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백써 #6, 물건 백 가지에 대해 써 봄.
어릴 적 길을 걷다 공중전화가 보이면 꼭 하던 장난이 하나 있다. 당시엔 동전이나 전화카드로 이용하는 공중전화가 거리 곳곳에 흔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사람들 간에 소소한 정이 넘쳤던 덕분인지, 통화를 하다가 잔액이 몇십 원 정도 남게 되면 다음 사람을 생각해 수화기를 내리지 않고 전화기 위에 올려두거나, 발신이 한 번 정도 가능할(물론 통화 자체는 대략 30여 초 정도밖에 할 수 없을) 전화카드를 꽂아두고 그냥 가는 경우가 꽤 있었다.
열 살쯤에 이르러 마침내 집 전화번호를 외우게 된 나는 그런 공중전화를 발견할 때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곤 했다. 그리고 이내 경쾌한 리듬감으로 버튼을 눌러 우리 집에 전화를 걸었다. 이런 경우 전화를 받는 사람은 십중팔구 어머니셨는데, 평소 목소리보다 반 옥타브 정도 올라간 어머니의 우아한 ‘여보세요’가 수화기 너머로 들리면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내리깔고,
“여보세요? 네, 거기 강OO 여사님 댁이죠?”
“네, 맞는데요. 누구시죠?”
“아, 반갑습니다. 실은 제가 뭐 하나 여쭤볼 게 있어 연락을 드렸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근데 어디라고 하셨죠?”
“그건 중요하지 않고요. 그것보다도, 실은 댁의 아드님께서 오늘 저녁 반찬이 뭔지 궁금하다고 하시네요.”
“네? (잠시 침묵) 이 녀석, 아들이구나.”
내가 박장대소하면, 너그러우신 어머니는 목소리를 잠시 가다듬으시곤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네, 오늘 저녁은 아드님이 좋아하시는 오징어볶음이라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아들, 6시엔 밥 먹을 거니까 늦지 않게 들어와라.”
사실 이 장난은 한두 번의 시도 이후에 신선도가 급격히 떨어져서, 이후에는 몇 가지 새로운 패턴을 시도해야만 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레퍼토리 자체는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우선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목소리 톤을 최대한 내고, ‘거기 피아노 연주를 그렇게 잘하시는 강OO 여사님이 사시는 집이라고 하던데, 맞죠?’, ‘OO동에서 제일 이쁘고 상냥하신 분이 거기 사신다고 하시던데, 전화 받으시는 사모님이 그분 맞나요?’, ‘이OO 군 어머님 되시죠? 놀라지 말고 들으십시오. 실은…’ 따위의 능글맞은 멘트들을 도입부로 던지고, 이후는 언제나 ‘오늘 저녁 반찬이 뭡니까’로 허망하게 끝을 맺는, 무척이나 실없고 유치한, 나 혼자만의 저퀄리티 콩트 같은 장난질이었다.
한편으론 내 어머니도 참 대단하신 것이, 분명 무언가 바쁜 일을 하시던 와중이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매번 나의 장난에 흔쾌히 속아주셨고(알고도 맞장구를 쳐주신 적이 더 많으실 것이다), 어떤 시점에 이르러서는 첫 마디만 듣고도 바로 눈치를 채시곤 본인이 나보다 더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네네, 맞아요. 맞아. 바로 접니다’하고 천연덕스럽게 대답하시는 경지에 오르셨다.
비단 이런 에피소드가 아니더라도,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자녀들의 짓궂음이나 느물거림에 늘 핀잔보다는 위트로 화답하시는, 실로 대단한 재기와 여유를 지닌 분이셨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어렵고 대단한 마음씀씀이라는 것은, 내가 하루하루 아이들을 키우며 더욱 크게 실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이제는 길에서 전화부스조차 찾아보기 힘들어졌지만, 간혹 드물게도 어딘가에서 공중전화를 발견할 때면 그 시절 어머니와 주고받았던 실없는 장난이 떠오른다. 만약 지금 내 눈앞에 몇십 원의 잔액이 남아 깜빡거리는 공중전화가 있다면 누구에게 전화를 걸게 될까? 그게 누구라고 해도, 아마 굳이 할 말이 있어서 전화를 하는 건 아닐 것 같다. 전할 말이 있어 편지를 쓰기보다, 때때로 편지를 적어가며 상대에 대한 나의 마음을 읽어 내려가듯이, 전화를 받는 이에 대한 나의 마음이 듣고 싶어 수화기를 든 것일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마치 유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공중전화가 이어주었던 설익은 대화들도 종종 그립다. 수련회에서 친해진 형이 집에 돌아가서도 연락하자며 집 전화번호와 같이 손에 쥐여줬던 5천 원짜리 전화카드, 서먹해진 친구에게 사과를 하겠다며 전화를 걸었지만 어설픈 자존심에 방학숙제 얘기만 잔뜩 하고 끊었던 어느 여름날, 그리고 슈퍼에서 동전을 바꿔가며 달궈진 전화기 너머로 하고 싶은 말을 빙빙 돌려서 했던 열여섯 살의 나까지. 분명 사진으로 인화된 추억들은 아니지만, 귓가에 맴돌던 그 소리 소리들이 지금도 내 마음 언저리에 남아 있음을 하루하루 살아가며 느낄 때가 많다.
‘그냥’ 하는 전화보다, 필요해서 걸고 필요해서 받는 전화가 더 많아진 요즘의 나는 으레 직장인들이 그러하듯 전화가 피곤한 게 사실이다. 수단이 마땅치 않았음에도 오히려 절실한 전화가 많았던 그때와 달리, 지금의 나는 평일 내내 울리는 스마트폰이 도리어 짐스러울 때가 적지 않다. 꾸며진 목소리로 말하고, 준비된 단어와 문장들을 애써 능숙하게 내뱉으려 하는 내 모습도 이따금 낯설다. 어쩌다 그런 전화들로 마음이 많이 구겨진 날이면, 예전처럼 공중전화를 찾고 싶어진다.
그건 아마도,
목적도 용건도 제쳐둔 채, 두서없는 말들과 실없는 농담으로 텅 빈 공중(空中)의 시간을 채우던, 그렇지만 서툴게나마 진심을 이야기하고자 노력했던 그때의 나를 만나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