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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Mar 22. 2022

꿈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멀찍이 차 두고 잊었던 것


  나는 종종 꿈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를 반복한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작은 문예지에서 수필가로 등단도 했지만 여전히 나는 작가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그것은 금세 나중으로 밀리고 당장의 밥벌이에 치여 스스로 본래 취미일 뿐이었다고 속이거나, 좀 더 나이 들어서 충분한 연륜이 쌓였을 때 해도 된다고 나를 달래기를 반복해왔다.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일도 자원이 없이는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잠시 경유하듯 시작한 회사생활이었다. 예기치 않게 재미를 느끼면서 그 끝이 자꾸 유예되기는 했지만. 사소하지만 나만의 책상과 자리가 있다는 것이 좋았다. 학창 시절 갖지 못했던 책상이 생겨서였을까. 정식 직장인이 된 후로 2년은 책상이 생겼다는 기쁨에 취해 야근을 해도 피곤한 줄 몰랐다. 작가가 되는 것을 반대한 엄마가 열여덟이 될 때까지 책상을 사 주지 않은 것이 낯선 사회생활을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 줄이야. 그렇게 책상이 좋아 성실히 출근하던 것이 꾸준함이 되었고 시간이 흘러 자연스레 경력이 쌓였고 그에 따라 직급도 달라졌다.



  버텨도 결과가 보이지 않는 것 같던 글 쓰는 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성과가 났다. 내 열심과는 반대로 줄어들던 통장 잔고와 다르게 매달 꼬박꼬박 통장에 꽂히는 월급도 좋았다. 비록 월급은 늘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 자린고비처럼 모아야만 했지만, 돌아올 월급날이 있다는 것이 주는 기쁨은 생각보다 컸다. 모호하지 않은 확실한 행복이 좋았다. 그렇게 금세 워커홀릭이 되었다.



  때가 차지 않은 건지 애초에 재능이 없는 건지 알 수 없는. 망망대해에서 줄기차게 파도 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지 않아도 돼서. 꼬박꼬박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주는 안정감이 좋아서 꿈을 먼 미래로 미뤄두었다. 마침 작가가 되는 일에는 적기도, 정년도 정해져 있지 않으니 몇 번이고 나중으로 미뤄도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변명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런데 요즘, 이런 내 마음에 자꾸만 균열이 일어난다.



몇 해 전, 퇴근을 10분 남겨두고 해고 통보를 받았던 그날 이후로 더는 일을 사랑하지 않게 됐다. 하루아침에 신기루처럼 사라진 내 책상과 소속을 보며 스스로 무엇이 되지 않으면, 누군가에게 귀속된 무엇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뼈저린 깨달음으로 생애 처음 내 이야기를 글로 풀었고, 그 글이 주변인들에게 읽히고 나서부터 종종 수필을 한 번 써보라는 제안을 받기 시작했다.



그 무렵 경력을 살려 새로운 일터를 구했고 그게 지금의 직장이다. 이직 조건의 일 순위는 무조건 '안정적인 곳'이었다. 직전 회사처럼 경영상의 이유를 핑계 삼아 단칼에 사람을 자르지 않는 곳.





  예전처럼 워커홀릭은 아니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안타깝게도 상사를 잘못 만나 하는 것은 모두 트집을 잡혔고 급기야 인격모독에 가스 라이팅으로 심신이 너덜너덜 해졌다. 평소 할 말은 하는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스스로를 향해 활을 겨눴다. 상사 밑에서 무려 일 년 반을 버텼는데,  당시 나는 퇴근 10분 전 회사에서 잘렸던 그날보다 더 헐거운 자존감을 입고 있었다.



  이전 회사에서처럼 별안간 잘리게 되면 그때는 진짜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버티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나더러 쓸모없는 존재라고 했다. 그날 밤, 울며불며 나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써 내려간 브런치 작가 신청서가 덜컥 승인이 났다. 죽지 않고 살아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은 감격스러움에, 퇴사를 결심하고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며 미뤄둔 작가의 꿈을 이뤄보자 했다.





  그런데 그간의 상황을 알게 된 회사는 내 퇴사를 만류했고 다른 부서로 보직이동까지 시켜주었다. 전화위복으로 업무도 단순관리로 바뀌면서 여유시간이 생겼다. 원래 하던 직무가 아니라서 커리어가 고민되기는 했지만, 이참에 글을 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때 더 욕심 내서 공모전에 도전해보자며 <퇴근 10분 전 회사에서 잘렸다>라는 제목으로 수필을 써낸 첫 문예지에서 별안간 수필가로 등단하게 되었다.



갑자기 술술 풀리는 상황을 보며 주변 사람들은 직장 생활을 하며 본캐와 부캐를 잘 운영해 보라고 권유했고 이곳에 머문 지 어느덧 곧 3년 차가 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사이 없던 팀이 신설됐고, 또 한 번의 팀 이동으로 업무가 바뀌어 단순 영업관리 이외에 손익관리까지 맡게 됐다는 것.



  통장에 꼬박꼬박 찍히는 숫자는 안정감을 주었지만, 업무 할 때 마주하는 숫자는 '숫자 울렁증'이 있는 나를 더욱 경직되게 만들었다. 그 긴장되고 울렁이는 순간만 잘 넘기면 업무가 마무리되는 것을 보면서, 어느 정도 숫자에 대한 두려움을 떨쳤고 그것이 묘한 쾌감을 주기도 했으나 그건 아주 잠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업무강도는 점점 세졌고 상사가 기대하는 수준도 높아만 갔다. 문제는 영업팀은 다섯인데 그 팀을 관리하는 담당 팀원은 고작 나 하나라는 것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이 몰릴 때는 팀장님이 손을 덜어줄 때도 있었지만 쳐내듯이 일에 속도를 붙여도 그 양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반년 넘게 지속되는 인력 공백도 한몫했다. 처음에는 잠시 도와달라는 말로 시작된 업무가, 해가 바뀌고 나니 본 업무가 되고 작년보다 더 나은 올해를 기대하는 을 보면서 꼭 하루씩 늘어나는 업무에 잠식되는 듯했다. 업무과다로 힘들다 말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마주한 지 일 년이 다 돼 가는 걸 보고 있자니 책임감으로 해온 것들이 도리어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주는 안정감으로 스스로를 언제까지 속일 수 있을까.



혹은 누군가는 무모하다 할지 몰라도, 나는 행복한 그 선택을 스스로 고를 수 있는 시기가 점점 저물고 있다면. 그래도 나는 이제껏 그래 왔듯이 무턱대고 미룰 수 있을까. 갖은 생각이 물 밀듯이 일어 잠잠했던 마음이 넘실거린다.



  커리어와 상관없는 업무를 쳐내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은 차곡차곡 쌓이는 글이었다. 지금은 당연한 듯이 글 쓰는 일은 뒷전이 되었고 일로 시작해 일로 끝나는 날들을 반복하면서 동력을 잃은 채 경력과 무관한 업무를 그저 책임감 하나로 죽기 살기로 쳐 내고 있는 스스로를 계속 모르는 척 정말 괜찮은 것인지 자문하게 된다.





하루살이 하듯 아깝게 흘려보내는 시간이 쌓이면서 또다시 미뤄두었던 꿈이 고개를 든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진짜 늦었다고들 하던데 더 늦기 전에 결단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멀찍이 차 두고 바쁘게만 걸었던 꿈이
발끝에 다시 걸렸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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