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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지 Jun 21. 2024

이혼할 결심, 다시 살 결심

나에게 결혼이란

 이번 연재의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독자분들은

"첫 번째 결혼기념일에 이혼서류를 다시 쓰다." https://brunch.co.kr/@sophiabeige/9를 참고해 주세요:)






얼마 전 '결혼 1주년'이었다.


(AM8:50)


웃음으로 가득해야 할 행복한 결혼기념일에 우리 부부는 '성남지방법원'에서 만났다.

전날 본가에 있었던 나는 먼저 도착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야?"


"거의 다 왔어"


"올라와서 오른쪽에 종합민원실로 들어와"

"내가 미리 작성했어, 여기에 서명하고 싸인해"


"차로 가서 얘기하자"


"할 얘기 없어, 바로 서류 접수하면 돼"

"엄청 간단해"


"난 이혼 할 생각 없어"

"일단 차로 가자"

남편은 잔뜩 힘을 준 손으로 내 손을 서둘러 잡고 차로 데리고 갔다.


"나 지금 진지해, 뭐야! 서류  준비 안 해왔네? 저쪽 무인에서 뽑으면 되니깐 얼른 뽑아"


"도대체 이렇게까지 해야 해?"


"어, 이렇게까지 해야 해, 아니? 진작 이랬어야 해."

"협의 이혼 안 하면 소송 갈 거야, 당신한테 귀책사유 있어서 내가 100% 이겨."

"재판까지 가기 귀찮으니깐 빨리 싸인해."


"지현아... 좀 더 생각을 해보자"


"무슨 생각을 더 해?"

"생각은 당신이나 많이 하세요."

"이미 끝난 얘기야, 나 그냥 참고 사는 것도 힘든데 당신 아버지는 나를 무시하고, 화를 내고, 일방적으로 제사를 요구해?"

"근데 더 화가 나는 건 당신은 한 번도 내 편을 들지 않았어"


"그 일이 이렇게까지 크게 만들 일이었어?"


"또, 똑같은 말 하네?"

"어, 맞아 당신은 45년을 그렇게 살아서 괜찮은지 몰라도 나는 평생 처음 받아본 모욕감이야"

"우리 부모님도 우리 딸한테 왜 그렇게 대하냐고 하시던데?"

"당신만 몰라, 알아? 본인만 상황파악이 안 되신다고요!"

"난 이제 빚도 갚기 싫고, 제사도 드리기 싫고, 그런 집안에서 무시당하는 건 더더욱 싫으니 이제 그만하겠다고요"

"그러니깐 부탁이야, 제발 나 좀 놔줘"


"하.. 그럼 장인, 장모님한테 가서 물어보자. 이대론 안 되겠어"


"물어보긴 뭘 물어봐, 성인인 우리가 알아서 결정하는 거지. 우리 부모님도 내 마음대로 하래"


"지현아... 제발..."


협의 이혼은 혼자서는 할 수 없었다.


본가에 도착한 우리는 최근에 있었던 일과 그간 있었던 일들을 말씀드렸다.

변함없는 나의 완강한 태도와, 중립적 태도를 보이시는 부모님을 뒤로한 채,

남편은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말씀드리겠다며 시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행복해야 할 우리의 결혼 1주년은 온 가족의 악몽이 되어가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와, 법원에 늦게 가면 복잡할 거 아냐"


"...."

"출발할 때 전화할게"




4시간이 지나 돌아온 남편은 요지부동이다.

이혼만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분명히 다른 대안이 있을 거야"


"아니? 난 그냥 당신이랑 살기 싫어"

"너무 힘들어, 1년도 힘들었는데 앞으로 더 힘들 거 같아"

"그러니깐 제발 나 좀 놔줘"


"아니야, 분명히 더 좋은 방향이 있을 거야."

"당신이 하라는 대로 다 할게"

"그러니깐.. 지현아...."

"다시 한번만.... 생각을 바꿔줘..."


우린 그렇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대화를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나, 야속하게 들리겠지만 앞으로 당신 아버지 안 봐"


"그래.. 그렇게 해"


"그리고, 나 제사 안 해, 명절 때도 안 갈 거야"


"그래.. 알았어"


"대신, 당신 어머니 기일은 추모예배든 내 방식대로 챙길게"


"그래..."


첫 번째 결혼기념일은 나의 일방적인 이혼선포와

효력 없는 이혼서류작성과 함께

기억에 남을 가장 슬픈 기념일이 되었다.





