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불안 사이에서
전날 잠을 설쳤는지 하루종일 피곤한 날이었다.
'1분 1초'가 아까울 정도로 서둘러 퇴근했다.
가뜩이나 점심도 적게 먹은 탓일까.
집에 가는 길 내내 배가 고팠다.
[뚜루르르르]
"오빠 어디야?"
"아직 퇴근 못했어, 조금 늦게 출발할 거야"
"저녁 뭐 먹을래?"
"나 다이어트 중이니깐, 자기 편한 걸로?"
"스팸 계란 볶음밥 해줄까? 내가 얼마 전에 해서 먹었는데 엄청 맛있어"
"나야 좋지"
"알았어, 빨리 출발해"
"응, 출발할 때 전화할게"
평소 식욕이 없던 내가 오늘따라 유독 배가 고팠다.
그런 내 마음을 몰라주는 퇴근길은 평소보다 차가 더 막혔다.
차가 점점 막히고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지 또다시 약하게 공황증세가 나타났다.
"후.... 하....."
"후..... 하....."
[뚜루르르르]
"오빠 아직 회사야?"
"이제 출발하려고"
"나 또 숨 안 쉬어져"
"차가 많이 막히고, 막 답답해"
"괜찮아? 갈 수 있겠어?"
"응.... 어쩔 수 없잖아... 빨리 와"
"후.........."
다시 한번 깊은 숨을 내 쉬은 채 1시간 10분 만에 집에 도착했다.
[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집에 들어가려는 순간,
현관문 앞 '우편물 도착안내서'가 붙여 있었다.
"응? 등기가 왔나?"
"어?"
"...."
남편 앞으로 온 우편물이었다.
종류는 내용증명이었고, 보낸 이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대부업체였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손발이 후덜거렸다.
'뭐지? 내용증명?"
'왜? 남편한테?'
'지금 남편은 신용회복신청해서 돈을 갚고 있는데?'
'그 이후에 나 몰래 또 대부업체에서 대출을 받은 거야?'
아주 짧은 시간에 별의별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며,
또다시 기억되는 악몽과 두려움에 순간 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뚜르르르르]
"오빠... 지금 오빠 앞으로 우체국에서 뭐가 왔어"
"뭔데? 뜯어봐"
"아니, 본인이 받아야 하는 거라 다시 방문한데..."
"그...'엑셀시어대부'라고 알아?"
"그게 뭐야?"
"나도 몰라, 오빠 앞으로 거기서 내용증명 왔어, 근데 검색해 보니깐 거기 대부업체던데?"
"나는 모르는 곳인데?"
"아니, 오빠 앞으로 왔으니깐 이유가 있겠지"
"도대체 뭐냐고? 어?"
"또 나 몰래 대출받았어?"
"무슨 소리야? 나 거기 어딘지도 몰라. 그리고 대출은커녕 아무것도 안 했어"
"그럼 거기서 내용증명을 왜 보내?"
"나도 모르지, 자기야... 진짜야, 나 아무것도 안 했어!"
"보낸 곳이 대부업체잖아, 내용증명을 왜 보내냐고?"
"지현아... 진정해 봐... 나 진짜 맹세코 대출받은 거 없고,
혹시 과태료 같은 거 안 낸 게 있나?"
".........."
"내가 알아볼 테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걱정 안 하게 생겼어?"
"도대체 잊을만하면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나 금방 도착해.. 집에 가서 얘기해"
전화를 끊고 서둘러 컴퓨터를 켜서 관련된 정보를 샅샅이 찾아봤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이걸 검색하고 있는 내가 너무 비참했다.
퇴근 전부터 고팠던 배는 아프기 시작하고, 머리는 지끈거렸다.
"흑흑흑.... 흑흑흑"
답이 없는 인터넷 검색창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흐흐흑흑흑"
[삐삐삐삐삐삐]
서둘러 들어온 남편은 오열하는 나를 발견하고는 진정을 시켰다.
"지현아, 괜찮아?"
남편의 목소리에 불안함과 서러움이 몰려온 나는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오열을 하기 시작했다.
"흑흑흑 흑흑"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냐고?"
"제발... 왜... 그러니깐 내가 이혼해 달라고 했잖아..."
"이혼서류 때문에 법원 다녀온 지도 3일밖에 안 지났어"
"어떻게 하루도 맘 편할 일이 없어?"
"도대체가... 왜? 왜? 왜?"
"으아악악아악"
난 한참을 소리를 질러대며 울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남편은 그저 내 옆에서 기가 죽은 채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지현아, 나 정말이야. 당신이 알고 있는 빚이 전부이고, 신용회복에서 그때 다 정리했잖아."
"나 맹세코 절대 없어"
"그 말 이제 안 믿어, 그렇게 2번이나 거짓말했잖아."
"또 나 몰래 대출받은 거 아니냐고?"
"무슨 소리야, 나 신용점수 안 돼서 대출 안 되는 거 알잖아. 카드도 없는데."
"그니깐, 대부업체에서 돈 빌렸겠지. 1 금융권에서 당신한테 대출을 왜 해줘?"
"아니야, 진짜 아니야. 내가 이번에 진짜면 내가 이혼할게. 내가 떠날게."
"어디서 당신 입에서 이혼이란 단어를 입에 올려? 이혼을 해도 내가 말하고 내가 결정해."
"그래 그래, 알았어. 그러니깐 당신 해달라는 대로 할 테니깐 울지 말고 조금만 진정해"
잔뜩 울고 난 뒤 퉁퉁 부은 눈으로 난 다시 컴퓨터 앞에서 미친 듯이 관련 내용을 검색했다.
