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직장과 집 문제 등 큰 일을 많이 겪었던 나는 연말 쯤 고질적이던 건강 문제에 시달렸다. 10월에 장염에 시달리더니 어느 새 대장염이 되어 나에게 돌아왔다. 죽과 계란만 먹다가 올해 초에 용종을 절제하고 몸이 많이 회복된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은 분명히 '아무 거나 잘 먹어도 된다'라고 말씀하셨기에 몸이 회복되자 고삐가 풀린 나는 정말 아무거나 다 먹었다. 그 날은 대학원 프로젝트로 조원들이 모인 날이었다.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고 마침 출장 가시는 분도 있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고기로 배를 채웠다. 평소 집에 고기 냄새가 베는 것을 싫어하던 나는 급식이나 외식에서 고기가 나오면 날 잡고 정말 열심히 먹었다. 그 날은 용종 절제 후 거의 처음으로 고기를 양껏 먹었던 날이다. 간만에 먹은 고기는 한입 먹을 때마다 내 입을 즐겁게 춤을 추었고 원래 고기 먹을 때는 항상 밥과 된장찌개를 시켰는데 그 날은 밥도 안 먹고 고기로만 배를 채웠다.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식사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하지만 그 결과가 항상 해피하지는 않았다.
새벽에 깼을 때 모기에 물린 줄 알았다. 너무 가려워 정신을 차려보니 온 몸의 반을 붉은 두드러기가 덮고 있었다. 모기 20방은 물린 것 같은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그 동안 한번도 모기가 들어온 적이 없던 집인데다 그 때가 초봄이라 도저히 모기가 생길 수 없는데 '요즘 기상 이변이 이렇게 심각했던가. 말세다 말세야...' 멍한 정신으로 한참 생각했다. 두드러기는 점심 후로 잦아 들었다. 그 때쯤 이것이 내 몸 안에서 생긴 알러지 반응이며 그 원인이 전날 먹은 고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부모님은 웃으시며 기생충 때문이다, 침구를 안 빨았다, 꽃가루 알러지다 그런 헛소리를 하시며 웃셨는데 다 원인이 아니었다.
동네 병원에서 검사도 하고 꽤 여러 번 진료를 받았는데, 원인은 알 수 없으며(알러지는 그런 경우가 흔하다고 한다) 본인이 식습관 때문이라는 확신이 있다면 반드시 매일 식단 일기를 쓰라고 조언했다. 그리고 지역에 한분 밖에 없다는 알러지 내과 전문의를 알려주며 대학병원 진료의뢰서를 주었다. 나중에 겨우 시간을 내서 그 교수님에게 진료와 많은 검사를 받았는데, 증상을 경감시키는 약을 먹으라는 진단이 전부였고 치료는 약이나 주사로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검사로 돈만 엄청나게 날리고(다행히 연초에 실비보험을 들어 놓았다) 치료가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남은 검사를 취소 시키고 대학병원에 발길을 끊었다.
요즘 약이 워낙 좋아서 약만 먹으면 알러지 반응은 2-3시간 뒤에 사라진다. 그러니까 고기를 먹은 날은 그냥 약을 먹으면 잘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평생 이 약에 의존하며 살아야 한다. 의료보험 덕분에 약값도 저렴하고 동네 병원에서도 2주~4주 치를 지어 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는데, 이 잠을 못 자는 고통이 생각보다 엄청나서 죽만 먹던 시절의 고통은 이에 비하면 천국에 가까웠다. 사람에게 식욕보다 10배는 더 강한 것이 수면욕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나는 그 날로 고기를 끊었다. 물론 다 끊은 건 아니고 닭, 생선, 계란 정도는 일정 범위 허용하고 붉은 고기와 우유는 완전히 끊었다. 평소 고기를 즐기는 편은 아닌지라 아쉽지는 않지만 학교 급식에 맛있는 고기가 나올 때 마다 좌절한다.
아놔, 내가 채식주의자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