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아기가 있다. 웅크리고 앉아 있는 아이다. 혼자 구석진 곳에 있다. 아무도 찾아 주지 않아, 외롭다. 찾아달라고 소리 내 울지도 못한다. 나는 그 아이를 이제 찾아간다. 내가 내 안에 웅크린 아이에게 다가간다. 그 아이를 아는 자는 나이기에. 나조차 외면했던 버려진 아이, 그 아이를 찾아 손잡아 준다. 잡고 놓치지 않을 힘이 생긴 거다. 환갑이 될 때까지 그 아이를 찾기 위해 발버둥 쳤다. 안아주고 싶었다. 조용히 흐느끼는 아이, 슬프다고 말 못 하는 아이, 외롭다고, 도와달라고 부르짖지 않는 아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 다 이겨낼 수 있는 척, 나 자신조차 이 척에 속아 살았다. 괜찮은 줄 알았다. 그 아이가 그저 그렇게 그냥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이제 손잡아 주어야 한다. 일으켜 주어야 한다. 바로 내가.
그 아이는 무슨 일을 겪은 걸까? 지금은 말하지 못한다.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 그 여자아이가 말을 배우고 뛰어놀만한 때에 겪은, 꼬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겪은 일, 그 일이 무엇이었길래, 살아오는 평생을 파도에 휩쓸리듯 살아왔을까? 내 나이 61살, 한국 나이로 환갑이다. 그 꼬마 여자 아이를 가둬두지 않기로 하였다. 꺼내주기로 마음 단단히 먹었다. 그 일을 지금, 제주도 이호에서 하고 있다.
이호마을은 이호테우 해수욕장이 있는 관광지다. 제주도는 모든 곳이 다 관광지이지만, 내가 사는 곳, 이호는 사시사철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는다.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답답함을 뻥 뚫어주는 바다다. 아침저녁으로 바닷가를 산책한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먹을거리를 찾느라 바다 바위에 앉았다 날았다를 반복하는 갈매기, 밀물과 썰물로 보였다 안보였다, 바다 풍경이 바뀌는 것도 질리지 않게 한다.
폐암수술 후, 서울집을 떠나 강릉, 포항, 제주도로 옮겨 다니며 살고 있다. 완치 판정받게 될 5년이 언제 지나갈까, 하루하루 긴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새, 7년째다. 남편이 담배를 피우는 덕분에 그 핑계로 남편 곁을 떠나, 얼떨결에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있다. 2018년, 폐암수술 후, 바로 서울집을 나왔을 때, 나는 불쌍한 여인이었다. 7년이 되어가는 지금, 나는 부러움을 받는 여인이 되었다.
누군가는 나처럼, 자아가 생기기 전, 악한 일을 당했을 거다. 그것이, 창피하여 숨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다. 이호에서 도전하는 일들이 나를 당당하게 한다. 나도 할 수 있구나! 내 안에 웅크린 여자 꼬마, 그 아이와 대면하는 시간을 보낸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에게, 할 수 있다고, 괜찮다고, 너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죽지 않는다고, 살아낼 수 있다고, 일으키는 시간을 보낸다. 서핑 배우기, 승마 배우기. 그림 그리기에 도전한 이유다. 그 이야기를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