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자의 시선에서... 지금까지 도움이 되는 시선의 변화
신입생 시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처음 구매해서 펴본 해외 디자인 서적에는 인스피레이션 (inspiration)이 될 자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해외 서적은 비싸기 때문에 구매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현대 사회에서는 손 안의 모바일을 통해 언제 어디서든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값비싼 해외 서적보다 핀터레스트와 같은 서비스를 통해 쉽고 빠르게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되었죠.
이처럼 정보를 찾기 어려웠던 과거에는 누가 더 많이 알고 있는지가 중요한 시대이었다면, 현대 사회는 쉽게 찾은 정보를 어떻게 가공하는지가 중요한 시대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시대에도 변치 않는 진리가 하나 있다면,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프로세스가 나이가 들수록 완숙해진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나이가 들수록 잃어버리게 됩니다. 수능을 위해서 억지로 외웠던 수학 공식들은 어느 순간부터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시험을 위해서 빨리 배운 것들은 그만큼 빨리 까먹게 되는 것 같네요.
하지만 좋아해서 배우고 연마하던 것, 그래서 다양한 고민에 부딪쳐 보며 얻은 지식들은 날이 갈수록 쌓여가는 것 같습니다. 노하우가 쌓여간다는 표현이 맞겠네요. 이는 암기로 외운 지식보다 경험으로 얻은 지혜가 굳건해졌기 때문입니다.
모바일로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는 편리함은 우리에게 많은 혜택을 주었지만, 오히려 하루종일 바쁘고 정신없이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타인이 생각하지 못한 정보를 찾는 것은 과거보다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이러한 시대의 현상에 구애받지 않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는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디서 본듯하지만,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모습으로 발전해서 등장하고 있지요. 결국 좋은 아이디어란 정보의 경중을 떠나 어떻게 가공하는가 하는 본질적인 것이 요구된다 생각합니다.
저는 이러한 본질적인 것을 '프레임(frame)'으로 정의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정보를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선의 변화는 앞서서도 강조를 했었습니다. 거인의 어깨가 아닌, 아래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이야기로 말이지요.
프레임의 변화는 디자인뿐 아니라 전 분야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볼게요.
과거 사람들은 태양과 달이 지고 뜨는 자연적 일상 경험을 통해 지구를 중심으로 모든 것들이 돈다는 '천동설'을 굳게 믿었습니다.
천동설을 굳건히 믿던 시대에,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망원경을 통해 목성의 위성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를 관찰한 결과 목성과 그 주변 위성들이 지구와 달의 관계처럼 이루어지는 것을 주장했고, 이를 통해 지구가 1년 주기로 태양 주위를 회전하고 있다는 '지동설'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는 당시의 지식과 기존 관념을 깨부수는 이론이었습니다. 즉, 세상을 지배하는 이론과 이를 뒷받침하는 많은 정보가 있다고 해도, 이 모든 것을 뒤바꿀 수 있는 힘이 바로 정보를 바라보는 프레임입니다.
저는 현대사회에 넘쳐나는 정보들을 어떻게 가공할까 고민하기 전 가장 중요한 부분이 프레임을 씌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정보가 있다고 한들, 어떤 프레임을 통해 접근하느냐에 따라 얻어내는 결과물은 천차만별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프레임을 일상에도 자각하고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작고 즐거운 상상을 할 수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공모전에서 멀어진 지금에도, 항상 재미있는 생각이 나면 무언가 만들고 싶다는 힘을 주는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최근 제가 시도해봤던 프레임을 씌우는 이야기를 드리고자 합니다.
01.
