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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이지 Jul 05. 2024

나에게는 두 명의 아빠가 있다

아빠라는 이름


나에게는 두 명의 아빠가 있다.

이들은 서로 너무나 다른 두 개의 세상을 나에게 열어 주었다.

한 명의 아빠는 고통을 가르쳐 주었고, 다른 한 명의 아빠는 사랑을 알려 주었다.

이 두 아빠가 나에게 가르쳐 준 교훈은 내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첫 번째 아빠: 도박과 파산의 길


나의 첫 번째 아빠는 동대문에서 의류사업을 하셨다.

그 당시 아빠는 사업에 매우 능숙했고,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시골에서 올라와 고생하며 사업을 키운 아빠는 점차 도박에 빠져들었다. 

아빠는 매일같이 도박판에 출근하듯 나가셨고, 그 결과로 일과 가족은 뒷전이 되었다.


동생이 막 태어났을 때, 엄마는 출산이 임박했지만 아빠는 도박으로 연락이 두절되어, 

엄마는 혼자서 동생을 출산해야 했다. 

이런 상황은 우리 가족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도박과 같은 중독은 한 개인을 파멸로 이끌 수 있다. 

아빠는 처음에는 변명과 핑계를 대며 도박을 하셨지만, 

결국엔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이 되었다.

당시 동대문 의류산업은 활황이었고, 우리 가게도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리는 대형 가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아빠는 직원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고 도박에 빠져, 결국 사업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엄마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생후 36개월도 안 된 동생을 맡기고 동대문에 발을 디디셨다. 

엄마는 가게를 지키며 모든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고, 아빠는 점점 더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도박에서 돈을 잃고 가게로 돈을 가지러 오면 엄마가 막았고, 아빠는 매번 매장을 부수며 난동을 부렸다.


엄마의 노력 덕분에 사업은 계속 확장되었고, 90년대 초에는 분당 신도시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엄마는 새로운 시작을 꿈꾸며 아빠에게 사업 정리를 제안했고, 두 분은 100평 규모의 소갈비집을 오픈했다. 하지만 아빠는 다시 도박에 빠져들었고, 식당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던 부모님은

IMF 위기까지 터지면서 가게는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

모든 재산은 이미 아빠의 도박자금 담보로 잡혀있었고,

결국 우리는 모든 것을 잃고,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 이후로 우리 가족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었다.


얼마 전 엄마에게 잘하던 옷사업을 정리하고 뜬금없이 왜 식당을 했는지 물어봤다.


"식당을 하면, 너네 아빠가 정신 차리고 도박하러 안 다닐 줄 알았지"

"처음에는 거리가 멀어서 안 하는 거 같더니만..."

"근데, 도박하는 사람들은 여기저기 다 있나 보더라"


이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도박이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 아빠: 사랑과 회복의 길


그 후, 엄마와 나는 외할머니 집에서 살게 되었다. 

남동생은 초등학교 졸업을 6개월 앞둔 시점에 친가가 있는 시골로 전학을 가야 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엄마는 매일 눈물을 흘리며 마음 아파하셨다.

나는 공부만이 탈출구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에 매진했다. 

그리고 몇 해가 지나 지금의 아빠 덕분에 우리 가족은 다시 모일 수 있었다.


현재의 아빠는 나의 중학교 선생님이셨다. 

엄마는 학교에서 선생님들과 교류하면서 지금의 아빠를 알게 되셨다.

그 후,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고민하던 시기에 엄마와 아빠는 다시 만났다. 

아빠는 내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많은 격려와 지지를 해주셨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큰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빠는 우리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시는 분이다. 

언제나 우리 곁에서 든든하게 지켜주셨고, 그 사랑 덕분에 우리는 함께할 수 있었다.


아빠 역시 모든 걸 버리고 엄마를 선택하셨다.

운명이나 인연이라는 걸 믿지는 않지만, 두 분을 보면 정말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지금의 아빠를 만나서 안정과 행복을 찾으셨고,

나 역시 더 이상 불안하지 않게 되었다.


전에는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매일같이 싸우는 소리에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야 했고, 

남동생과 나는 잘못도 없이 잘못을 빌어야 했다. 

이제는 불안에 떨지도, 잘못한 일을 생각해 내지도 않아도 된다. 

고통스러웠던 20년이 지나가고 행복한 20년을 보내고 있다.


엄마는 종종 말씀하신다.


"우리가 벌써 아빠와 함께한 지 20년이 됐다는 게 믿기니? 너무 짧게 느껴져."


"벌써 20년이나 됐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으니, 실제로는 더 길어."


"아빠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너무 소중해."


"응, 나도. 아빠 덕분에 우리 가족이 다시 웃을 수 있어."


"아빠는 우리 가족의 구원자야."


"엄마도 아빠의 구원자야, 하하."


아빠의 사랑과 헌신 덕분에 우리는 어려운 시절을 이겨내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두 명의 아빠를 가졌다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첫 번째 아빠는 내게 삶의 어두운 면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아빠의 행동은 내게 인간의 약함과 파괴적인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의 중독은 우리 가족의 행복을 앗아갔고, 나는 아빠의 행동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를 품고 자라났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내가 삶을 더 강하고 독립적으로 바라보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삶의 어두운 면을 마주하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나는 더 단단해졌다.


반면, 두 번째 아빠는 내게 사랑과 회복의 의미를 알려준 분이었다. 

그는 나와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해 주셨고, 

그의 따뜻한 마음과 지지 덕분에 우리는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든든하게 지켜주셨고, 

그 사랑과 헌신 덕분에 우리는 함께 다시 웃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아빠와의 경험을 통해 나는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는 내게 인생의 가장 큰 선물, 즉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셨고, 나는 그의 사랑 속에서 치유될 수 있었다. 

그의 존재는 내가 다시 신뢰와 사랑을 배우고, 가족의 소중함을 깊이 느끼게 해 주었다.


이 두 명의 아빠와 함께한 시간은 나를 성숙하게 만들었고, 나의 내면을 강하게 단련시켰다. 

첫 번째 아빠와의 고통스러운 시간은 나를 현실에 눈뜨게 했고, 

두 번째 아빠와의 사랑과 회복의 시간은 나에게 다시 삶의 의미를 찾게 해 주었다.


우리 모두는 삶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어려움과 시련을 마주하게 된다. 

때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지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어떤 이는 아픔 속에서 희망을 찾고, 또 다른 이는 실패를 통해 성장한다. 

사실 인생은 쉽지 않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

어려움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도 있다.

힘든 시기일수록 잠시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보며,

그 안에서 새로운 희망과 성장을 발견하는 건 어떨까?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이 나의 글을 통해 작게나마 위로와 공감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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