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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Aug 16. 2020

오빠는 회사를  밥먹듯이 옮겼다 (2/2)

회사는 직원을 고르는 갑이 아니다



못 해 먹겠어, 때려치울래.



오랜 현장직 생활을 청산하고 회사원이 된 오빠는 6개월 만에 고비를 맞았다. 그런 말이 있다. 회사생활은 3, 6, 9가 고비라고. 나에게는 충분히 예상 가능했던 퇴사 선언이었다. 모든 결정은 자기 뜻대로 하는 사람이라 이번에도 그냥 말하면 듣지 않을 것이 뻔했기에, 나름 대화의 기술을 썼다.




"오빠, 직장생활 6개월 차는 경력으로도 못 써."

"체감은 1년 이상이야, 죽을 것 같아."


"하고 싶은 대로 해, 어떤 결정이든 응원할게. 근데, 1년 채우면 퇴직금 받을 텐데 아깝다."

"지금까지도 겨우 버텼는데 이 시간만큼 또 버티라고?"


"1년 같은 6개월이었다는데, 아무짝에도 못 쓰는 버리는 경력이라니 아까워서 그렇지."





'아오!' 오빠는 그렇게 외마디 비명을 남기고 1년을 채웠다. 그리고 약속대로 그만뒀다. 그때 받은 퇴직금으로 백수가 체질인 사람처럼 놀았다. 쉬는 동안 어느 정도까지 놀 수 있는지 보여주려는 사람처럼 정말 '잘' 놀았다. 대신, 그 6개월 동안 마치 2년 차 경력자처럼 업무를 배우고 나왔다. 버틴다는 생각을 버리고 남은 6개월 동안 '배운다'는 생각으로 업무를 대하다 보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더란다.   




유형은 크게 두 가지야.
싸가지 없는데 일 잘하거나
일은 못 하는데 착하거나.



본인은 싸가지가 없으니 '일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본인의 능력치를 키우는 쪽으로 자기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본인이 맡은 업무 이외에도, 필요하다 싶은 일이 있으면 독학을 해서라도 깨쳤다. 문서작업은 해본 적도 없어 사무 용어도 낯설어하던 사람이었는데, 주말까지 반납하고 독학을 하더니 지금은 주위에서 '엑셀 상위 5%'라고 칭할 정도가 됐다. 게다가 디자인, 재무에 이르기까지 단기간에 모든 업무를 섭렵했다. 사무부터 현장까지 단시간 내에 업무를 깨친 오빠는 못하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스티브 잡순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오빠는 내게 직장생활은 '스피드가 생명'이라고 했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야근에 시달릴 때도 있지만, 업무 처리속도에 따라 명과 암이 갈리더라는 것이다. 그렇게 오빠는 업무를 전방위적으로 터득하며 '싸가지는 좀 없지만 일 잘하는 직원'이 되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드라마 <미생> 속 그 유명한 장그래와 한석율의 PT면접 장면처럼 사무를 이해했다.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물건들은 왜 만들어져야 하는가.
과정을 거쳐야 만들어지는 물건들이다.
즉, 현장에서 만들어지는 물건들은 사무직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이다. (중략) 큰 그림에서 본다면 현장과 사무는 이로움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같다.



회사에 취직해 업무스킬도 늘었고 당연히 인정도 받으니 별 탈 없으면 오래 근무할 줄 알았는데, 오빠는 정착하지 않고 회사를 밥먹듯이 옮겼다. 평소 밥을 잘 챙겨 먹는 스타일도 아니니 엄밀히 따지, 밥 먹는 것보다 더 자주 회사를 옮긴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이직이 잦았다. 이직처를 알아보고 나오는 게 아니니 퇴사가 잦았다고 해야 좀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보통 오빠가 말을 꺼낼 때는 모든 고민이 끝난 뒤라 '나 회사 그만 둘 거야' 혹은 '나 회사 그만뒀어'라고 통보하는 식이라, <잠깐만 회사 좀 그만두고 올게>라는 영화 제목을 보자마자 바로 오빠를 떠올렸다.  



지금이야 '평생 회사'가 없는 시대라지만 부모님은 툭하면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오빠를 두고, 꽤 오래 속앓이를 했다. 혹여 저러다 진짜 취직을 못 하게 되면 어쩌나 싶어, 노심초사 하며 물을 때마다 오빠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회사만 직원 고르나,
직원도 회사를 골라야지.



오빠는 지금껏 총 12곳의 직장을 다녔고, 그중 사무직은 총 6번의 이직 끝에 현재 회사에 2년째 재직 중이다. 오빠에게 회사는 단순 사회생활이 아닌 인생공부였다. '자신이 이 곳에서 배울 것이 있는가'에 따라 근속 여부를 결정했다.



취업난이 심한데 그러다 아예 놀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이직 자리도 안 알아보고 그만두느냐는 걱정스러운 말에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저 딱 한 마디만 덧붙일 뿐.




나쁘면 경험, 좋으면 경력이야.
겁부터 난다면 자생력이 부족한 거다.



오빠는 '자생력'도 없이 사표를 던지는 것은 무모한 일이라 말했다. 스스로 자신이 없고 걱정이 앞선다면 지금 사는 그 일상을 깨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게 맞단다. 하지만 그 외의 경우라면 결심이 섰을 때 움직여야 늦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만년 청춘이 아니고 세월은 계속 흐른다는 사실을 감안해 본다면 틀린 말이 없었다.



