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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집가 Aug 24. 2024

[토마토] 팀장님 이를 깨부순 일에 대하여...


"팀장님 이가 깨지셨어..•́︿•̀ "

회의 중 사수에게 카톡이 왔다. 팀장님 이가 깨졌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궁금했지만 회의를 이어갔다. 곧이어 회의실에 팀장님이 왔다. 수집이 너 때문에 이가 깨져버렸다고.. 치료비 달라고..


전말은 이랬다. 내가 텃밭에 관심 있어하는 걸 본 동료가 토마토 씨드볼을 두 개 나눠 주었다. 씨드볼은 씨앗을 배양토에 섞어 둥글게 만든 것이다. 담아갈 곳이 마땅치 않아 사탕 봉지에 넣어 가방에 두었다. (참고로 내 가방은 버킷백이라 책상에 두면 내부가 훤히 보인다.) 팀장님은 하필 가방 속을 보았고, 또 하필 그 사탕을 먹고 싶었고, 아무 생각 없이 (얼핏 초코볼처럼 보이기도 한다) 꺼내 먹었다. 그리고 와자작.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이인데 금이 갔다고 한다.

출처: 농담스토어


남의 가방을 왜 뒤졌을까 하는 불쾌함보다 참을 수 없는 웃음이 먼저 튀어나왔다. "푸하하. 그러게 그걸 왜 드셨어요?ㅎㅎㅎ"


음식을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그와 식사를 할 때면, 음식점에서 정한 '1인분'은 통하지 않는다. 셋이 가면 메뉴 다섯 개를 시키고, 다섯이면 여덟 개를 시키는 식. 그뿐이면 다행이다. 피자는 칼질하다 치즈 다 굳으니 손으로 들고 먹어야 한다며, 도구를 다 치워버린다. 파스타를 먹다가 맛있으면 그 국물에 (웩) 피자를 찍어서 준다. 와이프가 하지 말라 했다는 말을 곁들이며. (그럼 하지 말았어야죠!)


이직 후 첫 세 달은 매달 1킬로씩 쪘다. 점심을 배가 찢어져라 먹고, 후식으로는 손님들이 양손 가득 가져온 호두과자며 꽈배기, 빵을 먹어치웠다. 안 먹을 순 없냐고? 몰래 먹다 숨길 순 있지만 대체로 먹을 때까지 쳐다보고 있다. 너무 강압적인 회사 분위기와, 아무도 반항하지 않는 무기력한 팀원들을 보며 입사 초반에는 "아, 또 망했다."를 입에 달고 다녔다. 자리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또 와하하 웃어버리는 그는 귀가 예민해 티브이도 잘 안키는 내겐 너무나 소란스러웠다. 버텼던 이유는 팀장님의 한 마디였다.


"나 앞으로 3년 남았으니까 그전에 잘 배우고, 버텨봐"


그래, 3년만 버티자. 의외로 3년 금방이야. 하지만 그 3년이 채 가기도 전에 내가 변했다. 화를 내는 사람을 싫어했는데, 그 화가 팀원을 지키는 화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식탐도 많긴 하지만) 우리 맛있는 거 먹이려고 양껏 주문하고, 정작 본인은 얼마 먹지 않고 있는 것도 보였다. 남들에게 욕먹긴 하지만, 본인 팀원들 돋보이게 하는 행동 덕분에 나는 입사 초기에도 일 잘한다고 소문이 났다. 다른 회사로 이직한 사람들이 몇 년이 지나도 팀장님을 찾아오는 것처럼, 나도 이직하더라도 종종 찾아갈 것 같았다. (섣부르게 말하긴 이르지만)


10년 전, 첫 사회생활을 앞두고 미생이라는 드라마를 본 나는 존경할만한 어른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막상 사회생활을 하며 마주친 팀장은 다 실망스러웠다. (그들에게 나도 실망스러웠을 수 있지만) 첫 팀장은 아침밥, 점심밥, 저녁밥을 모두 팀원과 먹어야 하는 모자란 어른이었고, 두 번째 팀장은 성추행과 성희롱이 취미였다. 세 번째 팀장은 "팀장 나오라 해!"라는 진상 민원인의 악다구니를 듣고 위기에 빠진 팀원을 구하기보다는 의자 속으로 숨어드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만난 네 번째 팀장. 탱크 같은 몸과 성격, 사무실에서 고래고래 화를 내지르고 세상 떠나가라 웃는 사람. 미팅을 할 때면 요즘세상에 저렇게 해도 아직 안 잘리네?라는 생각이 들법한 말과 행동을 했다. 그래서 결국은 원하는 결론을 얻어내는 걸 보고 이래서 안 잘렸구나 납득할 수밖에 없는 사람.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올해에도 "나 3년 남았다"를 입에 달고 사는 팀장님. 영원히 줄지 않는 3년이 의아하지만, 아직 배울게 많이 남아 다행이다.


토마토는 잎이 난 봄부터 수확을 멈추는 가을까지 부지런히 곁가지를 따줘야 한다. 그래야 원 줄기에 영양분이 골고루 가 열매를 주렁주렁 맺을 수 있다. 튼튼한 가지는 툭 잘라 옆에 삽목 하면 또 주렁주렁 열매를 맺는다. 잘리는 가지가 되지 않기 위해 나를 부지런히 키우는 한편, 언젠가 건강하게 자립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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