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수신자 부담
지금 이 상황이 대체 뭔지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인규는 “네?”라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지금부터 이 전화는 보안전화로 전환됩니다. 저희가 파악하기로는 지금 혼자 계신 것으로 판단되는데, 혹시 주위에 남인규 씨 외 다른 인원이 있습니까? ‘예’, ‘아니오’로만 대답해 주십시오.”
“네?”
지금 전화기를 통해 쏟아지는 단어들은 하나하나 모두 이해되었지만, 그 말은 이해되지 않았다. 요구했던’ 예’ 혹은 ‘아니오’가 아니라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네?’라는 반문에, 이 쪽에서는 들리지 않지만 깊은 한숨이 들어가기에 딱 맞는 정도의 공백을 두고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혹시 주위에 다른 인원이 있다면 즉시 자리를 이동 후 통화를 계속해주십시오. 대답 방법은 아까와 동일합니다. ‘예’ 혹은 ‘아니오’”
“아무도 없습니다.”
남인규는 이번에도 지시를 따르진 않았지만,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전화기 속 목소리는 즉시 계속되었다. ‘단어는 들리지만 문장이 들리지 않는다니, 영어 듣기 시험 같은 기분이네’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상황을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잡념을 떨치기 위해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참고로 통화 녹음은 되지 않도록 조치했으니 양해 바랍니다. 지금부터의 통화내용은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여기는 어디까지나 자유 국가이기 때문에 강제할 수는 없지만요. 단지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해지기 때문에 서로 편의를 위해 협조해주셨으면 합니다. 이해되셨습니까?”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우선은 이해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전화 연결하겠습니다.”
복잡한 신호음이 들리더니, 이번엔 다른 어조가 들려왔다. 조금 전의 충분히 위압적인 어조와 목소리였지만, 이번은 차원이 다르다. 훨씬 더 엄숙하고, 낮은 목소리다. 인규는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전화기를 감쌌다.
“저는 LMS T/F의 공두원 실장이라고 합니다. 국정원 소속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10분 안에 저희 직원들이 방문해 남인규 씨를 모실 겁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그 후에 드리죠. 개인 물품은 꼭 필요한 것만 챙기시면 됩니다. 어차피 필요한 건 대부분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네?”
내가 어디에 있는 줄 어떻게 알고 방문한다는 것인지, 국정원에서 나를 모신다’는 것은 체포한다는 뜻인지, 필요한 짐은 무엇이고 왜 챙기라는 것인지, 무엇보다 지금 이 상황이 대체 뭔지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인규는 “네?”라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실장이라는 자의 목소리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 어울리는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크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 편하게 뉴스라도 보시면서 기다리시면…”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인규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빠르다. 분명히 10분 동안 짐을 챙기라고 했었는데… 아니, 정확하게는 10분 ‘안’이라고 이야기했구나.
“저희 직원들이 도착한 모양이군요.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통화는 시작된 것만큼이나 종료도 일방적이었다.
‘직원’들의 안내를 받아 고급 세단 뒷좌석에 엉거주춤 앉은 인규는 위축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내 집에서 편하게 입고 있던 목 늘어난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으로, 검은색 양복에 빼입고 말이 없는 남자들과 함께 앉았다. 위축감은 차림새의 차이에서만 온 것은 아니었다. 거리에서라도 마주친다면 눈을 피할 법한 외모며 체구를 가진 남자들, 그것도 네 명에게 둘러싸여 있다. 인규는 불편했던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도 손 끝은 반바지 밑단을 만지작거렸다.
“저기..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그리고 지금 어디로..”
“공 실장님께서 설명해 주실 예정입니다. 가시는 길 동안은 편안하게 조용히 모시죠.”
말투와 내용은 정중했지만, ‘질문은 거절한다’는 의도가 명백히 전해졌다. 이런 식의 화법은 어디서 배우기라도 하는 걸까? ‘내가 이런 식으로 말할 줄 알았다면 훨씬 더 괜찮은 삶을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인규의 머릿속에 스쳤다.
고급세단은 부드러움에 비해 아주 빠른 속도로 거리를 빠져나갔다.
분명히 굉장한 운전실력인데, 멀미가 날 것 같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