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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하우스와 맥주 한 잔

트리어, 독일 │ Trier, Deutschland

by 최수현
트리어의 랜드마크를 촬영한 사진 프린팅, 코팅 종이에 자석, 2016.


첫 번째 자석이다. 이것을 보면 자석을 모으겠다고 결심했던, 작은 거리 좌판 앞의 순간이 떠오른다. 트리어는 유럽학 아카데미를 들으며 견학으로 방문했던 도시 중 하나다. 자석 상단에는 "Trier - Älteste Stadt an der Mosel"(트리어 - 모젤 강변의 가장 오래된 도시)"라고 적혀 있다. 자석에 나온 사진은 트리어의 상징적인 랜드마크 두 곳이다. 사진을 두 개 배치하고 설명을 써넣은 종이 프린트 + 코팅 형태가 조악하다. 이후로는 이런 형태의 자석이 가장 매력적이지 않다는 생각에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구입하지 않았다.


트리어는 독일의 서부, 룩셈부르크와 프랑스 국경 인근에 위치한 작은 도시로, 독일 내에서 가장 많은 로마 유적을 보존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분위기가 여타 방문했던 독일의 작은 소도시들과는 사뭇 달랐던 기억이 난다. 왼쪽은 트리어의 상징적인 로마 시대 유적 중 하나인 포르타 니그라(Porta Nigra)다. 검은색 사암으로 만들어진 도시 관문이다. 이 문은 유럽에서 가장 잘 보존된 로마 시대 건축물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오른쪽의 이미지는 트리어 대성당(Trierer Dom)으로,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4세기에 건설을 명령한 곳이라고 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직전에 입었다고 전해지는 성의(聖衣)가 보관된 곳이기도 하다.


트리어는 또한 칼 마르크스의 고향이다. 그가 1818년에 태어난 집은 아직까지 잘 보존되어 현재 칼 마르크스 하우스(Karl-Marx-Haus)라는 이름의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트리어 곳곳에는 그의 초상화가 장식되어 있기도 했는데, 글을 쓰며 검색해 보니 보행자 신호등도 있었다. (신호등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칼 마르크스 보행자 신호등


자유 시간을 얻은 나와 친구는 먼저 마르크스 하우스에 갔다. 집과 집이 붙어 있는 흔한 거리 풍경, 돌바닥, 간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크지 않은 공간이었다. 의도한 전시의 동선을 놓쳐 버린 우리는 거꾸로 그의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보통은 그의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시간 순서대로 관람하는데, 우리는 어째서인지 죽음부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입구에서 만난 다른 친구들이 나에게 "너희, 지금 거꾸로 보고 있어"라고 알려줬다. 우리는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맥주를 마시러 갔다.


지금이나 그때나 나에게는 어떤 유적이나 박물관보다 이 오래된 도시에서 지금의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의 일상을 이어가며 살아가는지가 더 궁금하고 흥미롭다. 우리는 아무렇게나 걷다가 작은 비어가르텐에 들어갔다. 조식 시간이 막 끝나 뒷정리를 하고 있던 주인을 조금 기다렸다. 작은 목소리로 비트부르거 맥주를 두 잔 시켰다. 실내로 들어가 보니 그곳은 윗층에 작은 여관을 운영하는 로비이자 라운지였다. 빛은 고동색이었고, 낡은 가구들, 조금 어둡고, 나이 든 이들 몇몇이 신문을 펼쳐 놓고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주인은 우리에게 맥주를 건네며 독일어로, 스페인어로, 영어로 농담했다. 우리는 천천히 맥주를 마시며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볕을 쬐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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