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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Jan 15. 2021

처마 끝 풍경이 흔들린다는 것

말 줄여버린 마음: 빈 말의 의미



풍경

/ 담쟁이캘리




처마 끝에 달린 저 조그마한 것이
그대 불어올 때마다 물색없이 흔들려
발자국 없이도 천 리길 단숨에 쫓던
아무도 모르던 눈길 꼼작 없이 들켰다



굽이치는 생의 주기마다
움푹 파인 골짜기에 숨긴 마음이라
그대 아무리 불어도, 잠시 흔들고 마는
높새바람에 지나지 않는다고



오직 나만 아는 그대 뒷모습
그 저무는 풍경 눈길로 되감아도
발자국 남지 않는 느린 배웅이라
아무도 모를 거라 믿었건만



그대 작은 점으로 멀어져 갈 때
지난날 암송하던 버릇 제때 마치지 못해
흩날리던 눈길로 서성이다 뱉은 한숨
기척 없던 고요 위로 불어와



처마 끝 풍경이 흔들린다
그대, 점처럼 저 조그마한 것이
가장자리로 밀려나 아무도 없노라
착각했던 마음에 바람이 들었다





'바람은 집을 짓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저 지나가기 위해 불어야 훨훨 날듯 가벼워야 멀리 갈 수 있고 어디든 쉽게 유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리저리 자유로이 불던 바람이 저 멀리서부터 불어와 고요하던 풍경, 물색없이 흔들린다는 것은.

그저 지나가기 위해 불던 바람이 되돌아오기 위해 불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못내 그리운 자리를 보금자리처럼 맴돌아, 지나는 중인 줄만 알았던 바람이 기어코 마음에 집을 지었다는 뜻이리라.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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