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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정순 Jul 10. 2024

보톡스보단 외국어

중년 덕후의 슬기로운 언어생활

11. 읽다 보면 보인다


사람의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내게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행위는 '읽기'다. 읽다 보니 내가 보이고, 사람이 보이고, 세상이 보였다. 어느덧 타인과 소통하는 것보다 읽기로 나와 소통하는 일상이 편해갔다. 


'읽기'라는 행위는 고독이 수반되어야 하고 그럼으로써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다. 나를 먼저 알지 못하면 타인도, 세상도 알 수 없다. 병약했던 어린 시절 함께 뛰어놀던 동네 친구들이 석양을 등지고 하나 둘 사라질때면 마지막으로 오도카니 남아있던 친구는 '외로움'이었다. '외로움'과 나란히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리 외롭지 않았다. 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친구가 있었기에. 


훌쩍 나이 차가 많은 형제들 틈에서 나는 늘 홀로였다. 우글거리는 정글 속에서 유일한 나의 친구는 책이었다. 외로움과 함께 책은 그 후로 늘 함께 했다.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소통이 되지 않는 타인에 지칠 때면 책은 늘 나를 받아주었다. 바닥이 없는 통렬한 슬픔의 우물 속으로 꺼져 들어갈 때도, 들판을 뛰며 토닥토닥 뜀박질하는 가슴도 책은 엄마의 젖가슴으로 포근히 받아주었다. 


외국어도 마찬가지였다. 머나먼 타국의 타인의 언어를 배우는 일은 어쩌면 무지개를 잡고자 하는 이상일 수도 있다. 전혀 다른 언어 환경, 소통의 부재, 실용성과는 먼 우리의 언어 교육 시스템들은 언어 학습자의 의기를 쉽게 꺾어버린다. 당장 해외에 나갈 수도 없고, 외국인을 만날 기회도 없는데 영어 회화책을 달달 외우라, 패턴을 부셔먹어라, 미드 한편을 귀에 박아 넣어라.. 이런 숱한 마케팅과 희망 고문이 슬기로운 언어생활과 점점 멀어지게 하는 데 한몫을 하고 있다.


나는 '읽기'를 택했다. 회화책이란 서바이벌 영어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패턴 암기를 생각해보라. 우리말로 '나는 산책을 하고 싶어요.' '나는 삼계탕을 먹고 싶어요.' '나는 영화를 보고 싶어요.' 이 지루하고 단순한 학습법에 쉽사리 나를 소진시키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도 이렇게 훈련시키면 나가떨어진다. 대신 다양하고, 재미있고, 유익한 읽기 자료를 충분히 접하게 해주니 흥미를 잃지 않고 아이들은 학습을 지속할 수 있었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는 유독 스토리가 있는 소설을 읽어 나갔다. 막장 소설, 추리소설, 성찰이 담긴 잔잔하면서도 여운이 오래 가는 소설이 레퍼토리다. 


읽는 행위는 결국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다. 하물며 외국어도 마찬가지다. 읽으면 언어에 녹아있는 문화, 역사가 보인다. 그 모든 것이 소통하는 컨텐츠가 된다. 회화란 컨텐츠 없인 공허한 앵무새의 지저귐에 불과하다.

문법이 틀리고 어눌하더라도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와 컨텐츠가 답이다. 영상으로 쉽게 얻은 컨텐츠들은 깊이가 없고 내 속에 들어가 함께 오래 할 수 없다. 아이들이 책을 읽지 않고 영상만 보니 문해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다. 독해가 단지 영어를 한글로 옮기는 게 아닌 주제와 메시지를 파악해야 하는 장르임을 간과해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와인은 벌컥벌컥 원샷하는 술이 아니다. 한 모금 한 모금씩 혀로 맛을 굴리고, 눈으로 빛깔을 즐기고, 그 순간을 즐기는 술이다. 읽기도 마찬가지다. 와인을 마시는 행위와 많이 닮았다. 기계적으로 빨리 스캔하듯 읽는 행위는 읽기가 아니다. 읽기는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도 아니다. 저자와 그가 바라보는 인생과 우주를 함께 나누며 연애하는 시간이다. 와인이 숙성하듯 함께 익어가는 행위다.


읽지 않아도 세상에는 더 지혜롭고 깨어있는 사람도 많다. 나면서부터 총기가 남달라 좀 더 쉽게 가고, 역경을 만나도 거침없이 헤쳐 나아가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런 신의 혜택을 받지 못했기에 내 부족함을 끊임없이 채우고 닦아 나갈 수밖에 없다. 소통의 기술이 부족하고 덕이 없기에 문자 세상 속에서 그 모든 가르침을 받는다. 읽지 않았으면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아직도 비틀거리며 주린 배를 움켜잡고 아이처럼 앙앙거릴 것이다. 보이는 것이 너무 많아서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너무 많이 보아서 눈이 멀어간다. 내 눈을 스쳐간 풍경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읽으면 보인다. 내가 보지 못했던 것들이,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맛보지 못했던 진미가, 가보지 못했던 땅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이 보인다.


#타인 #세상 #소통 #읽기 #외국어 #언어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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