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백써 #7, 물건 백 가지에 대해 써 봄.
동료들과 모처럼 점심 식사를 하러 갔다가, 식당 의자 다리에 테니스공을 꽂아둔 것을 보았다. ‘요즘도 이렇게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다 테니스공을 보니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우리 아버지다.
아버지는 테니스를 참 좋아하신다. 젊은 시절부터 즐겨 하셨고, 평교사 시절에는 학교나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대회도 여러 번 나가셨던 걸로 기억한다. 테니스는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어주는 매개이기도 했는데, 소싯적 첫 부임지에서 어머니를 처음 본 아버지가 본인의 운동신경을 자랑할 겸, 어머니에게 테니스를 가르쳐주겠다고 했으나 막상 코트에 나가보니 비교적 입문한 지 얼마 안 된 아버지보다 어머니의 실력이 조금 더 나았다는, 다소 민망하면서도 귀여운 에피소드가 지금도 전해진다.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워커홀릭이셨다. 직장 생활을 하시기 전에도, 할아버지가 일찌감치 돌아가시는 바람에 잠시나마 유복했던 어린 시절을 뒤로 한 채 고학생의 길을 걸으셔야만 했다. 요즘도 이따금 옅은 미소를 지으시며 일과 공부를 병행했던 당시를 회상하시곤 하는데, 그 나름의 자부심으로 구김 없이 말씀하려 하시지만 주름진 아버지 얼굴 너머에 작고 깡마른 소년의 얼굴이 겹쳐 보일 때면 아무래도 애잔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교직을 시작하신 뒤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본인의 업무 역량을 키우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전산 선생님이셨는데, 주말이나 방학 때면 늘 교육이론과 최신 컴퓨터 프로그램의 교재를 펼쳐 놓고 컴퓨터 앞에 종일 앉아계셨던 아버지의 뒷모습이 떠오른다. 물려받은 것 하나 없이 빠듯한 살림을 일으켜 세우고자 빠른 진급을 원했던 아버지는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시골 학교나 갑작스레 자리가 난, 지금 사는 곳과는 멀고 먼 지역에 지원하는 일도 잦으셨는데, 그 탓에(이제는 가장이 된 나도 충분히 이해하고 내 삶에 큰 도움이 되는 경험이라 생각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기 전까지 총 몇 번인지 쉽사리 세기도 어려울 정도의 전학과 이사를 경험해야만 했다.
지금 사는 고장에 정착한 후에도 아버지는 나와 누나의 교육을 위해 식구들은 도시에 남겨둔 채 혼자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생활하셨다. 내가 갓 소년티가 나기 시작한 때였고, 그즈음부터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런 아버지가 평생을 사랑하신 스포츠가 바로 테니스다. 평일 내내 교육과 출장을 반복하시고 주말에 잠시 찾은 집과 교회를 오가는 와중에도 틈이 날 때마다 코트를 찾으셨던 분이 우리 아버지다. 열정과 패기가 얼마나 넘치시는지 정형외과 신세도 여러 번 지셨었다. 몇 해 전 정년퇴직을 하신 후, 어르신 대상의 컴퓨터 교실 강사로 나가시는 요즘도 현업에 계실 때처럼 주말마다 코트를 찾는 습관을 유지하고 계신다. 토요일에 아버지께 전화를 드리면 으레 ‘테니스 가고 있다’ 아니면 ‘테니스 갔다 왔다’다.
어릴 때는 못마땅했던 것도 사실이다. 어쩌다 집에 오신 분이 아내가 차려준 밥만 후다닥 드시고선 테니스 가방 하나 메고 곧바로 나가시는 모습이, 돌아오셔선 씻고 소파에서 코를 골며 주무시는 그 모습이, 일주일 동안 아버지를 기다렸던 어린 소년의 마음에는 철없게도 성에 차지 않았을 듯싶다.
아버지가 테니스라면, 나의 경우에는 산책과 가벼운 조깅이다. 유산소가 필요한 몸 상태가 된 이후로는 일주일에 3, 4일 정도는 새벽에 천변 길을 나서고 있다. 내가 다니는 산책로 가운데에는 테니스장이 하나 있는데, 새벽 5시 무렵에도 사람들이 여럿 있다. 기합 소리와 함께 힘차게 공을 주고받는 그 사람들을 보면, 자연스레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 그리고 내 나이쯤에 아버지는 저런 코트 위를 뛰어다니시며 무슨 생각을, 어떤 감정과 기분을 가지셨을지 궁금해진다.
물론 이제는 조금이나마 아버지를 이해하는 면도 있다. 나도 두 아이를 키우고, 직장 생활을 하며,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게 보통의 일상이라 할 만한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공감하게 된 건, 운동에 대한 절실함이다. 혈압과 체중을 신경 쓸 필요가 없었던 나이에는 분명 느끼지 못했을, 몸을 움직이는 행위 자체가 삶에 구원 같은 시간이 된다는 걸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비단 건강 때문만은 아니다. 하루하루 쌓여만 가는 무거운 책임감, 경력과 무관하게 복리로 불어나는 업무 스트레스, 어딘가의 관리자, 누구의 남편, 또 누구의 아버지라는 복잡다단한 정체성을 잠시나마 어깨 위에서 내려놓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아무 생각 없이 땀을 흘리는 시간이 지금의 내게는 무척이나 중요하고 소중하다. 아마 우리 아버지도 그렇지 않으셨을까?
어린 아들은 일하는 아버지의 뒷모습만을 기억한다고 뭉뚱그리듯 말했지만,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전화로 늘 나의 안부를 먼저 물으셨고, 내가 꼬꼬마 시절에 좋아하던 과자나 음료수를 사다가 찬장에 슬쩍 넣어두고 가신 적도 많았다. 학교와 집, 교회, 테니스장만을 오가셨던 건 그 외에는 다른 무엇도 누리고 즐길 만한 여유와 씀씀이가 없었던 탓일 거고, 그렇게나 팽팽히 조여진 생활 속에서도 술, 담배 하나 입에 대시지 않은 채 평생을 건강한 마음과 유쾌한 에너지로 나와 누나, 그리고 어머니를 대해주셨다.
통통 튀며 네트 위를 오가는 테니스공이 아버지와 닮아 보인다. 늘 활력을 잃지 않으려고 하고, 어떨 때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저돌적이지만, 결코 다른 누군가를 때리고 상처 입힐 만한 딱딱함은 지니지 않은, 그런 사람. 샛노란 빛깔 같은 순진무구함과 천진함이 때로는 답답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고 나니 세상에 이런 어른이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그리고 그런 분이 내 아버지임을 감사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다.
아버지의 테니스공 같은 삶을, 테니스의 ‘테’자도 모르는 내가 한번 배워볼 수 있을까? 자신에게 주어진 압력을 최선을 다해 받아 내고, 그 와중에도 다른 이들을 부드럽게 보살피며, 필요하다면 언젠가 의자 다리에도 기꺼이 몸을 내어주는 그런 삶 말이다.
비록 테니스는 영 취미에 없지만, 다가오는 주말에 아버지를 뵈면 TV로 테니스 경기라도 한 편 같이 볼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