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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Nov 15. 2019

피구왕은 못되었지만

금긋는 삶



어릴 적 나는 운동과 거리가 먼 아이였다. 술래잡기에서도, 숨바꼭질에서도 늘 '깍두기(룰의 적용을 받지 않는 특별배려를 받는존재. 동네마다 명칭은 다르다.)'였고, 그 나이대 아이들이 그네에서 풀쩍풀쩍 뛰어내려 누가 더 멀리 갔나를 대결할 때에도 외할머니가 뒤에서 밀어주는 그네에 얌전히 몸을 맡겼다. 당연히 철봉에서 몸을 360도 휘리릭 돌리는 것도, 구름사다리도 그냥 '못 하는것' 이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구름사다리를 시도 해보았고 생각보다 손쉽게 성공했을 때 어찌나 놀랍고도 허무하던지.) 약간의 과잉보호적인 양육환경과 겁쟁이 성격이 맞물려 육체적으로 무언가를 도전해본 적이 없다. 


그 중에서도 나는 피구를 참 무서워했다. 양 진영 사이에 한껏 흐르는 긴장감도 두려웠고(당시 나름대로 상당히 정치적이고 폭력적인 게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종국엔 꼭 한두 아이들이 코피를 흘리며 게임이 끝났다.), 공을 던지게 되어 필요없는 주목을 받는 상황도 두려웠다. 그때 내가 선택한 방법은 구석에 적당히 금을 밟고 서 있는 것이었다. 그러면 아이들은 내가 이미 아웃되어 밖에 있다고 생각해서 날 공격하지 않았고, 작은 덩치 덕에 묻혀 아무도 금밟은걸 지적하지 않으면 그럭저럭 별 참여없이 피구를 끝낼 수 있었다.  


요즘 나는 금을 밟고 삶을 사는 기분이다. 지나친 타협과 침묵을 자각하며. 갈등과 자기노출을 불필요한 소모전이라고 여기며 말이다. 적군과 아군이 별 의미없다는 회색논리에 지나치게 물들어 스스로의 신념을 옹호할 힘조차 잃어버린건 아닐까. 어린이로서의 삶에서 후회하는 것이 있다면 좀 더 개구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너무 많은 것을 겁내느라, 망설이느라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 수두룩하다. 팔에 깁스 한 번 못해본, 자전거도 탈 줄 모르는 어린이의 삶을 살았다니!  


어른이 된 지금이라도 신발 모서리로 금을 굵직하고 긋고 제대로 금 안으로 뛰어들기로 한다. 원하는 걸 위해 전력질주도 해보고,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려도 보고, 악도 쓰다가 팔이라도 하나 부러져 보는 것도 괜찮겠다. 그렇게 목소리를 냄으로써 삶에 자부심을 갖고 싶다. 흐릿하던 취향에 진한 금을 긋고서는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당당히 그리고 덤덤히 말하고 싶다. 그렇게 나를, 내 주변을 그래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 커다란 물통에 툭 떨어진 물감 한 방울은 옅어지기 마련이지만 물의 색은 전과 같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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