일본 여행 중
일본 여행을 하다 보면 한 번쯤은 듣게 되는 설명이 있습니다. 여기는 도쿄의 명동 같은 곳이야, 도쿄의 강남 같은 곳이야, 도쿄의 이태원 같은 곳이야... 하는 설명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일본에서 온 여행객들도 서울의 롯폰기, 긴자, 오모테산도 같은 곳이라는 설명을 듣는다고 합니다. 이는 일본과 한국의 거리 문화가 비슷하기 때문에 설명이 가능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영화 '강철비'에는 이러한 멘트가 나옵니다. 일제 시대 이후, 우리나라는 일본식으로 일본을 따라가게 되어 많은 기업들이 일본 기업들보다 잘 나가게 되었다는 멘트입니다. 그렇게 우리나라는 일본이라는 이데올로기에 대응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서울의 도시 문화도 도쿄의 성장을 모티브로 발전한 점이 있지 않을까? 서울과 도쿄를 대표하는 도시와 랜드마크, 그리고 다양한 건축물들을 나열하다 보면, 외국인들에게는 서울과 도쿄가 데칼코마니처럼 보이지 않을까? 이러한 프레임으로 서울과 도쿄의 도시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생각을 표현해보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서울과 도쿄의 비슷한 설명을 했던 랜드마크와 풍경들을 뒤섞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글로 '도쿄', 히나가 나로 '서울'을 표현하는 마크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02. 도시 브랜딩
간혹 지하철 역이나 정부 기관의 건물 앞에는 태극기 말고도 여러 깃발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지나치는 여러 도시의 풍경 속에는 도시를 알려주는 기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관심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은 무심코 지나치는 일이 많습니다만, 한 번쯤은 본 기억이 있지 않으신가요?
대부분 친구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와 고향의 브랜드 마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매년 도시 브랜딩에 많은 비용을 쏟고 있지만 효과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각 도시의 브랜딩을 어떻게 하고 있나 확인을 해보고자 했습니다. 한국 하면 떠오르는 도시의 브랜딩은 무엇이며, 지역구마다 특색은 잘 살리고 있을까?
생각보다 도시를 대표하는 컬러를 사용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의외로 비슷한 컬러들을 사용해서 한국 하면 떠오르는 컬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03. 종묘
종묘는 동아시아 문화권에 중요한 문화자산이라고 합니다. 조상을 모시는 유교권 문화에서, 이전 왕조의 선왕을 모시는 건축물과 문화는 한국만이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종묘는 조선시대의 선왕을 기리는 사당입니다. 외국인이 서울을 구경하러 오면 한 번쯤은 들려보는 관광지역이지요.
전문 화재 청장 '유홍준' 교수님은 종묘를 아시아의 파르테논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또한 유네스코에서 종묘를 문화자산으로 등록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종묘를 얼마큼 알고 있을까요? 그리고 종묘를 여러 차례 방문해본 사람이 많을까요? 저는 한국 문화자산도 세계에 자랑할 만큼 오래된 역사와 아름다운 문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기반으로 아시아의 파르테논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04. 평양의 지하철
서울의 지하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은 알고 계신가요? 지하철에서도 TV를 보고, 인터넷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지하철은 세상에 몇 안될지 모릅니다. 재미있게도 외신 기사에서 세계 지하철의 퀄리티와 편의성에 대해서 점수를 매긴적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평양의 지하철이 상위권을 차지한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가깝지만 먼 나라인 북한에 지하철이 있는지 신기한 감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여러 정보를 찾아본 결과 평양의 지하철에 대한 정보와, 영상, 그리고 노선도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평양 매트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혹시나 통일이 되면 한 번쯤은 타볼 수 있지 않을까요?
프레임을 잘 씌우기 위한 특정한 방법이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현상을 보고 혼자만의 사색을 해보며, 다양한 상상을 해보는 것. 그리고 많은 콘텐츠를 접하면서 상상의 폭을 넓혀보는 것, 일상의 모든 경험들이 우리의 프레임을 넓혀주게 될 것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모두가 당연하다 여기는 범주에서 합리적인 생각하는 습관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엉뚱한 상상을 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끔은 세상을 재미있게 바라볼 수 있도록 빈둥거리면 어떨까요? 그러다 재미있겠다 싶은 아이디어를 발견하면, 두려워 말고 도전해보세요. 이때다 싶을 때가 가장 빠른 시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