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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파상 단편선

by SOON
얼마 전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 비보티비에서 시작한 선안(신봉선의 선, 안영미의 안) 영향력이라는 콘텐츠(독서 프로젝트)에서 선정된 책이라 읽고 싶어 선택했다. 필자의 주관대로 지나치게 솔직한 리뷰다.


평점 : 별점 2개 반 ★★


보석

뭐? 정말 이렇게 끝이 나지?

1880년대에 작품이라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단편소설의 느낌과는 달랐다. 싱겁고, 직설적이며 재미는 없었다. 갑자기 주인공이었던 부인이 죽고, 보석은 왜 그랬는지도 설명이 없이 소설은 끝이 난다. 내가 이 작가의 그리고 이 시대의 단편소설을 처음 읽어보기에 신선하지만 실망감도 컸다. 제목이 보석이라면 보석에 대한 의문점은 한번 풀어주는 것도 좋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달빛

이런 식이 구나..

전작을 한편 읽어보고 작가의 두번째 작품을 읽어보니 허무개그 같은 그의 단편소설의 매력을 알겠다. 만약 내가 그 시대의 사람이었다면 아! 이런 신선한!이라고 했겠지만 약 150년전의 소설을 읽는 나로서는 아재 개그나 허무개그 같은 익숙한 결말 또는 실망스러운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목걸이

결말만 아니라면 작가의 글빨은 훌륭했다

사실 나는 제목을 보자 첫 단편인 보석의 후속 편인가 생각이 들었고 게다가 읽을수록 첫 단편에서의 부부가 만났던 상황과 여주인공의 취미가 같아서 이 단편이 진정 보석의 후속 편이며 그녀의 입장에서 써진 글이라면 대박 반전이다! 그 시대에 써진 글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상황만 비슷하고 소재만 같을 뿐 전혀 다른 단편이라는 걸 읽을수록 느끼며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결말은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하지만 결말로 가는 내내 얼마 전 읽었던 김유정 작가의 단편소설만큼의 생생함은 아니지만 모파상 작가의 글도 몰입도가 점점 좋았다.



귀향

이때부터였을까? 유럽은 왜 열린 결말은 사랑할까?

전작들에서도 그렇고 작가의 글은 재밌다. 하지만 유럽 영화가 주는 결말의 허무함처럼 작가의 소설도 결말 없이 중간에서 끝나 버리거나 아무것도 결정된 것 없이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이것이 유럽의 특징인지 모르겠지만 해피엔딩에 익숙한 나로서는 답답함과 실망감이 더 큰 것 같다. 아쉽다. 특히 이 작품은 두 남편 중 그녀가 누굴 선택했을지 몹시 궁금하다.



승마

왜 자꾸 나락으로만 떨어지는 걸까?

이 작가의 작품들은 해피엔딩보다는 새드엔딩이 더 많은 것 같다. 아무리 젊을 적 허세가 과하다 해도 주인공 가족이 이렇게까지 찌질하게 살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한번의 잘못된 선택이 주는 데미지가 너무 가혹한 것 같다. 시몽 부인은 옳다구나 이번 기회에 종신보험 하나 마련하겠네 싶었을까? 허세도 뻐티기도 지금 이 시대의 나는 조금 불편한 것 같다.



여로

이러기야?

내가 태어나기 전 시청률 72%의 드라마 이름과 같은 작품이라 굉장히 흥미롭게 읽다가 마치 뒤처리를 하지 않고 볼일을 본 것처럼 마무리를 하니 너무나도 허무하고 실망스러웠다. 왜 이 작가의 단편이 이렇게까지 유명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까지 아쉬움이 생긴다는 것은 그의 글빨이 훌륭하기 때문에 생기는 기대감이 더 커서 일지도 모르겠다.



첫눈

이렇게 어리석은 여인을 보았나..

