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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Feb 06. 2022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

서른이 훌쩍 넘어서도 듣는다는 것은

   

  어느덧 절기는 입춘인데 여행지에서 때아닌 함박눈을 마주했다. 바람에 흩날리는 눈발은 퍽 아름다웠다. 창밖으로 볼 때는 그저 멋진 풍경이었던 것이, 길을 나설 때에는 언제 미끄러질지 모르는 위험처럼 소리 없이 쌓이고 있었다.



칠삭둥이로 태어나 뇌성마비를 앓느라 내 나이 여섯 살에야 늦깎이 걸음마를 뗀 후부터 지금까지 부모님의 당부는 딱 하나였다. 넘어지지 않게 조심히 걸으라는 것. 비나 눈 내리는 날이면 근육이 굳어 평소보다 다리가 무거워지는 통에 통행금지를 할 때도 많았으나, 서른이 훌쩍 넘은 성인이 되고 나서는 통금 대신 조심하라는 당부에 힘이 실렸다.



어릴 때는 그 당부가 그저 잔소리로만 들렸다. 까짓 거 넘어지면 털고 일어나면 그만인데 유난이라고. 상처가 난 자리는 언제 반드시 아물 텐데 괜한 걱정을 한다 싶었다. 아빠가 넘어져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이른 아침, 가족 카톡방에서 아빠가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바람에 갈비뼈가 부러지고 어깨 근육이 상해 종합병원으로 검진받으러 가는 중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바쁘게 움직이느라 발끝에 넝쿨이 감긴 줄도 모르고 발을 내딛다가 넘어져 그렇게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아찔했을 사고의 순간이 머릿속에서 절로 되감아졌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부리나케 아빠에게 전화를 걸면서 여태껏 나에게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고 했던 이 잔소리가 아닌 염려 섞인 당부였음을 깨달았다.  



아빠는 첫날은 좀 아프더니 지금은 괜찮다며 도리어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했다. 나 역시 정말 괜찮냐는 말 말고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헤매는 중이었다. 아빠는 학창 시절 오빠가 옮아 온 아폴로 눈병에 감염됐던 것을 빼면 감기 한 번 앓은 적 없는 무적 같은 존재였다. 그런 사람이 넘어져 뼈가 부러질 정도로 다쳤다니 불현듯 아빠의 나이를 실감했다.





  세상 대부분의 아빠들이 그렇겠지만 아빠는 어릴 적 내 눈에 제일 멋진 슈퍼맨이었다. 키도 덩치도 얼굴도 어느 하나 빠지지 않아, 친구 아빠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었다. 그런 나의 슈퍼맨의 기력이 쇠하는 중이라는 사실이 일순간 무서웠던 걸까. 리액션이 고장 나 그간 수없이 넘어지고도 괜찮은 나를 자랑하고 있었다. 나도 예전에 넘어져 갈비뼈 부러져 봐서 아는데, 뼈가 어긋나 부러진 것만 아니면 괜찮을 거라고. 그 형편없는 위로에도 아빠는 나는 괜찮으니 걱정 말라는 말만 반복하다 끊었다.



다행히도 검진 결과는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대신 어깨 근육이 찢어졌으니 자가 재활훈련을 하면서 석 달 후에 다시 경과를 보자고 했다. 그 후 아빠는 다친 부위에 압박밴드를 차고 틈틈이 어깨 재활운동을 하며 경과를 보는 중이었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진통제를 먹으니 이제 아픈 줄 모르겠다며 너털웃음을 짓는 아빠의 눈가 주름을 보다가 불쑥 인생의 황혼을 향해 달려가는 시계 초침에 찔린 듯 가슴 한쪽이 아려왔다. 분명 절기는 입춘인데 아빠는 어느새 환갑을 넘겨 멈출 수 없는 시곗바늘 위에 올라탄 듯했다.  





그 순간 자취하는 내가 행여 끼니를 잘 못 챙길까 봐 틈만 나면 우렁각시를 자처해 빈 냉장고를 채워두고 가는 아빠의 수고스러운 발길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아빠는 기운이 뻗치다 못해 넘쳐, 내 걱정은 하지 마."



