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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정순 May 05. 2024

보톡스보단 외국어

중년 덕후의 슬기로운 언어생활

1. 엄마로만 살기 싫어서


또 하나의 언어를 만난다. 또 하나의 페르소나가 내게 온다. 페르소나는 가면이다. 내가 보는 세계다. 

남자도 마찬가지지만 여자도 결혼과 동시에 써보지 못했던 페르소나를 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가면이 한꺼번에 버거운 무게로 나를 짓누른다. 딸이란 단 하나의 역할에서 한 남자의 아내, 엄마, 학부모, 며느리 등으로 신분의 혁명을 겪는다. 행복의 관문이라고 믿었던 결혼, 꿀 떨어지는 신혼은 아쉽게도 시리즈가 아닌 숏폼에 불과하다.


페르소나는 커녕 마스크 팩 하나 쓰기에도 삶은 빡세다. 마스크 팩이든 페르소나든 엄마로만 끝내기엔  내 욕망은 여전히 마르다. 그렇다고 조급해 하거나 쫄 필요는 없다. 단지 나는 사막 한가운데서 걷다가 잠시 일어나지 못한 낙타일 뿐이다. 지치고 고단한 낙타. 비록 노쇠해갈지라도 일어나서 뚜벅뚜벅 걷기만 하면 된다. 반드시 오아시스를 찾아야만 한다는 소명에서 벗어나보자. 오래도록 짓눌려 있던 마인드를 살짝 주무르고 쓰다듬어주기만 하면 된다.


나는 말하지 못한 내 언어들을 외국어로 선택했다. 완성하지 못한 자아를 한땀 한땀 나만의 바늘로 수를 놓아가고 있다. 미완의 나를 수틀 삼아 양가집 규수가 되어 조신한 자태로 수를 놓듯이 채워가고 있다. 슬기로운 언어생활 덕에. 조급하지 않게, 느긋하게. 때로는 조금 더 열정적으로, 무수리의 마인드로 씩씩하게 나아갔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갱년기 몸살을 심하게 앓고 있는 중년은 아쉽게도 마음과 몸이 합이 맞아 오붓하게 지내지 못한다. 관절염에 시달릴지라도 뚜벅뚜벅 걸어갈 수 있는 낙타로 만족한다.


25년을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조그만 교습소를 운영하며 동네 훈장노릇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천자문 대신 알파벳을 배우고, 읽고, 말하고, 쓰기를 익힌다. 점점 드문드문 해만 가는 아이들을 보며 위기에 처한 출산율을 애통해하기도 한다. 집을 나서면 바글대던 유모차 부대와 뛰어놀던 팔랑팔랑한 아이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풍경은 강산이 두번이나 바뀌었어도 어제인듯하다. 여전히 동네 선생 노릇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화들짝 놀라기도 한다.


강산은 바뀌고 아이들은 사라질지라도 나의 사생활은 변함이 없다. 언어와 잠들고 언어로 숨쉬며 공기놀이하고 수를 놓는다. 나의 유희가 업이되어 덕업 일치되어온 사생활이 그리 불만스럽진 않다. 단순하고도 단순한 나의 일상이 마음에 든다.


엄마로만 살기 싫어서 공부하고, 그걸로 돈도 벌고, 꾸역꾸역 살아왔다. 어리석은 일상과 슬기로운 일상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여왔다. 그렇게 삶은 꽤 볼만한 태피스트리를 서프라이즈로 선물해준다. 소소하지만 단단한 행복을 준다. 거품이 아닌 가성비있는 인생을 초강력 세일 상품으로 장바구니에 담아준다.


내 언어생활은 삶이란 장바구니를 한 장 한 장 쿠폰으로 적립해주었다. 어느새 풍성한 장바구니가 되었다. 그 쌓인 쿠폰으로 나는 마음껏 슬기로운 소비생활을 할 수 있다. 여행을 가고, 새로운 문화를 맛보고, 낯선 인생과 조우하고, 해보지 못한 모험을 즐기게 되었다. 오늘 하루도 즐겁게 나만의 언어생활을 꾸려간다. 실내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유투브 팟캐스트를 듣고, 즐겨듣던 내 청춘의 팝송을 이젠 눈으로 본다. 좋아하는 원서를 읽고 낭독한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퇴근 후엔 좋아하는 영화를 즐긴다. 이렇게 글까지 쓰며 내 언어생활은 완벽을 향해 간다.


슈퍼 에이지를 외치는 시대에 너무 야심찬 목표는 접는 게 좋다. 소소하게 즐기는 언어생활 가운데 나의 일상에 살이 붙고 윤이 흐른다. 오늘도 노쇠한 낙타의 발굽에 기름칠을 한다. 그것으로 대만족이다.


#페르소나 #가면 #언어 #슈퍼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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