오랜만에 정신의학과 병원을 찾았다.

차분하게 특유의 사투리를 쓰시는 선생님은 나를 반갑게 만나주셨다.


"요즘 어때요?"


"숨이 다시 잘 안 쉬어져요."


"흠... 언제 제일 많이 그래요?"


"대중교통 탈 때랑, 사람 많은 곳이랑 시끄러운 곳이요."

"근데, 요즘은 대중교통은 아예 피하는데요. 운전할 때 평소보다 30분 이상 막히면 숨이 막혀와요."

"운전은 예전부터 오래 해서 힘든 건 아닌데,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그럴 때 무슨 생각해요?"


"음... 아무 생각 없는데... 아!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요."


"요즘 다른 건요?"


"사람들을 안 만나요."

"대신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글을 쓰니 생각정리가 되고 많이 좋아진 거 같아요."


"오, 그래요?"

"근데 왜 사람들을 안 만나요?"


"그냥, 만나기 싫어서요."

(뭔지 모르지만 오늘도 열심히 예전차트를 비교하며 계속 적으신다.)


"남편 하고는 요즘 어때요?"


"그냥 그런데요..."

"사실 어제 법원 다녀왔어요."

"이혼서류접수하려고요, 근데 무마 됐어요."


"...."


오늘도 어김없이 한참을 상담한 후, 선생님은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지현 씨, 공황장애가 있지만 본인에게 우울도 있는 거 아시죠?"

"이전보다 약을 좀 더 오래 드셔야 해요, 상담도 빠지면 안 되시고요."


오늘 내가 애써 괜찮은 척하는 걸로 보였는지, 아니면 더 안 좋아진 건지 모르겠지만

선생님은 상담 후에 심리검사를 다시 요구하셨다.


"이혼...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예요."

"특히나, 남편에게 빚이 있고, 원치 않은 제사 등 본인이 힘들어하는 부분은 알겠어요."

"근데, 지현 씨 현재 상황에서 이혼이라는 큰 결정을 하는 건 조금 뒤로 미뤄보는 건 어떨까요?"


"우울이 이성적 판단을 못할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아무래도 감정적인 게 들어갈 수 있죠."


"지금 있는 공황이나, 우울이 조금은 완화가 된 다음에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을 거 같은데..."

"어때요?"


"네..."


"참, 요즘 술은요?"


"흠흠..."


"요즘도 매일 마셔요?"


"매일 마시긴 하는데 조금 줄이긴...."


"지현 씨의 힘든 현실과 상황이 술에 많이 반영되어 있어요."

"술을 당분간 안 마셔 볼 수 있죠?"


"...... 네"

(이 약속은 또 못 지킬 거 같다. 오늘도 난 거짓말을 했다.)


"다음 주에 봬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1년 동안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예전에 너무 많이 울어서 더 이상 눈물이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여전히 나는 눈물이 많다.


매일같이 마음을 부여잡고, 유튜브에 '이혼하면 안 좋은 이유'등의 내용을 들으며

'그래, 이왕이면 이혼 안 하고 사는 게 낫지' 하며 버텨왔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결혼'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은 사람이지 않아서일까?

내가 착하게 살아오지 않아서일까?

나는 행복하면 안 되는 사람일까?


내 인생의 선택들도 엄마의 탓인 양 여태껏 원망만 하고,

지금도 남편만 원망하는 나는 과연 남은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내가 결혼을 해서 한 가정을 만들어 산다는 게 맞는 걸까?


어떤 사람들이 결혼해서 잘 사는 걸까?

성숙한 사람?

나는 마흔이 넘도록 여전히 미성숙하다.

배려심이 많은 사람?

나는 이제 배려할 여유도 없다.


서로 맞춰가며, 이해하며 살아가면 그만인 줄 알았던 결혼생활이

이렇게 어려운 '일' 이였다.

남들은 쉽게 하는 결혼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고민이 더 많아지는 순간이다.

머리로는 '이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짐하지만,

그럼 망설여지는 이유는 뭘까?

이혼을 하면 무조건 행복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단지, 내가 현재 처해있는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지금보다는 마음이 편할 거라 생각이 들어서일까?

그럼 이 선택이 맞는 것일까?


모든 선택은 나에게 달려있다.

지금은 의사 선생님의 조언대로 잠시만

내 상태가 온전해질 때까지 잠시 미뤄보기로 했다.


어떤 선택을 하든지,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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