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만 깔아줬을 뿐인데...
2020년의 트렌드를 예측하는 책을 몇 권 읽었어요. 그중 '판플레이'라는 키워드가 가장 뇌리에 남았습니다. 참여할 '판'을 직접 열고 논다는 의미인데요, 그 키워드를 보는 순간 이게 나다! 하고 한눈에 알아보았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하던 일에 이름이 붙으니 힘이 생겨나는 느낌이었어요.
2017년에 30일간 글을 쓰는 모임 '작심삼십일'이라는 판을 만들었어요. 작심삼십일을 시작한 지 햇수로는 3년이지만 그간의 활동이 많지는 않았어요. 2017년에는 작심삼십일 1기를 열어 30일간 글쓰기를 했고, 2018년에는 그 멤버 중 일부와 함께 2기를 열어 한 번 더 30일 글쓰기를 한 게 전부였어요. 근데 2019년, 유난히 활동이 많았네요.
연초는 작심삼십일 키트로 시작을 했어요. 작심삼십일 1기 때 '커리어'를 주제로 30일간 썼던 포맷을 키트로 만들었고 텀블벅을 통해 크라우드 펀딩을 받았어요. 269명의 후원을 받고 총 351개의 키트를 만들었어요.(유후!)
봄에는 작심삼십일 3기를 진행했어요. '취향'을 주제로 30일간 10명이 함께 글을 썼습니다. 3기의 반응이 유난히 뜨거웠고, 참여하지 못해서 아쉬움을 전한 사람들이 많아서 '취항편'으로 주제만 약간 수정해서 가을에 4기를 한번 더 진행했어요. 4기에는 10명 중 8명이 개근을 할 정도로 놀라운 참여율을 보여주었습니다.
여름에는 제주도에서 글쓰기 워크샵을 했어요. 애월의 북클럽 <느슨하고 자유롭게>에서 저희 글쓰기 경험을 공유하고 짧게 글을 쓰고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4기까지 마치고 나니 작심삼십일을 거쳐간 인원이 꽤 많아졌더라구요. 이 좋은 인연이 이대로 휘발되는 게 너무 아쉬웠어요. 그래서 1기부터 4기까지 참여한 사람들을 모두 모은 커뮤니티를 만들었어요. 이름하여 '작심삼십일 동문회관.' 슬기님이 을지로 갬성의 로고까지 만들어줬답니다. 작심삼십일에서 가끔씩 멤버분들께 소식을 전할 때가 있었는데 공지를 올릴 목적도 있었고, 사람들끼리 알고 지냈으면 하는 이유가 컸어요.
동문들을 모았으니, 연말에는 '작심삼십일 동문의 밤'을 열었어요. 근사한 부엌이 있는 아늑한 공간을 빌렸어요. 평소에 요리를 좋아하던 슬기님과 원준님이 요리를 해주었고 말도 안 되게 맛있어서 모두가 오래도록 이날의 음식을 이야기할 정도였어요. (작심삼십일엔 능력자들이 참 많아요.)
서로 선물할 책을 한 권씩 가져왔어요. 서로 나누어 가지면서 어떤 이유로 책을 골랐는지,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함께 설명했어요. 다독가들이 워낙 많은 모임이라 읽고 싶은 도서목록이 길어졌어요. (책 목록은 이 글 아래에 남겨둘게요.)
간단한 시상식도 함께 했어요.
가장 멀리서 동문의 밤을 오신 최수진님께 드린 '멀리서 왔상' (제주도에서 오셨어요)
가장 멀리서 작심삼십일 글쓰기를 참여해주신 이진재님께 드린 '멀리서 썼상' (스웨덴에서 주셨어요)
한 해 동안 작심삼십일을 많이 도와주셨던 윤정은님과 유슬기님께 드린 '수고했상' (제주워크샵을 성사시켜준 정은님과 키트 및 다양한 디자인을 도와준 슬기님)
가장 많은 글을 써주신 지원준님께 드린 '많이 썼상' (1기, 2기, 3기에 참여해 세 번 모두 개근을 하셨어요. 총 90개의 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모두 함께 글을 썼어요. 주제는 '2019년 나의 TMI는'으로. 미리 나눠준 노트에 연필로 꾹꾹 이야기를 남겨주었어요. 노트는 슬기님이 만들어줬던 로고로 직접 제작했답니다. 이날 참여해주신 분들께만 드린 스페셜 굿즈! 글을 함께 쓰고 몇몇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해주었어요. 한 해를 나누며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서 고마웠어요.
알찬 모임을 만들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했는데 참여해주신 분들이 좋은 후기를 카톡으로, 인스타로, 브런치로 남겨주셔서 돌아오는 길이 뿌듯했어요.
연말 모임 '동문의 밤'을 열면서 작심삼십일이 저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다시 돌아보았고, 작심삼십일에 참여해주신 분들이 얼마나 멋진 분들인지 다시 한번 감사한 밤이었어요. 우린 판만 만들었을 뿐인데 좋은 사람들이 가득 모여 고마웠어요. 작심삼십일 멤버들 특유의 진지함이 좋아요. 그래서 늘 대화가 즐거워요. 주고받는 지식과 정보도 좋고, 서로의 고민이나 사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울림이 있어요.
2019년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작심삼십일 덕분에 잘 놀았어요. 함께 참여해주신 동문 여러분들도, 작심삼십일을 응원하고 후원해주신 분들도 모두 감사했습니다. 내년에는 또 어떤 판을 벌여서 어떻게 놀지, 어떤 분들이 또 참여해주실지 기대가 됩니다.
작심삼십일 멤버들이 나눈 책 목록
나의 프랑스식 서재 - 김남주
한국이 싫어서 - 장강명
센스의 재발견 - 미즈노 마나부
유에서 유 - 오은
회사시렁 - 52웍스
오늘도 네가 있어 마음속 꽃밭이다 - 나태주
퇴사는 여행 - 정혜윤
한글자사전 - 김소연
오늘부터 그림 - 강수연
제주의 3년 이하 이주민의 가게들 (원했던 삶의 방식을 일궜는가?) - 브로드컬리 편집부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10주년 - 편혜영, 김애란, 손보미, 이장욱, 황정은
종이 동물원 - 켄리우
어른의 그림책 - 황유진
잘 입어야 하는 이유 - 아돌프 로스
집다운 집 - 송멜로디 요나
다정한 호칭 - 이은규
무빙세일 - 황은정
작심삼십일 인스타그램도 2019년에 만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