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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Mar 03. 2021

건조주의보

말 줄여버린 마음: 빈 말의 의미



건조주의보 

/ 담쟁이캘리




슬쩍 던져진 불씨 하나
기척도 없이 마른자리에 옮겨 붙어
로망 가득하던 날들 모조리 태워
운때만 기다리던 지난날 흔적, 간데없네


의자 하나 없이 맨 서서 가는 생이라도
사람 죽고 사는 것 모두 마음먹기 달렸다며
생떼 부리지 않고도 절로 찾아드는 운 바랐으나
활대는 화마는 미지의 날마저 삼키고


슬픔 무성하게 엉킨 일상으로 만들어
기약 없는 생 버텨가며 베갯잇 적실 때마다
로망 하나둘씩 이룰 날 그려가며
운동화 끈 고쳐 매고 젖은 맘, 말렸건만


의자 하나 두고 쉬어갈 틈도 없이
사방이 잿더미로 발길 닿는 곳마다 폐허다
생을 살아내느라 눈물 겨우 마른자리에
활대는 화마 들이닥칠 줄이야


슬쩍 던져진 불씨 하나가
기세를 꺾고 간신히 선 두 발
로망의 싹을 잘라 주저앉힐 수 있음에
운도 떼기 전에 말문이 닫혔다


의연한 척 널어둔 마른 마음이라도
사노라면 볕 들 날 있다 믿었건만
생은 늘 어디로 튈지 모를 요지경이라
활대는 화마 잡으려면, 눈물도 필요하더라






울음은 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밖으로 새지 않게 꼭꼭 잠가야 하는 소음인 줄 알았다. 침묵이 미덕이라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마땅히 울어야 하는 순간에도 마음대로 울지 못하는 건조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누군가에게 미덕이 되기 위해 마냥 침묵하는 동안 정작 소리 내야 할 때조차 아무 말 못 하고  참는 게 습관이 되었다. 지나고 보니 울음은 소음이 아니라 건조한 땅 위에 내리는 단비이기도 했다. 뿌연 먼지처럼 탁한 마음을 말끔히 씻어내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 것이 눈물이었다. 울음은 말보다 앞선 말이었다.




#슬기로운의사생활 을 각 연의 행으로 두고 시를 써 보았습니다. :)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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