  걱정 말라는 말에 되려 자잘한 걱정거리까지 얹어져 먹은 것도 없이 마음이 더부룩해졌다. 매일 밥 먹듯 넘어지기를 반복하고도 별 거 아니라고 웃어넘겼던 나를 보면서도 이랬을까. 모든 자식은 부모 눈에 평생 어린아이 라지만, 장성한 어른이 되어서도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을 듣는 기분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부모로부터 독립해서 건강히 홀로 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데 평생 덜어줄 수 없는 짐을 얹고 있는 듯했다.



아빠는 나더러 왜 뭐든 해 달라고 조르지 않느냐고 물었지만, 애초에 나는 절지 않고는 갈 수 없는 인생이라 '앞으로 절대 넘어지지 않겠다'라고 다짐할 수가 없어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어른스러운 아이가 되는 것으로 나름의 홀로서기를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독립해서까지 수고스럽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가뜩이나 다쳐서 몸도 안 좋은데, 왜 옆집 드나들듯 오가냐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거절해도 아빠의 대답은 늘 유쾌했다. 운전은 다리가 하는 거라고, 다리는 멀쩡 하다며 엄마가 새 반찬을 할 때마다 묻는 통에 연이어 방문을 거절했다. 대신 근처 지나는 길에 들러 맛있는 점심이나 한 끼 사 달라고 하자 친구와의 약속도 마다하고 집 앞으로 찾아왔다.



"우리 딸 자취하고 나니 집에도 잘 못 오는데, 아빠가 맛있는 거 사 줘야지."



먹는 내내 음식이 부족하지 않은지 살폈다. 그러다 내 핸드폰 귀퉁이가 해진 것을 보고는 물건을 왜 그리 험하게 쓰느냐고 물었다.



다뤄서 그런 것은 아니고, 아무래도 잘 넘어지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왼쪽 귀퉁이도 얼마 전 넘어지면서 바닥에 쓸려서 이렇게 된 거라고. 일순간 아빠의 안색이 변했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깨졌다.



"아빠는 네가 넘어졌다고 하면 누가 손끝으로 긁는 것처럼 가슴이 아려."  



  나에게는 일상인 넘어지는 일이 아빠에게는 사건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넘어져 몸을 다친 사람은 아빠인데, 걱정의 방향은 나를 향했다. 아빠가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지고 다치는 일이야 나이가 들면서 겪는 당연한 과정이지만, 너는 그게 평생일 거라서 그렇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다며 진짜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절대 안 넘어진다고 그럴 일 절대 없을 거라고. 나는 그렇게 장담할 수가 없어서 아빠 얼굴을 보다가 코끝이 찡해져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대신 집 앞까지는 바래다주지 않아도 넘어지지 않고 잘 갈 수 있다는 말로 씩씩하게 인사하고 돌아섰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가 돼서도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말을 듣는다는 것은 마치 부모 얼굴에 절대 뗄 수 없는 혹을 보는 기분이었다. 먼 훗날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면 걱정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빠 마음에 나는 여전히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묵직한 짐 같았다.



그래도 아빠는 나를 우리 집 보물이라고 말했다. 한평생 곁에 끼고 살던 내가 독립을 하니 시집보낸 것처럼 적적하다 하다가도, 어차피 언젠가는 그렇게 될 일이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라며 가만히 나의 홀로서기를 응원해 주신다. 그 응원에 힘입어 나 역시 오늘도 하루하루 조금씩 독립 중이다.



  비록 내 육체는 부모로부터 완벽한 홀로서기를 할 수 없는 절름발이라 언제든 넘어질 위험이 있어, 그에 대한 염려를 줄일 수야 없겠지만. 그런 스스로를 탓하기보다는 내 허기진 배를 두둑이 불리기 위해 찾아와 준 아빠의 온기를 디딤돌 삼아, 마음만은 그 어느 누구보다 단단하게 가꾸리라 다짐해 본다. 어차피 세상은 길가에 놓인 돌부리가 아니어도 도처에 걸려 넘어지기 쉬운 위험한 순간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누구나 넘어지고 흔들리기를 반복하는 곳이므로. 육신은 쇠하고 넘어져도 마음만은 언제고 굳세고 씩씩하게 잘 서 있는 건강한 어른이 되어 멋지게 홀로 서겠노라고.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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