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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페낭 일기 02화

(말레이시아) ​
강제 솔로 호캉스?

by 파란 해밀


2019. 03. 02. 바투페링기에서 솔로 호캉스




비로 인해 쿠알라룸푸르에서 환승할 페낭행 비행기가 미루어져 공항에서 밤을 꼴딱 새웠다. 뜬 눈으로 노숙을 한 덕에 천 근 만 근 같은 몸을 이끌고 다음 날 아침 허깨비가 되어 페낭의 바투페링기에 있는 숙소에 오전 7시경에 도착했다.


체크인을 하는데 말할 힘도 없다. 숙소에 도착해서도 뭔가 덜 풀린 억울함이 있어서 프런트 직원에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쫑알쫑알 일러바쳤다. 직원이 웃으며 위로의 말을 건넨다. 누군가의 위안이 간절히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심통이 조금 가라앉는다.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시체처럼 쓰러져 두 시간가량 잠을 잤다. 몸은 피곤한데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아 식당으로 내려와서 점심을 주문했다. 잠을 좀 잤는데도 밤을 새운 여파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도저히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수영이나 하면서 숙소에서 쉬기로 했다.



흔히들 한다는 "호캉스"라는 것을 강제로 하게 되었다. 혼자 여행하면서 호캉스를 하기에는 뭔가 어색할 것 같기도 하고, 뽈뽈거리고 다니기에도 부족한데 호캉스는 왠지 밑지는 기분이어서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치로만 여겼다.


어차피 혼자 하는 여행이니 내 맘대로 일정이라, 이번 기회에 호캉스라는 것을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나니 비행기 지연으로 인한 원망도 차츰 잦아든다.



점심을 시켜놓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데 새 한 마리가 날아와 테이블 합석을 요구한다. 이 숙소에는 온종일 새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언제 들어봤나 싶은 새소리에 절로 마음이 들뜬다.



합석도 모자라 녀석이 겁도 없이 내 밥을 탐내고 있다. 견물생심이라더니 사람이나 짐승이나 본능 앞에서 속내를 감출 수 없기는 매한가지인가 보다. 음식을 바라보는 녀석의 노란 부리에 심오한 갈등(?)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점심을 먹고 나니 조금 정신이 든다. 바투페링기의 느릿느릿한 하루가 시작한다. 페낭 바투페링기에서는 어떤 여행이 될지 사뭇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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