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꾸라져 본 적이 많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마을은 시골 산골이다. 집이 다섯여섯 옹기종기 모여 있고, 집과 집 사이 거리는 5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 우리 집은 모여 있는 동네에서 300미터 정도 더 떨어져 외로이 있었다. 초등학교까지는 500미터 거리다. 학교에 오고 갈 때도, 이웃집에 심부름 갈 때도, 달려 다녔다. 그럴 때마다, 넘어지기 일쑤였다. 안장걸음, 두 발이 나란히 앞으로 향하여야 하는데, 안으로 향하였다. 자주 넘어지는 이유가 그래서였을까? 두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다. 넘어져 피부가 까이고, 피가 흘렀다. 약도 없이 지내다 보면 딱지가 생긴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자전거를 타고 70도 정도 되는 급경사를 내려오다, 언덕 끝, 길가에 있는 논에 고꾸라졌다. 자전거와 함께.
바닷속에서 고꾸라지는 경험은 서핑을 배우면서다. 이호테우 해수욕장을 지날 때마다 서핑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그때마다 나도 파도를 타고 싶다는 마음이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서핑을 배우고는 싶은데, 두려움이 내 안에서 웅크리고 있었다. 웅크린 아이다. 이 아이를 일으켜야 한다는 마음이 나를 움직이게 하였다. 이호서핑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서핑을 배우고 싶은데요. 어떻게 하면 되나요? 제가 나이가 좀 많은데, 저도 배울 수 있나요?"
나는 나이가 많다는 것을 사장님께 강조했다. 두려운 마음을 나이로 덮으려는 의도였을까?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서프보드를 바다 위에 올려놓았다. 바닷물과 내 허리춤이 서로 만나는 곳까지 걸어갔다. 서프보드는 무서운 바다에서 나를 보호해 줄까? 내 발목과 보드를 연결하는 안전끈, 세찬 파도가 나를 밀어 물속에 고꾸려 뜨려도, 끊어지지 않고 나를 잡아 줄 끈, 지금까지 내가 안전끈으로 삼아 온 것은 무엇일까?
내 손 뼘으로 3뼘 정도 되는 너비의 보드 위에 엎드리는 것, 앉는 것도 무서웠다. 보드가 흔들거릴 때마다 물속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초보자이기에 깊지 않은 곳, 바다 바닥을 딛고 섰을 때, 바닷물이 가슴을 넘지 않는 깊이에서 강습을 해주셨다. 두려움은 바닷물의 깊이와 상관없었다. 보드 위에 엎드려만 있는데도, 바다가 나를 삼킬 것만 같았다. 보드 위에서 일어서야 했다. 보드 위에 서 있는 자세 연습, 모래 위에서 연습할 때와 흔들리는 물 위에서의 느낌은, 하늘과 땅이다.
그 꼬마 여자 아이가 안고 있던 상처는, 고꾸라졌을 때 그것과는 달랐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낫는 아픔이 아니었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아픔은 더해졌다. 아무도 밀어내는 이 없는데도, 언덕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아, 두려웠다. 서핑을 배우는 초보자가 바다 위, 보드에 처음 서기 위한 몸부림 상태랄까!
강사님이 외치는 하나, 둘, 셋 구령에 맞춰 좁은 보드 안에서 온몸이 반응해야 한다. 하나에 두 팔로 보드를 누르며, 윗몸을 반쯤 일으켜 세운다. 둘에 오른쪽 다리를 접어, 앞으로 당겨, 보드 위에 놓는다. 셋에 왼쪽 다리를 밀어, 보드 중간쯤을 지나는 곳까지 놓으며, 일어선다. 일어설 때, 시선은 앞쪽 먼 곳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몸의 무게중심은 왼쪽 다리에 둔다. 시선이 앞을 향하지 않으면, 앞으로 고꾸라진다. 나는 고꾸라지고 또 고꾸라졌다. 보드 위에서 균형 잡기, 시선을 먼 곳 앞에 두기, 이 두 가지를 두려움이 막았다. 두려움은 내 시선을 바닷속으로 몰았다. 머리부터 곤두박질친다. 거꾸로 수중발레라도 하듯이. 바닷물이 무릎 높이건만, 물속은 깊은 수렁과도 같다. 그곳에 잠겨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지옥에 빠진 듯한 느낌, 낮고 잔잔한 파도인데도, 물속에서 내 몸은 웅크린다. 어린 여자 꼬마가 움츠러든 것처럼. 그 몸이 돈다. 통돌이라고 한다. 바다 바닥에 발이 내디뎌지지 않는다. 순간 깊은 물 속인 줄 착각하고 허우적댄다.
내 삶도 그랬다. 신혼 때부터 시작된 남편과의 갈등, 그 갈등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쌓이기만 하였다. 나를 향한 남편의 말과 행동은 거칠어져만 갔다. 나는 물속, 통돌이처럼 나를 지탱하지 못하였다. 어린아이가 웅크리고 있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 웅크린 아이가 결혼 후에도 떨어지지 않고, 내 안에 있다.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 몰라 허우적댄다.
고꾸라질 때마다, 서핑 배우기를 포기하고 싶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그랬다. 도저히 통돌이 같은 삶에서 벗어날 것 같지 않았다. 남편을 죽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었으면 하기도 하였다.
1개월 동안, 보드 위에서 시선 처리, 일어서기, 엎드려 앞으로 나아가는 패들링, 앉아 방향 전환하기, 좋은 파도 찾기를 배웠다. 파도가 없는 날에도 바다에 갔다. 자세를 익히기 위해서다. 아무도 없는 바다 위, 뜨거운 태양 아래, 나 혼자 연습하는 날이 잦았다. 강사님이 가르쳐 준 방식대로 연습을 반복하였다. 그러고 났더니, 고꾸라져 통돌이 상황이 되어도, 예전처럼 큰 두려움이 나를 막지 못하였다. 넘어진 만큼, 고꾸라진 만큼, 나는 더 좋은 자세를 잡아간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에서, 나를 지켜내야만 했다. 통돌이 같은 삶, 발을 내딛으면 닿을 바닥이 있음을 아는 것, 그 믿음이 힘이었다. 나는 믿었다. 나도 내딛고 설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