지금 시대라면 남편은 아마도 이혼 감이다. 근데 주인공 아내도 왜 꼭 난로를 고집해야 했는지 모르겠다. 나 같았으면 편지한장 남겨두고 남쪽으로 떠났을 것 같다. 자신의 몸을 일부러 상해가며 난로를 얻었다는 성취감이 건강보다 중요했을까? 작가는 이 작품에서 독자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을까? 그녀의 어리석음?



미친 여인

왜 그렇게 단정 지을까?

주인공은 왜 그 미친 여인이 해골로 나타났다고 생각했을까? 미친 여인이 미친 여인이 된 계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만 15년이라는 긴 시간은 조금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전쟁도 장교도 그 시대엔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 결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면 나는 다르게 생각해도 될까?



두친구

그 둘의 대화가 복선이었다니..

결국 두친구는 죽었다. 현재로썬 전쟁 중에 취미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그곳에 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코로나 시국에 중국 우한으로 떠난 격이라고 할까? 술 한잔 거하게 하고 갑작스레 결정한 선택이 죽음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는 단편일까? 아니면 작가는 복선에 더 힘을 준 느낌이라 독자들이 마지막 글을 읽을 때 피식 웃게 되는 상상을 했을까? 내가 작가였다면 후자였을 것 같다.



쥘르 삼촌

편지를 믿고 싶었던 가족의 아픈 상처

사실 5프랑은 지금 물가로도 적은 돈은 아니다. 저렴한 식당에서 밥 한 끼 사 먹을 수 있는 정도? 스벅 돌체라떼를 마실 수 있는 정도? 아름다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단편이었다. 주인공이 삼촌을 삼촌이라 부르지 못한 게 아쉬웠다. 결국 삼촌은 못 돌아오겠지?



노끈 한 오라기

나라도 억울해 미쳤을 듯

자존심 때문에 한 행동이 도둑으로 몰렸다면 누구나 억울했을 것 같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저 아니라고만 말하지 구차하게 일일이 사람들을 붙잡고 설명하진 않았을 것 같다. 물론 너무너무 억울했겠지만 오해도 풀렸는데 굳이 열심히 변명을 했던 건 아마도 자존심의 스크래치를 이렇게라도 풀고 싶었나 보다. 오히려 그게 독이 되어 아무도 말을 안 믿어주게 되었으니 더 억울할 수밖에.. 왜 그는 주인공을 꼰질러가지고...확신도 없으면서 ㅠㅠ



걸인

놀랄만한 일은 아니지..

배가 고파서 도둑질을 한건데 경찰도 먹을걸 안 줬으니 그가 하늘나라로 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놀랄만한 게 아니라, 작가는 이 단편이 꽤나 반전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주인공을 굉장히 나쁜 것처럼 표현해서 오히려 독자들은 주인공을 응원했을 것 같다. 그는 왜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았을까? 용기를 내어 나갔다면 죽지 않았을까? 작가는 꼭 주인공의 죽음을 미리 정해두고 글을 쓴 것 같았다.



불구자

왜?

약혼녀를 잃었는데 왜? 그녀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자식까지?? 친하게 지낸다고? 나로선 이해할 수 없다. 아무리 잘 대해 준다고 해도 한때는 결혼을 약속한 사랑하는 사이었는데ㅠㅠ 작가의 단편 중 가장 이해할 수 없고 재미도 없었다. 이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흥미가 떨어지는 것 같다.



미뉴에트

이 단편을 읽고 바흐의 미뉴에트를 꼭 들어보길..

이 단편을 읽었을 때 나는 미뉴에트라는 단어의 뜻을 몰랐다. 그래서 단편을 다 읽자마자 네이버 검색창에 미뉴에트를 검색했고 4/3 박자의 우아하고 약간 빠른 춤 곡이라는 설명을 읽고도 사실 이해하긴 힘들었다. 그래서 유튜브 검색창에 '미뉴에트'라고 쳤을 때 가장 맨 위에 나오는 곡을 들었다. 그 곡은 바로 바흐의 미뉴에트라는 곡이었고,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곡이었다. 이 곡을 듣자마자 노부부가 우아하게 선보였던 춤이 머릿속으로 그려져서 신기했다. 이 단편을 읽은 모든 분들이 바흐의 미뉴에트를 꼭 들어보기 바란다.



