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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 Nov 15. 2022

퍼뜩, 아무때고, 쓸쓸해지는 마음.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늦은 밤, 이달 독서모임 책을 읽다 울어버렸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한 줄의 문장, 두세 글자 안팎의 짧은 단어가 잘 닫아두었던 마음속 우물의 뚜껑을 열어버리는 날. 내 안에 우물은 너무 깊고 서늘해서 뚜껑이 열리는 순간 슬픔이 치솟아 나도 모르게 뚝뚝 눈물이 떨어지곤 한다. 예상치 못한 순간, 순식간에 올라온 눈물은 왜 그렇게 아픈지. 온몸의 피가 눈을 향해 내달린 듯 눈알이 뻐근하고 쓰리다. 길지 않은 울음인데, 그냥 투두둑하고 떨어져 놀란 마음에 얼른 닦고 삼키는 눈물인데, 한참을 소리 내 운 것처럼 온몸에 힘이 빠져 버린다. 

  


   

심윤경 작가의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는 제목처럼 아름다운 책이다. 사랑한다는 말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지만, 그럼에도 작가의 삶을 받쳐 주었던 할머니에 관한 이야기. 작가는 할머니의 무심하고 투박했던 삶 속에서 작가 안에 뿌리내린 깊고 조용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랑, 아직도 그게 무엇인지 몰라 드물게 화창한 하루에 기대 여러 날을 사는 나로선 그저 부럽기만 했다. 내년이면 마흔이 되지만 지금도 나를 주눅 들게 하는 몇 가지 말이 있는데, 그중 첫 번째는 단연코 '사랑'이다. 내게 사랑은 너무 크지만 보이지 않고,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꿈같은 것이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 나름의 사랑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그건 유년시절 그토록 바라던 사랑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라 마음 한 귀퉁이 덩그러니 놓인 빈 공간은 여전히 외롭고 쓸쓸한 공기 그대로 변함이 없다.     

 

잘 웃지 못하고, 불안과 긴장을 달고 사는 것이나, 비극적인 것에 더 마음이 쓰이는 것도 그래서 일거다. 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는데 내겐 ‘사랑’이 그랬다. 그게 뭔지도 모르면서 일찍부터 내 삶은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이 될 거라 생각했다. 나를 멈추게 했던 것들, 내가 부딪혀 넘어진 것들 앞에서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 같다. 중심보단 변방, 빛 보단 어둠에 가닿아 있을 삶을.      


책에는 결혼 후 아이를 낳고 다시 공부할 용기를 내었던 친구가 상담심리 전문 대학원에 입학서류를 넣고 합격했을 때, 친구의 아버지가 했던 말이 쓰여있다. 근데거 뭐 될 필요는 없다!”. 마지막 몇 페이지를 남겨두고 마주한 문장 앞에서 나도 모르게 투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우스운 건 짧은 찰나에 내 입에서 ‘쳇’이라는 말이 동시에 나왔다는 것. 순간 내 표정이 궁금해 책상 위에 엎어 두었던 휴대폰을 셀카 모드로 바꿔 카메라에 얼굴을 갖다 대었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 뒤로, 묘하게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빈정거리고 싶은 얼굴이었다.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마음에 다 담을 수 조차 없는 그런 사랑을 받고, 누군가는 그런 사랑이 있는지 조차 모르고 살아간다는 게 괜히 화가 났다. 그런 내가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가난이 들어 빛나는 것 앞에서 발악질이나 해대다니. 친구에게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가난한 마음으로 사는 게 너무 징그럽다고. 지랄병이 또 돋는다고.  

    

나는 어쩌다 이런 어른이 되었을까? 

왜 내 마음은 웅숭깊지 못하고 베베 꼬여서 자꾸만 내 우물을 보이고 마는 걸까. 


김연수의 책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이런 말이 나온다. ‘서른다섯 살이란, 앉아 있던 새들이 한꺼번에 날아가고 난 뒤의 빈 나무 같은 것(p209)’이라고. 그 문장 앞에서 오래도록 생각했다. 나는 언제 빈 나무가 되었나 하고. 그러다 보니 금세 또 마음이 후줄근해지는 것 같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책을 덮어 버렸다. 그렇게 난 퍼뜩, 아무 때고, 너무 쉽게 마음이 쓸쓸해지고 만다.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비극 앞에선 고개를 주억거리고, 반짝이는 것 앞에선 고꾸라지면서 말이다. 사는 게 이토록 외롭고 슬퍼도 되는 걸까?  아름다운 것들에 더는 마음을 긁히지 않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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