'응? 채권을 넘긴 거라고?'
'채권양도 관련 문의?'
'모르는 대부업체에서 내용증명 '이라고 검색을 해보니 이와 같은 글들이 꽤 많았다.
'그러니깐 남편 대출받은 곳 중 하나가 채권을 다른 곳으로 넘긴 거라는 건가?'
'진짜 그런 걸까?"
관련 내용을 찾아보니 이런 사례가 많은지 당사자들도 미처 받지 못한 내용증명 안내서에 당황하거나,
불안하다는 글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그럼 뭐가 어떻게 되는 거야?"
"하.. 내가 진짜 이런 거까지 알아야 해?'
"이 내용으로만 본다면 내가 돈을 빌린 업체가 다른 곳에 채권을 양도했으니,
이제부터 이곳에다 계속 갚으면 된다. 뭐 이런 내용을 보낸 거 같은데?"
"말 그대로 돈 갚을 회사가 바뀌었다고 알려주는 거지."
남편은 관련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더니 나에게 쉽게 설명해 줬다.
"진짜로? 그럼 정말 다행인데. 그래도 어떻게 믿어."
"난 내용증명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지 절대 안심 못해."
"그래그래, 알았어. 내일 바로 우체국으로 직접 가서 찾아오자"
"나도 갈 거야, 내일 회사 늦는다고 미리 연락해"
"응, 그래 알았어... 너무 걱정하지 말고..."
관할 우체국이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여서 아침 일찍 서둘렀다.
조급한 내 마음처럼 30분 전에 도착해 우체국문이 열릴 9시 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픈전 우체국 앞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나처럼 우체국에 급한일들이 있으신가?'
"문열였다. 빨리 와"
평소 느긋하고 모든 게 느린 남편과는 다르게 나는 마음속부터 달리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2층이래, 얼른 가서 찾아와, 빨리"
"알았어."
[지이이익-]
"줘, 내가 뜯어볼 거야"
남편이 받아온 내용증명을 부리나케 뜯어 내용을 확인하였다.
ㅇㅇㅇ주식회사는 ㅇㅇㅇ주식회사에게 2024년 ㅇ월ㅇ일자 자산양수도계약에 따라 양도인이 귀하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아래에 기재된 양도대상채권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양도하였습니다.
-이하 생략-
양도대상채권과 관련하여 진행 중인 개인회생절차 및 신용회복절차 등에 따른 귀하의 채무는 변동이 없으므로 귀하께서는 종전과 동일하게 채무를 상환하시면 됩니다.
"맞아? 어제 말한 거.. 이거 맞아?"
내가 먼저 읽고 그제야 남편에게 우편물을 건넸다.
"어, 그게 맞네."
"확실한 거야?"
"쓰여있잖아, 빚 갚을 회사만 바뀐 거라고"
"맞는 거지? 맞지? 우리가 막 이해 못 하고 이상한 거 아니지?"
"그래... 아니야..."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우체국 2층에 있는 간이의자에 털썩 앉아 한참을 중얼거렸다.
"이제 가자... 출근해야지"
남편은 내 손을 붙잡고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진짜 별일이 다 있다."
"근데 그 별일이 아무 일도 아니어서 다행이다."
"근데 짜증 나게 왜 내용증명으로 보내냐고? 기분 나쁘게"
"아니, 누가 봐도 대부업체에서 내용증명 오면 기분 나쁘지 않아?"
"진짜 별로야"
불안한 마음이 안도가 되었는지 나는 계속해서 혼자 중얼거렸다.
그런 나를 본 남편은 말없이 한참을 끌어안아줬다.
"미안해, 이런 일 겪게 해서."
"이런 일로 걱정시키는 일 다시는 없을 거고, 앞으로도 절대 없을 거야."
"후....."
"어..... 그래야지..."
남편의 말에 난 짧은 대답밖에 나오지 않았다.
남편을 가까운 지하철역에 내려주고 각자 출근길에 올랐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믿음과 불안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남편으로부터 받은 내용증명 때문에 혼란과 불안에 빠졌었다.
과거 남편의 부채 문제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나에게는
이번 일이 또 다른 악몽으로 다가왔다.
결론적으로는 오해였지만, 나에게는 큰 충격과 혼란이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정말 없을까?
또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부모님의 이혼까지 20년을, 전 아빠의 사건사고로 매일같이 불안하게 지내왔다.
지금의 새아빠는 더 이상 우리 가족을 불안하게 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마음이 너무 편안해서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지 자꾸 의심을 했었다.
'마음이 불편하면 하루도 살 수가 없어'
지금의 새아빠가 나한테 자주 하시던 말씀이다.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결과로 보면 아무 일도 아니었으니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까?
아니면 또 불안한 마음을 매일같이 붙잡으면서 살아야 할까?
이 일을 계기로 나는 다시 한번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고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과거의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현재의 행복에도 불안감이 느껴진다.
특히, 나처럼 사기나 부채 문제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많고, 이러한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도 있다고 한다.
매주 정신건강 상담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고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며 현재의 행복을 유지해 나가는 방법을 찾고 있다.
나는 내가 우울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담을 통해 내가 느끼는 감정들이 우울증의 증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계속 약을 복용하고 치료를 받고 있고, 치료를 통해 나는 점점 나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남편과의 소통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더욱 깊은 신뢰를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의 글들을 통해 나의 이야기를 나누고,
과거의 상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달하고 싶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조금씩 '믿음과 불안 사이에서'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를 믿고 행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와 격려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