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쟁이캘리 Mar 08. 2024

잠들지 않는 행복

깨어있다면 행복을 마중하기 쉽다


  어릴 적 나는 유난히 잠이 많았다. 몸이 허약해서 쉬이 지치는 이유도 있었지만 바로 마주하기 힘든 현실을 피하고 싶을 때 잠만 한 것이 없었다. 자고 일어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푹 자고 일어나면 조금은 나아지는 듯했다.



양손 가득 무거운 현실 문제를 들고, 깊은 잠의 세계로 들어가 무의식의 공간에 묻고 돌아오기라도 하듯 잠에서 깨고 나면 무언가 홀가분해지는 듯했다. 자려고 눈을 감아도 잠이 오지 않거나, 원치 않는 악몽이 펼쳐져 놀라며 깰 때도 있었지만, 당장 불편한 현실이나 감정을 피하기에 이보다 편한 건 없었다.     






  일평생 나를 괴롭게 한다고 믿었던 장애는 다만 타고난 몸의 모양일 뿐이고 그것이 나를 불행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에도, 과거의 기억이 머릿속을 어지럽힐 때가 있다. 분명히 스스로 무엇이 그릇된 생각이고 어떻게 바라보는 게 바른 마음인지 깨달았다. 뒤틀린 지각을 바로 하고 마침내 해방의 기쁨을 맛보았는데도 불쑥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이 절망의 수렁에 빠뜨릴 때마다 다시 원점이었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지금의 나는 그곳에 없건만. 왜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구간 반복하듯 눈앞에서 고통을 마주한 사람처럼 구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해방의 기쁨에 기한이라도 있는 걸까. 생애 처음 맛본 기쁨의 여운이 가시고 현실로 회귀하는 중일까. 숱한 고민 끝에 문득 깨달았다. 어릴 적 잠의 세계로 들어가 무의식의 공간에 묻어두고 외면했던 고통의 기억 조각들을 이제야 제대로 직면하는 중이었다. 한 번도 온전히 소화한 적 없는 과거의 기억을 마주하고 그저,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 것뿐이었다.



예전처럼 잠으로 도망칠 것인지 아니면 여태껏 외면해 온 과거를 마주하고 어지러운 머릿속을 비울 것인지. 결국 나의 선택에 대한 물음이었다. 여전히 세상의 속임수에 속아 고통받을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로 인식하고 있다면 다시 선택해서 진정 마음을 자유롭게 놓아주고 편안함에 이르게 하기 위한 선택지일 뿐이었다.      





  깨달은 그 순간 알았다. 그동안 나의 시선은 온통 과거로 향해 있었다. 오래도록 타고난 핸디캡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행을 되새김질하며 살았다. 마음속 분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휴화산 같았고 행복해지려는 순간마다 세상이 훼방을 놓는다고 생각했다. 겉으로는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지만, 건강하지 못한 몸의 모양대로 마음이 절름발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



몸을 삶의 전부라고 생각했고 타고난 장애가 나을 수 없는 평생의 그림자라는 사실에 습관처럼 절망했다. 스스로 타고난 장애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씩씩한 사람인 척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다는 열등감이 들끓고 있었다.     



  욕심내도 가질 수 없어서 몸 이외의 다른 것들로 위안을 삼았을 뿐 누구보다 몸을 사랑하고 있었다. 애초에 갖지 못했던 건강한 육체를 탐냈고 불편한 몸을 온전히 사랑한 적 없었다. 왜 이런 몸을 입고 살아야 하는지 원망으로 가득 찬, 불성실한 주인이었다.      





  불현듯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은 이런 것이었다. 스스로 상처받았다고 믿으며 제 발로 어둠으로 향하던 순간, 아무도 나를 구원하지 않는 암흑이라며 제 손으로 눈을 가리던 순간.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가 버거워 서럽게 울던 기억의 조각이 떠올라 심장을 다시 찌르는 듯했다. 고통의 기억이 이리도 선명한데 어떻게 지난 과거를 보지 않을 수 있느냐며 다시 선택하라고 묻는 듯했다.      



  지난날 힘겹게 건너온 불행의 다리를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그중 어떤 기억은 여전히 눈에 선하지만, 더 이상 과거를 되뇌며 어둠을 자처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잠으로 도망쳐,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던 과거를 직면하며 이제라도 마음에 성실한 주인이 되어주기로 했다. 새로이 다짐하고 보니 불행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믿었던 과거는, 다만 교정되어야 할 실수였다. 바로 볼 용기가 없어서 당연한 불행으로 받아들였을 뿐 지난 과거는 지금 나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늦었지만 오래도록 외로웠을 마음에게 말했다. 지나간 것은 지금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도구가 되었으니, 그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 바르게 볼 수 있는 눈을 얻었으니 그 힘으로, 완전한 해방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막는 과거의 기억을 교정시켜 무엇으로도 위협받을 수 없는 완벽한 해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파수꾼이 되겠다고 말이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마음의 주인인
나의 역할은 하나이므로.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