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걸어 들어간다. 찰박찰박, 촤아아 촤아아 파도 소리가 무섭다. 걸어 들어가면서 깊이를 파악한다. 내 몸 가슴 높이보다 낮은 곳까지, 그럼에도 나는 바다가 무섭다. 내가 바다에 빠지면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할 것만 같다. 빠진 나를 본 사람이 없을 것만 같다.
나는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큰 오빠가 20대 초에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로는 완전 가운데가 되었다. 위로 오빠, 언니, 아래로 여동생, 남동생이다. 오빠는 큰 아들이어서, 언니는 큰 딸, 여동생은 막내딸, 남동생은 늦둥이 아들, 나에겐 아무런 형용사도 붙지 않았다. 형제자매도, 부모님도, 내 어린아이가 무엇을 겪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어린아이가 왜 말을 하지 않았을까?
서핑 배우기, 나는 왜 두려움 속에 스스로를 끌어들일까? 내 안, 깊은 곳에 웅크린 두려움을 무너뜨리기 위함인 듯하다. 경험한 적 없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두려운 감정이 모든 감정을 장악한다. 대학교 4학년, 초등학교로 교생실습을 나갔을 때도 그랬다. 나는 서울교육대학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였다. 두려운 감정은 내 손가락을 경직시켰다. 생각, 마음, 몸짓까지 굳게 한다. 교생실습 점수는 가장 낮은 점수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모두 낮은 점수다. 중요한 순간에 맞닥드리면, 내 모든 것이 굳어버린다. 임용고시로 발령을 받게 되었다면, 나는 교사가 되지 못했을 거다. 대학 친구들이 졸업한 3월에 교사로 발령받았을 때, 나는 또, 주눅이 들었다. 그 해, 9월 발령, 그 이후로도 내 삶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처음 교사로 발령받아 학생들 앞에 섰을 때도, 학부모 공개수업을 할 때도, 낯선 사람들 앞에만 서면, 웅크렸다. 결혼 후, 내 곁에 있는 남편이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무서움이 기쁨으로 바뀐다는 것을 안다. 폐암 수술 후, 무서움과 두려움이 수시로 찾아왔다. 그 감정은 나를 꼼짝 못 하게 옭아맸다. 두려운 감정을 이겨내야만 했다. 감정은 실체가 아니었다. 상상일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일을, 찾아오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한다. 죽으면 어떻게 하지? 재발되면 어쩌지? 유튜브에 나오는 폐암 관련 영상을 보기도 하고, 네이버에 검색하여 폐암 판정 후,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지 찾아보기도 하였다. 나는 어떤 감정을 선택하지? 나를 살리는 감정은 무엇이지? 기쁜 감정으로 채우자!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택하였다. 자연을 찾아다녔다. 산, 바다, 들에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 산속 새들, 나무, 꽃들로부터 기쁜 감정을 채워갔다.
폐암 수술 후, 명퇴를 하고, 강릉, 포항에서 기간제 교사를 지원할 때도 두려웠다. 처음 기간제 교사로 근무했던 포항, 서먹함, 외로움, 긴장감, 두려움, 생소한 지역에서 만난 선생님들, 자연이 주는 기쁨은 이 모든 서먹함에 뛰어들 용기가 되었다. 작년부터 근무하고 있는, 제주도 초등학교, 친밀하지 않은 분위기, 처음에는 두려움으로, 온몸과 마음이 경직되는 신호가 왔다. 쓰러질 듯한 현기증, 불안함이다. 그 안에 웅크린 어린아이가 있다. 웅크린 아이를 안고 방 안에 있었다면, 나는 몇 번이고 세상을 떠났을 거다.
1개월 동안 나는 거의 매일 서핑을 하였다. 일주일에 두 번 강습, 1개월에 8회, 나머지 시간은 혼자 파도를 탔다. 바닷물에 온몸을 흠뻑 적신다. 시원하다. 물속 모래를 밟으며 걷는다. 보드에 오른팔을 걸치고 보드를 밀며 걸어 들어간다. 혼자다. 보드를 밀고 가는 나, 나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은 나다. 내 안의 나를 아는 사람은 나 혼자다.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 초등학교 교사가 나를 표현해 주지만, 정작, 내 안의 나는 아무도 모른다.
바다 저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커다란 파도, 그 파도를 바라보며, 그 파도를 타기 위해 걸어 들어간다. 내 안의 꼬맹이가 힘을 얻어 일어설 때를 기다리며, 강한 파도와 맞선다. 큰 파도가 나를 밀어주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이젠 기쁨과 뿌듯함이 나를 감싼다. 꼬맹이 여자 아이를 일으켜 줄 힘이, 조금 생겼다.
2주 전쯤, 아들과 극장에서 '인사이드 아웃 2' 영화를 보았다. 한 사람 안에 여러 가지 감정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을 표현한 영화다. 모든 감정이 다 중요하지만, 기쁨과 감사의 감정을 잘 챙겨야겠다는 마음을 준 영화였다. 꼬맹이 여자 아이는 그때, 기쁨을 빼앗겼다. 강제였다.
나는 오늘도 서핑을 하였다. 바다가 사랑스럽다. 귀여운 강아지처럼 다정하다. 매일 만나고 싶다. 나에게 무서웠던 바다가, 서핑을 하는 동안, 사랑스러운 바다로 변한다. 꼬맹이에게 기쁨을 조금 더 채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