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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 Oct 19. 2024

라스베이거스를 떠나 워싱턴으로

2024년 8월 8일 

새벽 5시 20분에 기상했다. 떠날 준비를 하고 방에서 나와 앞 뜰에 내려왔다. 아침 공기가 시원하다. 아침식사로 라면을 끓여 주셨다. 김치와 라면, 미국 캐년 한 복판에서 먹는 라면 맛이 일품이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먹지 않는 라면이다. 많이 먹고 싶었지만 건강을 위해 참았다. 6시 식사를 마치고 바로 출발했다. 어제는 자이언 캐년, 브라이스 캐년, 파웰호수, 호슈밴드 캐년을 여행했다. 어제에 이어 오늘은 엔탈롭 캐년, 그랜드 캐년, Route66을 여행했다. 가이드분은 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풍경에 어울리는 음악도 틀어 주셨다. 클래식, K팝, 샹송, 풍경과 노래가 딱 어울려 여행 분위기를 한층 높여 주셨다. 각각의 장소마다 내려서 사진을 찍어 주셨다. 아슬아슬한 절벽에 앉아 포즈를 취할 때는 벼랑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아 움츠렸다. 가이드 분은 그 움츠린 동작을 자연스럽게 펴도록 자세를 살살 설명해 주셨다. 12명의 여행자, 함께 여행하는 동안 서로를 이야기했다. 살아가는 이야기는 다르지만 모두 현재의 삶에 충실한 사람이라는 점은 같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 이야기,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마음이 놓였다. 자매, 선후배, 가이드, 홀로 온 청년, 다들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내 딸처럼. 이들이 어디에서든지, 어떤 상황에서든지 꿋꿋하게 잘 살아가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밀려왔다. 사진을 찍는 장소마다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주었다. 딸과 나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우리도 모르게 찍어서 보내주기도 했다. 

오후 5시 30분, 라스 배가스 숙소에 도착했다. 캐년 여행을 마치고 함께 여행한 사람들과 헤어졌다. 1박 2일 동안, 함께 여행한 사람들과 정이 들었나 보다. 차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내렸다. 모두 건강하게 새로운 날들을 잘 헤쳐가기를. 딸과 나는 호텔 로비로 갔다. 1박 2일 동안 가지고 다녔던 짐도 맡겨 달라고 부탁했다. 몇 시간 동안 짐을 맡겨 놓고 라스 베가스 시내를 여행하기 위해서다. 우선 저녁을 먹었다. Goden Ramsy Hell's Kitchen에서다. 아주 유명한 셰프가 하는 요리라며 딸은 나에게 경험하게 하고 싶었단다. 식사하러 온 사람들의 복장은 고급스럽고 깔끔했다. 1박 2일 동안 캐년을 여행하느라 지친 듯한 모습, 복장도 얇은 여름 반팔 티셔츠와 무릎 위까지 길이의 러닝바지. 좀 더 우아한 복장이었으면 레스토랑 분위기를 한층 더 누렸을 텐데, 좀 아쉬운 마음이었지만 우리는 행복했다. 식사를 마치고 Flamingo hotel로 달려갔다. 호텔 호수에 있는 핑크 플라밍고를 보기 위해서다. 정말 아름다웠다. 플라밍고 호텔에서 나와 또 달렸다. Bellagio호텔의 분수쇼 시간에 맞추어 가야 했다. 우리가 서 있는 길 건너편에 호텔이 있었다. 분수쇼가 시작되고 우리는 달리다가 그냥 멈췄다. 길 건너에서 바라보았다. 딸은 라스 베가스에 있는 유명한 호텔들을 다 보여줄 마음인 듯했다. 이 시간들이 소중하기에 다 기억에 남기고 싶은 거다. 언제 내가 이곳에 또 오랴! 딸은 잘 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기적임을! 라스 베가스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O show를 보았다. 수중 발레와 변화무상한 무대, 놀라운 동작의 서커스, 눈이 휘둥그레졌다.

  딸은 내가 미국에 온다고 할 때, 미국에 와서 여행을 할 것인지 아니면 딸이 지내던 집에서 밥 지어먹으며 그 주변만 구경할 것인지 물었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결정했다. 내가 언제 또 미국에 가보랴! 한 군데 한 군데 딸이 물었다. 그곳을 여행할 건지 아닌지. 야구장, 캐년, 고급 음식점, 알라딘, 오쇼, 나는 가겠다고 했다. 돈을 어떻게 모으지? 그 돈 때문에 여행을 다녀온 지금 10월도 생활비가 딸린다. 꼭 필요한 것만 먹고, 가야 할 곳만 가면서도 아슬아슬하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1년 동안 미국에서 혼자 마음 고생하며 외로움을 이겨내고 잘 살아 낸, 딸을 위로하기 위해서 여행하고 싶었다. 합격 소식을 기다리는 동안 불안과 긴장을 내쫓을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쉬지 않고 달리고 이동하느라 복잡한 생각을 떨쳐 낼 수 있었다. 

오쇼가 끝나자마자 우리는 또 달렸다. 숙소까지 걸어서 15분 거리. 쇼가 끝나고 사람들이 몰려나오는 시간대에는 택시비가 훨씬 비싸다며 걷자고 하는 딸이다. 우리는 호텔로비에서 짐을 찾아 라스 베가스 공항으로 갔다. 택시로 8분 거리였다. 밤 12시 10분 비행기가 1시 30분으로 지연됐다. 라스 베가스 공항에서 미네소타 공항을 경유하여 8월 9일 아침, 워싱턴 공항에 내렸다. 워싱턴 아침 날씨가 서울의 가을 날씨 느낌이었다. 전철을 타고 숙소로 갔다. 숙소는 중국인 마을 안에 있는 호텔이다. 나와 딸은 이곳 워싱턴에서 3박 4일 동안, 절망의 순간을 감사로 돌리는 마음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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