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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Mar 15. 2024

사랑을 건네다

에필로그: 주는 것이 받는 것이다.


    몸은 그저 마음이 입는 옷이라는 것을 깨닫고 난 후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마음이 꺼내 입을 옷을 고르기 위한 침묵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다. 처음 타고난 핸디캡은 다만 몸의 모양일 뿐, 누구에게나 약점이 있고 저마다 형태만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세상으로 뻗치던 원망을 그쳤다. 사방에 빼곡하던 구름이 걷히고 빛이 들던 찰나, 어둠은 순식간에 물러났다. 상처받았다고 생각했던 과거도 말끔히 갰다. 전에 없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경험하며 그동안 물먹은 솜처럼 무거운 마음으로 어찌 살았나 싶을 정도로 감개무량했다.



  캄캄하던 마음에 등불을 켠 것처럼 지난날들을 살뜰히 비춰 어두운 곳 하나 없이 본연의 색으로 빛을 내는 듯했다. 태어난 순간부터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믿었던 그릇된 생각을 뒤늦게 교정하게 되었고 장애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지난 과거를 마주하고도 이토록 환히 웃을 수 있다니. 이제 더는 무겁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감마저 들었다. 일평생 거둘 수 없는 십자가라고 여기며 좋든 싫든 끙끙대며 짊어지던 것이 짐도, 잘못도 아니라니 이루 말할 수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한 길 마음속도 가 본 적 없는 초행길이라 굽이진 골목 사이에 또 어떤 어둠이 숨어있을지 알 수 없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고 매일아침 가만히 마음에게 읊조린다.  



빛이 왔다.
나는 세상을 용서하였다.




  오랜 시간 참 열심히 살았다. 그 힘의 대부분은 모든 불행이 바깥에서 왔다고 탓할 때 오는 안도감이었고, 나는 아무 잘못 없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기형적인 것이었다. 탓하는 삶은 그럭저럭 살만 했다. 남에게 피해를 입힌 적 없는 떳떳한 삶이라는 생각에 도취되어 깊이 들여다볼 생각도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애타게 찾던 빛을 마주하고도 완전히 행복에 젖어들지 못하는 엉거주춤한 마음을 보았다. 겨우 얻은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주춤하는 모양이, 꼭 절지 않고는 걸을 수 없는 핸디캡 같았다. 결국 마음도 몸을 닮아가는 걸까.    



  그간의 어둠을 흔적도 없이 몰아낼 만한 거대한 빛 앞에서도 어둠을 되뇌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나긴 물음 끝에 알았다. 오래도록 용서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불행의 시간 속에서 자주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았고 그 누구보다도 스스로에게 가장 무례했다. 내내 외로웠고 간절하게 사랑을 구했지만 역설적이게도 나 자신에게는 항상 뒤돌아 있었다. 단지 다리가 불편할 뿐 겉모습이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니라고 속상해하면서도 나를 받아준 적은 없었다. 원한 적 없는 몸을 맘대로 타고났으니 이 또한 감당해야 할 무게라며, 마음이 가벼워지는 순간을 경계했다.


       

  진심으로 스스로의 안녕을 바라지 않았다. 행복은 나와 거리가 먼 것이라고 믿었다. 드디어 발견한 자유를 유예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모두에게 사랑받기를 바라면서도 제일 가까운 나에게조차 그 무엇도 온전히 준 적 없었다. 어두운 마음속 밝히는 등불을 비추다 발견한 숨은 어둠은, 바로 나였다.



빛을 볼 자격이 없다며
눈 가리고 어둠 속에 머물러 있었다.



  온 세상 샅샅이 밝히는 거대한 빛이 와도, 스스로 눈을 가리거나 감아버리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치지 않는 악몽 같은 시간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바라면서도 눈을 가리고 있었으니 완전한 자유를 볼 리 만무했다. 진정 행복을 바란 적 없는, 말뿐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고 또다시 외롭게 만든 나에게 미안했다.



  가만 보니 태생부터 건강한 다리를 잃은 대가로 단단한 마음 밭을 얻었다고 믿고 있었다. 모든 것은 등가교환의 법칙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얻고 싶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가치를 교환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에게서 등을 돌렸다. 날 때부터 취하지 못하고 태어난 삶이니 나에게 있는 무엇을 잃게 될까 두려웠다. 마음속 깊은 곳에 그릇된 생각이 나에게 건네는 사랑조차 겁내게 만들었다.



  이제라도 나에게 진정한 사랑을 건네고 싶었다. 주고 또 주어도 줄어들지 않고, 서로가 되려 넘치게 받는 사랑을 주고 싶었다. 세상이 말하는 그 모든 법칙을 거스르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나 스스로 사랑이 되기로 결심했다. 존재가 사랑이 된다면 아무리 사랑을 건네도 잃을 것이 없을 테니. 아무것도 교환할 것 없이 끝없이 주고 결코 잃거나 가져가지 않는 사랑이 되기로 했다. 오래 웅크리고 눈 가린 악몽의 시간을 끝내고 자나 깨나 꿈길 걷듯 편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랑이 되어
나에게 사랑을 건넨다.

    


  태생이 미운 오리 새끼는 없다. 다만 밉게 보는 시선이 있을 뿐. 흐리던 눈 뜨고 보니 미운 것이 하나도 없다. 눈에도 빛이 담긴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눈빛이라 부른다. 감은 눈에 불을 밝혀 이제야 바로 보게 된 나에게 담뿍 사랑을 건넨다. 사랑 그득한 눈빛으로 온전히 볼 수 있도록.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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