밥 먹듯 회사를 옮긴 것은 맞지만, 그전에 충분한 고민의 시간을 거친 결정이라는 말이다. 무턱대고 아무거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원하는 것이 있었다. 다만 그 목적지로 가는 모양이 보통 사람들의 방식과 다를 뿐. 오빠는 어느새 회사원이 다 되어 있었다. 몇 년 일찍 회사생활 한 나보다 더 빨리 적응해 신기하기도 하고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게, 늦깎이 회사생활을 시작한 오빠는 불과 몇 년 사이에 자신만의 페이스를 찾았다. 집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여전히 오빠다웠다.



오빠 말이 다 맞다. 회사는 직원을 고르는 갑이 아니다. 직원도 회사를 고를 권리가 있다. 하루 24시간 중에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게는 8시간, 많게는 그 이상이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곳이 '일터'이니, 그 터를 고르는 일은 되물을 것 없이 당연한 일이다.









돌이켜 보면 나의 첫 회사도 스스로 골라서 갔다. 이력서에 장애 여부를 체크하는 회사를 거르고, 핸디캡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살아내는 삶의 자세를 높이 평가해 주는 곳에서 시작했다. 오히려 핸디캡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아, 혹여 또 입사 번복이 될까 조심스레 물었을 때 '그게 무슨 문제가 되느냐, 일하는 데에는 아무 상관없다. 그냥 꼭 당신이랑 함께 일하고 싶다.'라고 말해주던, 나의 능력인정해 준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회사를 밥먹듯이 옮겨 부모님 속을 애태우던 오빠는 지금은 아주 열심히 회사생활 중이다. 스스로의 앞가림을 하며 자기 길을 개척하는 데 여념이 없다. 오빠는 종종 이렇게 말한다. 자기 고민을 아무리 남에게 말해도 결국 결정은 본인이 하는 거라고. 고민이 길수록 생각은 나쁜 쪽으로 기울기 쉬우니 신중하되 짧게 하라고. 그리고 결정했다면 그 후로는 뒤돌지 말고 내가 나를 믿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제와 생각해 보면, 오빠는 '이직이 잦은 부적응자'가 아니라 자신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일할 수 있는 터를 찾아서 기꺼이 발품을 파는 시간을 보낸 사람지도 모르겠다.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체질인 처럼 놀 때도, 그 고단함을 풀어야 다시 새로운 일터를 찾아 떠날 수 있으니 빈틈없이 잘 놀았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오빠는 아직 딸린 식구가 없는 솔로이고, 밥먹듯이 회사를 옮기던 '파란만장한 이직 이야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났기 때문에 긍정적인 결론으로 닿을 수 있는지도 모른다. 또 이직처를 알아보지도 않고 사직서부터 쓰는 일은 '일부 직군에게만 적용 가능한' 팔자 좋은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다. 나 역시도 오빠가 대책 없이 그만둘 수 있었던 것은 직업군의 특수성 때문에 가능한 부분도 있다고 말한 적 있기 때문에, 그 생각에 대해서도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자신이 일할 회사를 고르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시간 속에서 깨달은 것들이 꽤나 값지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저마다 주어진 삶의 다양한 영역 내에서 누군가의 인정이나 격려도 중요하지만, 스스로를 믿는 힘을 기르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과 설사  수 없이 넘어지는 중이라고 하더라도, 완전히 고꾸라지지 않는 마음을 키우는 것. 



매일 주어진 하루를 열심히, 때로는 또 치열하게 살아내 스스로 다독이고 위로할 수 있기를. 남의 말이 아닌, 내가 나에게 건네는 위로와 응원의 말들로 스스로의 존재를 굳건히 할 수 있는 '자생력'을 키워 함부로 흔들리지 않는 삶이 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남들에게 보이는 건 상관없어요.
화려하지 않아도 필요한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안 보일 수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 드라마 <미생> 중에서 발췌




■ 1부 링크 :

http://brunch.co.kr/@soonsookys/34






1+1=

/ 담쟁이캘리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고 의심도 없이
염불 외듯 익힌 공식 하나



그 덕에 암산은 못 해도
사과에 다른 사과를 더하면
두 개의 사과 얻는다는 것과



일에 일을 더하면
야근이 된다는 것쯤이야
손꼽아보지 않고도
쉬이 알 수 있었건만



세상일에는 공식이 없어
그 어떤 서적을 뒤적여 봐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
이 생의 숙명이라 하네



하나 더하기 하나로
둘이었던 연인도 옛 일
주문 외듯 익힌 배움 하나



제 때에 표현은 못 해도
사과에 다른 사과를 더하면
수 개의 후회 지운다는 것과



일(日)에 일(日)을 더하면
매일이 된다는 것쯤이야
손 놓아보지 않고도
쉬이 알 수 있었건만



세상일에는 공식이 없어
그 어떤 인연을 백날 보아도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것이
이 생의 숙명이라 하네



단 한 번뿐인 생에
어떤 하나 더할지 몰라도
암송하듯 익힌 것 하나



삶은 너무도 아름다우나
찰나로 저물고 마는 것이니
혹여 즐거운 무엇 하나 더한다면



일(日)에 일(日)을 더해
몸 쇠하기 전에 기꺼이 시 낭송하듯
눈부신 찰나를 노래하는 삶 살기를



그리하여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아닌 무한대로 불어나길 바라본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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