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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Dec 17. 2021

집으로 가는 길

당신의 보금자리는 어디인가요


  온몸을 소금에 절인 듯 축 늘어지는 날이 있다. 생기 하나 없이 숨 죽은 날이면 언제나 '집에 가고 싶다'는 문장이 머릿속을 꽉 채운다.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스르르 잠들 수 있는 보금자리가 절로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보통 집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 '보금자리'라는 단어를 쓰는데, 문득 그 사전적 정의가 궁금해 찾아보다가 어원이 성경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원래는 '새가 깃들이는 둥지'라는 말인데, '편안하고 아늑한 삶의 터전'을 비유적으로 보금자리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흔히들 집을 보금자리에 비유한 것을 보면 '집'이라는 단어에 깃든 아늑한 품이 얼마나 큰지 금세 알 수 있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누리는 쉼이 하루 끝 달콤한 선물처럼 느껴지니 집이 보금자리라는 말은 과언이 아니다. 하물며 집이 주는 장소의 힘도 대단하다. 집에 들어서면 축 늘어진 몸이 애써 정돈할 필요 없이 편히 눕고, 버석해진 마음에 이내 부드러운 바람이 술술 드나들어 숨통이 트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신묘한 힘이 있다. 그래서일까. 혹 어찌할 도리가 없는 어려운 상황을 만나면 반사적으로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부터 앞선다. 집을 표현하는 단어는 고작 한 글자, 한 음절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방대한 셈이다.



  바깥과 안의 경계를 '집 밖'으로 비유할 만큼 집이 주는 아늑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보통 이런 경우다. 빵빵한 베개에 몸은 뉘었으나, 마음이 바로 눕지 못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때. 몸은 편한데 마음은 내내 불편해 집에서조차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듯한 순간 같은 것. 이 순간들을 가만히 되짚다 보면 집이라는 것은 외형만 갖춘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쉬는 내 마음이 편해야 진정한 '집'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마음은 종종 걷잡을 수 없이 넘실거려서 조석 간만의 차처럼 조차가 벌어지곤 하는데, 어떤 날은 좋은 감정이 밀물로 왔다가 또 어떤 날은 썰물처럼 간데없이 사라져 초라한 밑을 드러내기도 한다. 짐작 불가능한 내일을 '오늘'이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수차례 마주하는 여러 사람과 상황 속에서 유영하는 동안 마음은 몇 번이고 쪼그라들었다, 다시 불기를 반복한다. 대개는 그 일련의 과정을 겪으면서 마음이 단단해지는데, 여느 때와 다르게 지울 수 없는 선명한 흉터를 남길 때가 있다. 흉터는 상처가 아물고 남은 자국으로 부단히 살아낸 시간에 대한 훈장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흉터는 잊고 싶은 순간을 떠오르게 하는 날 선 기억의 조각이 되어 마음을 할퀴기도 한다. 스스로의 기억이 제 발목을 잡지 않기까지는 반드시 얼마의 시간이 든다. 상처 난 마음이 완전히 낫기까지 모두가 필요한 시간은 다르지만, 흉터를 보고도 거뜬히 소화해 낼만큼 잘 아물도록 하기 위해서는 살뜰한 시선과 관리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머리로는 알지만 제때 살피지 못하고 무심히 지나치는 때가 허다하다. 마음은 몸과 다르게 형태가 없고 눈에 보이지 않아서 간과하기 쉽다. 괜찮은 줄 알았던 마음이 별안간 역습을 해올 때도 있는데, 주로 스스로 돌볼 줄 몰라 무심코 넘긴 순간들이 곱절로 불어난 경우가 그렇다. 이때 마음은 지진과 비슷한 양상을 띄는데, 그 진원지를 찾아 직면하지 않으면 비슷한 순간이 반복될 때마다 찾아오는 알 수 없는 여진을 밤 지새우며 견뎌야만 한다. 마음이 편치 않으면 아무리 아늑한 집에 몸을 뉘어도 편히 잠들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집이 '편안하고 아늑한 삶의 터전'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의 집'이 굳건해야 한다는 뜻이다. 집이든 마음이든 사람이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어야 하는데, 혹시 있을지 모를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관리 능력이 필요하다.



  자연의 사계는 뚜렷해도 저마다의 삶에 찾아드는 계절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기상이변 같이 온다. 미리 예측할 순 없어도 어느 계절이든 잘 맞이하고 배웅하며 제대로 소화시킬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느 날 갑자기 역류하는 마음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언제든 편히 앉고 누울 수 있는 말랑말랑한 마음이어야 한다. 이른 봄 꽃샘추위와 한여름 장렬하는 태양 같은 아무개의 시기 질투에는 자신감 한 겹 더 껴 입고 남들 시선은 과감히 벗어던지고, 늦가을 추풍낙엽처럼 기분이 가라앉고 한겨울 부는 바람처럼 가슴이 시릴 때는 사랑하는 이들에게 받은 따뜻한 말과 행동을 곱씹으며 부지런히 마음의 온도를 높여야 한다. 물론 이마저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요동칠 때도 있지만 스스로 건강하게 계절을 날 수 있어야 집에서 몸도 마음도 편히 쉴 수 있다.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다는 말 대신 '집'으로 위안이 얻고 쉼을 누리려면 우선 내 마음부터 다스려야 한다. 외형이 있는 것들은 흐르는 시간과 비례해 낡거나 쇠하지만 마음은 주인의 보살핌에서부터 평안이 솟아난다. 그러므로 제대로 돌보지 못한 마음의 탈선은 오롯이 내 몫이다. 마음이 다치거나 상처 받은 이유는 외부에 있다고 해도, 흉터를 보고 슬픔에 잠길지 웃어넘길지 선택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그 누구도 자기 마음이 앓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을 테니 내가 머무는 집이 즐거운 곳이 될 수 있도록 나 역시 오늘도 꼭 한 번씩 내 마음을 살핀다. 모두에게 그렇듯이 내게도 집은 언제 생각해도 당장 가고 싶은 아늑한 보금자리여야 하니까.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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