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phia p Feb 18. 2024

[철학] 왜 똑똑한 여자는 종종 바보 같은 선택을 할까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의문이다. 왜 똑똑한 여자들은 종종 바보 같은 선택을 하는 걸까? 물론 똑똑한 남자도, 보통의 남자도, 보통의 여자도 바보 같은 선택을 한다. 그런데 그녀들이 더 회자되는 이유는 가질 거 다 가지고 원한다면 사회적 명성도 신뢰도 다 얻을 수 있는 똑똑한 여자가 바보 같은 선택으로 인생을 말아먹는 일이 상식선에서는 좀처럼 이해되지 않아서 일 것이다. 그녀들은 바보 같은 선택으로 불륜을 저질렀는데 거의 처녀 때 유부남을 만났다.


과학자 마리 퀴리가 그러했고 철학자 한나 아렌트도 그러했다. 화가 나혜석도 그러했고 조각가 카미유 끌로델도 그러했다.


이 글은 똑똑한 여자는 왜 종종 바보 같은 선택을 할까에 대한 의문으로 쓴 글이지 불륜을 한다고 해서  다 똑똑한 여자는 아니다. 비약하지 말라.


나는 이 해답을 지나친 ‘자기 과신’에서 찾았다. 자기 과신이란 자신의 능력을 실제보다 높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자기 과신이 지나친 사람들은 어떤 일을 판단하거나 시작할 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묻거나 객관적인 분석이나 조사를 하지 않고 형식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직관을 더 신뢰하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는 저서인 『생각에 관한 생각』(김영사刊, 이진원役, 2012)에서 인간은 선택에 직관을 더 많이 사용한다고 주장했다. 때론 이 직관이 시간을 줄여주고 예상치 못한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직관은 따라가는 것보다 이성을 따라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한다. 그리고 직관으로 인한 성공은 오히려 그 사람을 자신의 직관만을 믿는 자기 과신에 빠뜨려 자신의 생각과 판단대로만 움직이는 사람으로 만들어 간다. 자신의 직관을 따라갔다가 성공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언젠가 더 큰 실패나 어려움을 겪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말 그대로 그녀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금기 따위 깨뜨릴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들은 자신을 똑똑하다고 판단했겠지만 아니다. 앞서 생각했다고 해서 지금은 용서받았는지는 모르나 자신과  가족을 위했다면 그런 선택 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과신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욕구를 자제하기가 매우 어렵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반드시 해야 하고 자기 자신의 판단과 능력을 믿는 쪽으로 생각이 굳어져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바로 자제력을 기르는 것이다.


내가 생각한 또 다른 이유는 경험해 보지 않아서, 몰라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것이다. 그녀들은 대부분 열악한 환경을 겪어보지 않았다. 그렇기에 학력 낮은 남자를 선택하고도 가난한 남자를 선택하고도 잘못된 선택인 줄 모르다가 발등을 찍힌 후에야 제자리로 돌아온다. 물론 학력이 낮고 가난한 남자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남자는 아니다. 그러나 순진한 그녀들에게는 판단력이 없다. 다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돈 문제로 헤어진다.


그렇다면 이런 자기 과신에서 벗어나 자제력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는 자신의 현재 능력과 위치를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 그런데 객관적인 자기 자신을  스스로 알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가 거울을 통해 우리의 외모를 확인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 우리 마음을 비춰주는 도구는 누군가의 마음이다.  타인의 눈을 통해 자신의 정확한 모습을 발견했을 때 자기 과신에서 벗어나 자제력을 키울 수 있다.


둘째, 자기의 생각이나 판단과 다른 결정을 따라 행동해 보는 것이다. 내 생각과 판단에 맞지 않는 시도를 한다는 게 처음에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두 번 시도하다 보면 나보다 타인의 판단이 옳았다는 체득이 쌓이게 되고, 차츰 나의 생각과 판단을 무시하고 반대로 행동할 수 있는 힘, 즉 자제력이 생겨난다.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줄  있고,  역시 마음을 자연스럽게 터놓을  있는 교사 또는 친구를 근처에 두는 거다. 중이  머리를  깎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기 과신에서 어나 자제력을 기를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우릴 객관적으로 비춰주고 조언해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 역시 허세로 자신을 치장하는 사람들처럼 자기 객관화가 여실히 필요하다 하겠다.


참고 자료: https://blog.naver.com/wonderwork91/221165789570



작가의 이전글 [철학] 복지의 방향성-존엄 복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