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을 편식하던 아이가 자라 콩밥을 해 먹는 날이 오다니
"그 집 막내딸이 참 야무져~"
사실 막내딸이 야무지다며 칭찬받을 나이보다는, 막내딸을 낳아야 하는 나이에 가깝지만. 엄마 친구들 사이엔 유행어처럼 내 칭찬이 자자하다. 텃밭에서 나는 작물을 조금씩 나눔 한 것도 있지만, 결혼 후 '알아서 잘' 살고 있다는 이미지가 박힌 것이다.
신부수업. 옛날엔 엄마가 딸에게 요리나 청소 비법에 대해 알려주곤 했다. 못 배운 채 시집가면 시어머니께 타박받던 그런 시대에 자란 엄마는 베짱이 같이 자란 딸이 결혼한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빠가 빨래를 하고 언니가 걸레질을 하고 엄마가 요리를 하는 집의 철부지 막내딸. 떡볶이나 치킨을 좋아해 따로 살면 맨날 배달만 시켜 먹을 것 같던 애가 막상 결혼하니 집밥만 해 먹는다고 하니 거짓말하지 말라며 한참을 못 믿었던 엄마다.
물론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었다. 콩나물 500원, 상추는 1,000원, 토마토는 한 팩에 3,000원이었나. 내 물가는 몇~~ 년 전 엄마 심부름으로 몇 번 가던 그때에 멈춰있었다. 주부가 되어 직접 장을 보고 나니 토마토 한 팩, 오이 하나 사기 무서워졌다. 그때 결심했다. 직접 길러 먹어보기로.
뭐가 쉬운지 어려운지도 모르고 시작한 텃밭. 회사 근처에 있는 씨앗 도서관에 들려 '초보'도 키우기 좋다는 씨앗 여러 개를 대출해 왔다. 흙에 바로 심는 것보다는 물에 적신 키친티월에 두고 발아시키는 게 좋다는 글을 읽고 심었다. 이맘때는 아직 추운 겨울이라 지퍼백에 두고 간이 온실을 만들었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말 그대로 쑥쑥 자란 콩은 텃밭 첫날 땅에 옮겨 심었다.
꽁꽁 언 땅이 녹으며, 주위 식물들이 하나 둘 이제야 싹을 틔울 때. 콩은 밭에 갈 때마다 3cm, 5cm씩 알아서 자라주었다. 멀칭을 모를 때 옮겨심느라 주위에 잡초가 가득해도 벌레 하나 안 먹고 잘 컸다. 노심초사 들여다볼 수밖에 없는 개복치 바질이나 오이와는 달리 초보 농부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준 콩. 콩밥에서 콩을 빼내 엄마에게 주던 아이가 커서 콩을 좋아하게 된 건 다정하고 넉넉한 콩의 성격을 알고 난 덕분이다. 씨앗 도서관에서 받아온 네 알의 콩은 봄과 여름을 지나 한 소쿠리의 콩이 되었다.
잎채소가 아닌 본격적인 수확의 시작을 끊은 콩. 야무지게 잘 먹고 싶지만 콩으로 된 요리는 콩자반이나 콩밥밖에 몰랐다. 가장 익숙한 콩밥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평소처럼 쌀을 푸고, 콩을 한 줌 더했다. 씻은 쌀과 콩을 30분 정도 불린 뒤 솥밥을 만들었다. 콩이 들어갔으니 평소보다 조금 더 뜸 들인 뒤 한 접시 담아 먹어보았다. 딱딱하니 평소에 먹던 콩밥이 아니었다. 조금 더 불렸어야 했나, 한번 삶았어야 했나. 이번 밥은 망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엄마를 만난 날 물었다.
"엄마 콩밥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부드러워? 내 건 딱딱해서 영 별로야."
"콩을 삶아서 했어야지. 박사가 모르는 것도 다 있네."부터 시작해, 콩을 어떻게 얼마나 삶는지, 매번 삶기 귀찮으니 아예 왕창 삶고 냉동실에 두고 그때그때 꺼내먹으라며 콩과 관련된 요리 비법을 마구 풀어냈다. 콩자반 하는 법, 두유 만드는 법, 콩볶음 안태우고 하는 법, 콩을 넣어 만든 샐러드도 맛있고 멸치 볶음에 조금 넣어도 맛있다며 밑반찬 아이디어까지 주었다.
30년 넘게 엄마 밥을 맛있게 먹어놓고 막상 내가 요리할 땐 유튜브나 블로그를 뒤적거렸다. 그게 훨씬 빠르고 효율적이니까. 하지만 뒤늦게 받는 신부 수업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모르는 아저씨, 아줌마의 낯선 레시피보다는 오랜 세월 익숙한 엄마의 레시피. 소금 적당히 간장은 쪼르륵. 정확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뭐 하나라도 더 알려주고 싶어 하는 다정함이, 오랜만에 손이 많이 가는 철부지 딸이 된 느낌이 좋았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어 고민하던, 친구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애쓰던 내가 그냥 오로지 나일 수 있는 가족. 야무진 딸도 좋지만 철없는 막내딸이 더 좋다. 이번 주엔 밭에서 이것저것 따서 엄마한테 주고 와야지. 그리고 엄마가 요리할 땐 착붙어있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