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받는 백수생활 #1
1.
나는 백수다. 예전에는 백수를 빈둥빈둥 노는 한심한 사람으로 여겼는데, 요즘은 꼭 그렇게만은 보지 않는 거 같다. 백수를 다른 시선에서 말하는 ‘니트'라는 용어도 생겼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건 사람들이 잘 모르니, 대개 나는 나를 일하는 백수라고 말한다. 사전적으로 백수는 직업이 없는 사람을 뜻한다. 직업이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급료를 받고 자기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한 가지 일에 종사하는 지속적인 사회 활동을 말한다. 나는 아직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했다.
2.
직장인 친구들에게 직장에 들어가고 나서는 어떤 고민을 하는지 물어봤더니, “이 일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노후 대비는 뭘로 해야 할지가 걱정"이라는 말을 들었다. 워라밸에 관한 고민도 있었다. 주말을 애타게 기다리는 삶이 지친다는 것이다. 그래도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점은 좋다고 했다.
직장에 들어가도 삶에 대한 고민은 여전하구나. 요즘에는 회사 생활도 길어봤자 20년이라고 하니,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살아온 거지? 20년 동안 회사를 다니고 직장에서 나오면 그때는 뭘로 밥벌이를 하고 살아야 할까? 회사 이름을 지우면 나는 누구일까?
3.
작년까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시도했다. 유튜브를 하고 싶어서 했고, 글을 쓰고 싶어서 브런치 작가도 신청해보고, 블로그와 티스토리도 열어보고, 영상을 찍고 편집도 해보고, 팟캐스트를 해보고, 뉴스레터도 제작해보고, 이엪지 덕에 홈페이지와 명함도 만들었다. 내가 해온 걸 보여줄 포트폴리오를 만들기도 했다. 좋아하는 걸 하다 보니 잘하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고, 우연한 기회로 만난 사람들과 재미있는 협업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의문이 생겼다. 난 대체 뭘 하기 위해, 무엇을 이루기 위해 이 많은 것들을 하고 있을까?
4.
생각해보면 나는 늘 하고 싶은 것이 분명했고, 취향과 가치관이 뚜렷했다. 그런 내가 직장에 들어가는 게 맞는 걸까. 내 색깔을 조직에 맞추는 것과, 내 색깔을 가진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내는 것. 무엇으로 내 남은 20대를 보내야 할까. 조직에 들어가면 고정 수입은 나오겠지만 하고 싶은 일에 투여할 시간은 부족하다. 프리랜서가 되면 밥벌이는 불안정하지만 자유롭다. 확실한 건 직장에 들어가도 여전히 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할 테고 나만의 직업을 찾을 거 같긴 하다. 생각할수록 답답하다. 직장이 없어도 안정적으로 살 순 없을까? 자유롭게 일하고 싶은 백수가 먹고살려면 어떤 일을 해야 할까?
5.
나는 눈치 받는 백수가 아니라 박수받는 백수가 되고 싶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아무리 멋지다고 칭찬해줘도, 사회 제도가 뒷받침해주질 않으면 백수는 늘 눈치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누구나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기 십상인 요즘, 직장이 없어도 누구나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게 맞지 않은가. 이왕이면 좋아하는 일로 말이다.
6.
좋아하는 일이자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만들려면 '수익 파이프라인'을 찾아야 한다. 내 경우 파이프라인은 많다.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잉여북스', 콘텐츠 미디어 'EFG', 팟캐스트 '에코쌀롱' 등등.. 실제로 각각의 채널에서 광고나 협업 문의가 들어온 적이 있어서 일시적인 수익을 낸 적도 있다. 일시적인 수익을 고정적인 수익으로 전환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7.
내가 생각해낸 첫 번째 방법은 꾸준히 콘텐츠를 만드는 것. 무엇이든 꾸준히 하면 최소 1명이라도 콘텐츠를 보기 마련이고, 나를 아는 사람들을 늘리려면 꾸준한 기록이 필요하다. 네이버 블로그를 중심으로 꾸준히 기록하면서, 브런치와 인스타그램에 콘텐츠를 유통하는 방식으로 홍보를 해야겠다.
8.
두 번째 방법은 협업하기. 광고인데 협업인 척하는 것 말고, 진짜 말 그대로 협업을 제안하는 건 긍정적으로 보려고 한다. 내가 운영 중인 사이드 프로젝트에서는 협업 문의가 온 것도 있고 내가 먼저 협업 제안을 한 것도 있는데, 전부 결과물이 만족스러웠고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연대하기도 한다.
당장의 수익은 나지 않지만 누군가와 같이 무언갈 만들어내는 건 여러모로 좋은 점이 많다. 동네방네 떠들다 보니 평소보다 더 화제가 되기도 하고, 협업하는 상대가 갖고 있는 소스와 내가 갖고 있는 소스가 만나 시너지를 내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에 했던 <럽마이센시티비티> 프로젝트의 경우 다른 분이 소책자를 제작하고 나는 홍보를 담당했는데, 서로가 잘하는 분야를 나눠서 하니 일이 효율적으로 진행되어서 좋았다.
9.
세 번째 방법은 독립출판물 내기. 올해 목표는 나만의 책 만들기다. 책은 블로그나 온라인 플랫폼에서 기록을 남기는 것과는 다른 그만의 특성이 있다. 나의 경우 채널이 많아서 기록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보니, 특정 주제와 콘셉트로 내 이야기를 엮어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최근에 <그레타 기획 클럽> 에서 진행하는 책 만들기 모임에 합류했고, 8월 말까지 원고 완성을 목표로 글을 쓰기로 했다.
10.
꾸준히 콘텐츠를 만들고, 협업도 해보고, 책을 내면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아직은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일단은 뭐라도 해봐야겠다. 박수 받는 백수생활 실험 시이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