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기 전 비워라

by 백정순

사방이 트인 푸릇푸릇함이 넘실대는 공간에서 오늘도 요가를 한다. 한동안 오십견과 목디스크로 힘들었다는 내 고백에 요가 선생님은 어깨와 목을 중간중간에 정성스레 지압해주신다. 아울러 목과 어깨에 좋은 동작을 알려주었다.

실제로 한 회원이 올라가지도 않았던 팔을 완치했단다.


요가가 끝나면 생강차가 나온다. 따뜻한 차를 마시면 몸과 기운이 안정되고 날아갈듯하다. 선생님과 나는 한국과 발리의 문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발리인의 순박함과 밝은 미소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하자 선생님은 기뻐했다.

동네를 걷다보면 사람들이 눈만 마주쳐도 인사를 건네고 미소를 보낸다. 이 깡시골 아이들도 돈이나 무얼 달라고 보채지 않는다. 선생님은 내 한국 생활을 묻고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준다. 한국사람들은 대부분 나처럼 큰 아파트단지에 살지만 옆 집 사람과도 알고 지낼 여유와 기회가 없다는 얘기에 (나만 그럴수도 있겠지만)안쓰러운 눈빛을 했다. 반복되는 일상속에서 그게 비극인지도 인지하지 못하다가 이 낯선 시공간에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들이 자연스레 반추된다.


3주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시간을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이 다짐도 내가 있던 곳에서 달고온 디스크인지도. 한국인에겐 여행조차도 자기계발이 되었으니. 슬프다.


오늘 요가 전 명상을 하며 떠올랐다.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게 우선이라고. 아예 '채움'을 버려라. 비워지면 채움은 자연히 따라오느니라. 명상 중 내게 와 준 감사한 메시지다.

왜 채우기만을 아둥바둥했던가. 채우지 않는 사람을 속으로 얼마나 경멸했던가. 비우지 않고 채우려만 하는 욕망이 나를 불행에 빠지게 한다는 걸. 선생님의 밝고 세상 편안한 미소는 오늘도 내게 메시지와 영감을 준다.


#발리 #우붓 #요가 #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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