어느 여인의 고백

그 시대라고 해도 이건 좀...

의심으로 번진 살인, 아무리 150년 전이라고 해도 사람을 총으로 쏠 생각을 했다는 건 좀 너무한 게 아닌가 싶다. 남편은 진정 아내를 사랑했던 걸까? 그때도 지금도 부부 사이엔 대화가 필요하구나를 절실히 느끼게 된다.



의자 고치는 여인

전지적 여자 시점

"정말이지, 사랑할 줄 아는 것은 여자들뿐이지요!"

이 마지막 부인의 말 때문에 이 단편이 써졌을까? 정말 사람들은 본인들의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것 같다. 의사가 생각하는 깊은 사랑이 미저리 같은 짝사랑이라면 의사도 좀 이상한 것 같고, 그 말을 들은 부인이 여자들만 사랑을 할 줄 안다고 대답한 것도 이상하다. 이 에피소드에서 정상적(물론 이건 정말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건 개 두 마리뿐인 건가?



고아

미스터리 스릴러야?

결국 범인은 누군지 모르겠지만 왜 그녀는 그토록 무서워했을까? 사촌들은? 그가 범인이라면? 마부가? 미스터리함만 가득 남긴 채 단편은 끝이 났다. 궁금한걸 못 참는 사람들은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을 것 같다. 그녀는 정말 누가 죽였냐고... 왜 그런 거냐고...



산장

돈 없으면 이렇게 될 수 있구나..

히말라야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극한의 추위 그리고 극한의 고통에서 느끼는 인간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표현했던 영화의 한 장면이 이 단편을 읽으며 주인공 울리히를 연상케 했다. 그는 결국 미쳤다. 그가 하인이 아니었다면 그는 그곳에 남지 않았을 거다. 역시 돈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게 할 수 있는 필요한 도구란 생각이 든다.



올리브나무 숲

가장 길었던 단편이었지만 재미는 그다지..

모든 성직자가 그렇진 않겠지만 왜 뭔가 실패하고 절망한 인간은 종교의 깨달음을 그때 알게 되는 걸까? 궁금하다. 신부는 한 여인과의 사랑의 실패로 왜 성직자가 되었을까? 굳이 왜? 그냥 평범하게 살 수는 없었나? 그리고 그의 아들은 왜 그렇게 삐뚤어질 수밖에 없었을까? 엄마는 그를 사랑했을까? 충분한 사랑을 받은 아이는 삐뚤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아버지를 죽일 만큼 나쁜 놈이라니... 어쩌면 삐뚤어진 사랑이었을까?



총평 : 그 당시엔 신선했을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번역한 단편 소설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얼마 전 읽었던 김유정 작가의 단편이 훨씬 더 재밌게 읽혔다. 아마 프랑스 사람이 김유정 작가의 프랑스어로 번역된 책을 읽어도 나와 같은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그들의 문화와 그 당시 언어나 풍습을 내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너무 짧은 단편 어떤 작품은 흥미로웠으나 어떤 작품은 너무 허무하고 흥미를 잃을 정도로 지루한 작품도 있었다. 이 책 한 권에 19 작품이 들어있어 작가의 글솜씨나 패턴을 느끼기엔 좋았으나 오히려 더 지루하게 느껴진 부분도 있었다. 장편과 단편을 적절히 섞어 5편 이내로 했더라면 독자들이 그의 작품을 조금 더 흥미롭게 읽었을 것 같다.


짧지만 그만큼 단편이 많아 지루했다. 몇 작품만 골라서 읽는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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