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아낙에게 위로가 되는 것들...
풍경이 삶을 이끌고 갈 때가 있다.
그것은 보는 것만으로도 찬란하고, 뭉클하게 한다.
풍경은 인간에게 아무런 관심 없이 제 할 일을 하는데 유독 인간만이 풍경에 녹아들고 결국은 그를 따라 하루의 삶이 끌려가기도 한다.
풍경은 몸짓으로 내게 말하고, 나는 그것에 고개 숙여 답할 줄 알아야 하지만 벙어리가 될 때가 많다.
그 놈의 언어의 한계로...
귀농하고 오두막 살이를 8년 동안하고 새로 집을 지을 때, 데크를 크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설계 단계에서 내가 요리조리 집설계에 관여할 줄 알았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아 놀랐다고 우리집 남자는 두고두고 말했다.
귀농 전이야 자세한 주문을 했겠지만 난 아이들 정서에 모든 에너지를 집중하다보니 집에 신경쓸 에너지 방전으로 많은 집중을 하지 못했다.
귀농하고는 '내가 지금 시점에서 무엇이 제일 중한가'를 늘 내게 묻곤 한다.
그게 귀농 전과 비교해 수확이라면 큰 수확이다.
그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설계 단계에서 부탁한 것이 달랑 세 가지였지 싶다.
그 중 하나가 데크다.
산골은 주위가 다 흙이라 비가 오면 다니기도 불편하고, 어둔 밤에 잠시 어슬렁거리고 싶을 때 뱀 손님(?)도 조심스럽기도 하고, 데크에서 저녁도 먹고, 차도 마시고, 음주가무 등도 즐기고 등의 이유가 있어서였다.
이곳은 독가촌이라서 집에서 돼지 멱 따는 소리를 내도 이웃에 방해되는 일이 없다. ^^
집지을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집 평수를 줄이더라도 데크 평수를 크게 하자고 할 정도였다.
결국 남편은 데크의 평수를 크게 해주었다.
그 데크 난간 위에 늘 돌들이 상전처럼 올려져 있다.
손님들이 묻는다.
‘뭐에 쓰는 물건이냐’고...
이불이나 매트, 큰 작업복, 행주 등을 널면 산골에 바람이 드세기 때문에 불편했다.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면 데크 밑으로 내려다 주워 올리기 바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돌이다.
이렇듯 올려두면 데크 난간 밖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다.
산골에 온 지인이 이 모습을 보더니 이런 용도로 쓰이는 게 있는데 그것도 몰랐냐며 플라스틱으로 된 대형 이불집게를 사준단다.
고맙지만 난 손사래를 쳤다.
이 아름다운 자연소재가 있는데 왜 플라스틱 집게를 사용하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또 플라스틱은 강렬한 햇살에 오래 견디지도 못하고 몇 백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물건인데 그것을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보잘 것 없는 돌 하나가 이렇듯 큰 쓰임을 완수한다는 사실이 볼수록 설레는 일이다.
하물며 우리 개개인의 잠재력에도 이런 어마어마한 쓰임이 있을 거란 생각이 이 돌들을 보면서 늘 깨닫는다.
나의 잠재력은 나의 무지로 인해 잠만 자다가 생을 종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 풍경을 보면 마음의 구석진 곳에 성냥개비만한 햇살이 번지기 시작한다.
작은 일에 마음이 따사로워지는 일, 이건 분명 내가 제 정신으로 내 길을 가고 있다는 신호지 싶다.
그대는 어떤 풍경을 보았을 때, 따사로움이 잉크처럼 마음 곳곳으로 번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