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90일간의 기록
81일차 — 건조한 눈
눈이 너무 건조했다. 집중이란 게 참 무섭다.
한참 사업계획서를 붙잡고 있던 와중에 문득, ‘언제 마지막으로 눈을 깜빡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우리는 ‘창업’이라는 말에 열정과 몰입만을 기대하지만, 정작 눈 앞의 피로와 뒷목의 뻐근함을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지는게 아닐까 생각했다.
82일차 — 오류 앞에서의 전환점
개발을 하겠다는 야심 찬 마음으로 노트북을 열어서 개발을 시작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코드가 말을 듣지 않았다. 한 줄 고치면 세 줄이 틀어지고, 참았던 한숨이 한 번에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이젠 안다. 이런 날엔 발을 빼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실패가 아니라 ‘잠시 멈춤’.
다른 업무로 조용히 방향을 틀며 마음을 달랬다.
버티는 것도 전략이고, 넘기지 않고 붙들기만 하면 무너지는 것도 있다는 걸 창업 82일 만에 조금씩 배워간다.
83일차 — 개발의 고비와 멘탈 관리
햇살이 좋아 창문을 열었고, 기분도 잠깐 좋아졌다.
그러나 개발 화면 앞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어제의 실패가 오늘도 이어졌고, 그 현실은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거대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아직 끝이 아니다.
이런 날에는 오히려 생각의 중심을 다시 세울 기회가 된다.
포기는 멀리 밀어두고, 주말 동안 다시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나를 북돋운다.
가끔은 그런 다짐 하나가 전부다.
84일차 — 피했던 코드와의 화해
코드는 언제나 나를 시험했다. 나는 매번 더 쉬운 길을 찾았고, 그것이 현명하다고 믿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그 길은 결국 내가 가야 할 길을 우회하는 것에 불과했다.
어제 조코딩님의 자바스크립트 강의를 보면서, 처음으로 이 세계의 문이 열리는 느낌을 받았다.
Web AR도 결국 웹사이트, 그것도 사용자에게 말을 거는 창이었다.
코드가 더 이상 두렵지 않고, 대화의 방식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게 오늘의 가장 큰 전진이었다.
85일차 — 달리기로 시작하는 창업자의 루틴
어떤 이는 아침 달리기를 하지 않으면 책상에 앉지도 않는다고 했다.
나도 그 습관을 따라 해본 지 어느덧 일주일이 넘었다.
이른 아침, 바닷가를 따라 달리며 제주의 바람을 마주하고, 집에 오는길에 있는 빵집을 가끔 들려서 고소한 냄새에 마음을 풀어준다. 이 30분이 나를 하루 종일 붙잡아준다.
몸이 먼저 깨어나야 마음도 깨어나고, 아이디어도 자란다.
창업은 결국 ‘나’를 설계하는 일이라는 걸, 운동이 매일 알려준다.
86일차 — AR UI/UX의 밑그림
디자이너와 마주 앉아, 이중섭 거리에서 펼쳐질 AR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중섭의 그림에서 뽑은 주조색, 골목을 따라 펼쳐질 서사의 흐름, 체험 이후 손에 쥐게 될 굿즈까지.
이야기들이 선처럼 연결되며 비로소 서비스가 형체를 갖춰갔다.
예창패 지원금은 분명 큰 도움이 되겠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큰 동력이 생겼다.
‘하고 싶다’는 마음. 이 감정이 어느새 사업의 엔진이 되어주고 있었다.
87일차 — 살아있는 문서, 다이어트 예산
작년에 써두었던 사업계획서를 새 포맷에 옮기며 느꼈다.
문서는 살아있다는 걸. 시간이 지나 다시 읽어보니 부족한 점이 이렇게나 많았구나.
예산도 1억에서 6천으로 줄이며, 어떤 부분이 진짜 ‘핵심’인지 뼈대만 남기듯 정리하고 있다.
주관기관에 문의 전화를 걸며 작아지기도 했지만, 돌아오는 응답에 위로를 받았다.
묻는 사람이 있고, 대답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창업자에겐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새삼 알게 됐다.
88일차 — 빠른 길은 없고, 쌓아가는 길만
서류는 분명히 써놓은 건데, 다시 옮기기 시작하니 아직도 첫 페이지다.
조급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모든 성장은 조금씩 다듬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빠른 길은 없다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인다.
오히려 ‘빠르게 가려는 욕심’이 더 많은 우회를 만들어왔다.
완성은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쌓인다. 나는 그걸 지금 실천하고 있다.
89일차 — 협업자를 찾습니다
오늘은 나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봤다. “저는 이중섭 거리에서 증강현실을 만드는 예비 창업가입니다.”
그 말 한마디에 내 모든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제는 마케팅과 브랜딩에 도움을 줄 제주 지역의 파트너를 찾고 있다.
MOU 체결도 고려 중. 혼자서도 만들 수는 있지만, 함께하면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말을 믿는다.
나의 기술이 누군가의 감각과 만나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한다.
90일차 — 작게 쪼개는 힘, 니치의 본질
한입에 다 삼키려다 체한 적,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사업 아이디어도 마찬가지다.
자꾸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아 보여 덩치를 키우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는다.
나는 이제 가장 작고 명확한 기능 하나로 승부를 본다.
고객조차 인식하지 못한 니즈를, 관찰과 반복된 시도로 발견해내고, 작은 결과로 증명하는 과정.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니치마켓이다. 작지만 정확한, 내 고객을 향한 작은 발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