시간에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밤 12시에 무슨 끼니인 줄도 모르는 빵 한 조각으로 허기를 달랬다. 한국을 출발하고 처음으로 먹는 음식이다. 몸이 피곤하니 입맛도 없다.
지랄 맞은 스콜성 비 때문에 쿠알라룸푸르에 착륙하지 못하고 다른 도시로 가서 급유하고 오느라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다. 쿠알라룸푸르 도착 후 페낭으로 곧바로 환승하게 되어 있어서 비행기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빨리 비행기가 이륙하기를 기다렸지만, 에어아시아 비행기는 태연자약하기만 했다.
승무원에게 내 상황을 설명했더니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면 연결 편을 해결해 줄 것이며 직원들이 상세하게 안내해 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되었다. 몇 시간이 지나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했으나 이미 페낭행 비행기는 날아간 후였다.
하는 수 없이 대체 비행기를 타야 했다. 비행기가 착륙한 후에도 아무런 안내 방송도 없고, 입국장으로 와도 누구 하나 안내하는 직원도 없다. 인포에 가서 상황 설명을 했더니 어느 장소로 가라고 알려준다. 그곳에는 나 같은 여행객들이 발권을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다.
거의 4시간을 기다린 끝에 겨우 내 차례가 되었다. 대체해주는 비행기가 다음 날 새벽 5시다. 속 터져 죽는 줄 알았다. 항공사가 조금만 더 신속하게 대응을 했으면 앞 비행기로 갈 수도 있었는데 느려 터진 항공사의 대응에 울화통이 치민다.
쿠알라룸푸르 공항에 도착해서 페낭행 비행기를 타기까지 10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꼴이다. 여행객들은 끝을 모르게 줄을 서 있는데 항공사 직원은 겨우 2명이 세월아, 네월아 하며 일을 처리하다 보니 승객들만 죽어난다. 이럴 때는 "빨리빨리" 한국이 절로 생각난다.
덕분에 계획에도 없는 공항 노숙을 해야 한다. 눈은 구 만리나 기어 들어가고, 몸은 천 근 만 근으로 예약한 호텔을 멀쩡히 놔두고 노숙자처럼 내 몸 하나 쉴 자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 적당히 궁둥이 붙이고 있을 자리 하나를 마련해서 앉았지만 선뜻 잠이 오지 않는다. 벽에 기대고 앉아 비행기 탑승까지 꼬박 밤을 새운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될까? 시간은 속도 없이 참 많은 것을 잘도 용서해주더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