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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Nov 25. 2019

보통의 살인자

사인은 사회적 타살, 여기 모두 공범.



2주 전 선물 받아 화병에 꽂아둔 크고 화려한 꽃이 오늘 아침 거짓말처럼 고개를 푹 꺾더니 꽃만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차가운 바닥에 외로이 몸을 던진 꽃을 만져 살펴보니 멍이 든 것처럼 붉은 꽃잎에 시커먼 얼룩이 서너 군데. 꽃잎은 2주 전보다 창백해져 있다. 길지 않은 시간 누군가에게 사소한 유희를 주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버티다 스러져버린 꽃에게 미안해야만 하다.  꽃의 색이 바래고 선명하던 자리에 짙은 멍이 들다가 한 줌의 생명력마저 다해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나는 무엇을 했나. 꽃을 자르는 손, 포장하는 손, 내게 건네는 손들을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고 무력하게 변명을 하진 않았나. 


그녀를 꽃에 비유하고 싶진 않았다. 생전 얼마나 자주 꽃으로 불리웠을까. 그녀를 독수리라던가, 아나콘다에 비유할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녀는 꽃으로 소비되었고, 꽃을  꺾고 나르는 손길에는 애정이나 미안함보다는 열에 들뜬 유희만이 남았다. 아름다워서 꽃이라고 불린 게 아니었나 보다. 타인의 환희와 오락을 위해 힘없이 꺾이고 실려다니다가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떨어진 팔자가 꽃과 닮아 꽃이었나. 


보통의 선한 사람이 살인에 가담하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하고 빈번하다. 눈을 돌려버리는 것.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폭력의 시스템에 발맞춰 사는 것. 세상의 잔인함을 묵인하는 것. 나에게 그 일이 닥치기 전까지 철저히 무관심한 3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 그 무관심은 살인의 동력이 되어 매일, 매주, 매달 희생자를 만들어낸다. 살인자가 없이 발생하는 살인. 붉은 피 없이 꺾여지는 꽃. 


누군가의 쾌락이 다른 누군가의 삶과 같은 무게를 갖는 세상에 분노한다. 나는 오늘 또 슬퍼하고 미안해하다가 이 비참함을 잊은 어느 날 또 말라죽어가는 꽃을 보며 희희덕거리려나. 

분노와 죄책감을 잊지 말자,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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