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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 플렉스

by 수리향

오전에 PCR 검사를 받았다. 이곳은 학교를 제외하고 모든 봉쇄가 풀린 상태이지만 여전히 장춘시에서 확진자가 나오고 있어서 매주 1회는 의무적으로 PCR 검사를 받아야 한다. PCR 검사를 받고 시험 문제를 마저 출제하고 출력을 하러 학교를 갔다. 몰랐는데 벚꽃이 여기저기 피어 있는 완연한 봄 날씨다. 얇은 코트 하나만 걸치고 빙 돌아서 학교를 가는데 풍경이 유독 아름다워 걸음을 멈추곤 한다. 한국과는 다른 보도블록과 거리의 모습이 점점 익숙해져 간다. 한국의 거리는 이미 기억 속 까마득히 잊혀서 드라마를 보며 한국에서의 삶을 간간히 더듬는다. 후진 골목길 추격씬이 나오면 이전 학교를 가던 길 같고 서울 도심의 모습을 보면 부모님 집 근처 같다. 다들 잘 살고 있겠지.


프린트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파인애플과 딸기를 샀다. 이곳은 야채와 과일이 무척 저렴해서 한국에서는 감히 돈 아까워서 한 달에 한 번 사 먹을까 말까 한 과일들을 거의 매일 사 먹을 수 있다. 특히 딸기는 크고 싱싱한데 저렴하기까지 해서 엄청 사 먹고 (다 못 먹어서) 엄청 버리고 있다. 파인애플은 사과와 함께 최애 과일인데 한국에서는 비싸서 먹지 못했지만 여기서는 하루 한 통씩 먹는 것 같다. 이렇게 매일 먹다 보니까 밥 먹을 때 혀가 얼얼해서 밥이 잘 먹히지 않는다. 생각지 못한 다이어트 효과다. 이곳의 파인애플은 잘 깎은 한 통이 11위안 정도이다. 근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그렇다.


딸기와 파인애플


재미있는 것은 과일과 야채 말고 공산품은 비싼 편인데 특히 과자가 비싸다. 그래서 과자를 사는 것보다 과일을 사는 게 무조건 저렴하기 때문에 장 보다 돈 아끼려고 과자 내려놓고 과일을 사게 되는 신기한 습관이 생기게 된다. 아무튼 살아 있는 (혹은 살아 있던) 것은 대체로 저렴한 이곳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돈을 써도 한 달에 3000위안을 쓰기가 어렵다. 한국에서 쓰던 생활비 60만 원과 비슷한데, 한국에서는 정말 아끼고 아껴야 60만 원이고 여기서는 펑펑 써서 60만 원인 것이 조금 차이인 것 같다. 계산해보니 월급도 더 많이 받는데 한국에서 다달이 들어오는 월세까지 합치면 나는 점점 부자가 되어 가고 있다.


남는 돈은 타오바오에 막 바치면 된다고 하는데, 문제는 봉쇄 기간이라 타오바오님이 배송을 안 해주신다. 이미 한 달 전에 주문한 마이크님도 장춘에서 막혀서 결국 이틀 전 자동 반품되었다. 나는 반품을 누른 적이 절대 없고 택배사 측에서 반품 공지를 주다 못해 본인들이 반품을 시켜버린 것이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긴 하지만 그 공장들이 연길에서는 대체로 멀리 떨어져 있고 장춘을 꼭 거치기 때문에 장춘 봉쇄는 곧 택배 불가라는 이야기와 같다. 당분간은 오프라인 시장에서 물건을 조달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이렇게 돈을 쓸 데가 없으니 나는 나가기만 하면 마구 플렉스를 해도 돈을 쓰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 결국 여름 방학 때 즐거운 플렉스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이제 위챗 페이도 되고 중국 전화도 되니 현지인처럼 중국을 여행할 수 있다. 그때쯤에는 다른 지역들 봉쇄가 풀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여름 방학은 또 순식간에 올 테니 열심히 여행 계획을 세워야지. 중국에서의 하루가 또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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