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를 통해 보는 오성과 한음 이야기] 13

13. 임진왜란

by sophia p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시작되었습니다. 젊은 관리였던 오성과 한음은 전쟁과 조선 내부의 극심한 혼란에 휘말렸습니다. 조선왕조는 일본의 침입을 완전히 예상하지 못했고 전선은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급박한 피란 상황에서 백성들과 궁궐은 무질서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조선 내부의 혼란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당파 싸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도 두 세력은 협력 대신 서로 견제하며 신뢰는 붕괴되었습니다. 이러한 내부 분열은 나라의 위기를 가중시켰고 전쟁 대비와 국가 통합 능력을 떨어뜨렸습니다.


오성은 이 암담한 현실을 누구보다 통탄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용맹하게 서로 싸우는데 어째서 적은 단 하나도 막지 못하는가”라는 비통한 농담을 던지며 파벌 다툼의 무의미함과 국가적 손실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 농담은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닌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분열을 날카롭게 꿰뚫는 오성의 통찰이었습니다. 백성을 고통으로 내몰던 당대 혼란의 원인이 무엇인지 분명히 지적하는 일침이었습니다.


피란길은 절망과 고통의 연속이었으며 먹을 것 부족과 병마, 추위가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궁녀들조차도 버림받는 상황에서 오성은 직접 나서서 궁녀들을 모아 피란 준비를 이끌었습니다. 임금의 어의 양예수가 다리병이 있다고 주장하며 임금을 섬기지 않고 도망치자 이에 대해 오성은 “양예수는 다리병이 있었지만 난리통에 병이 낫는 기적을 맞았다.” (도망가는 걸 보니 다리는 멀쩡하구만) 라며 웃음을 주었고 이 농담은 긴장과 고통에 지친 사람들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혼란한 시대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우정을 키웠습니다. 조선 내 당파 싸움과 권력 다툼은 국가의 발목을 잡았지만 오성과 한음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고 서로에게 힘이 됐습니다.


이 이야기에 어울리는 논어의 가르침은 “君子求諸己(군자구저기)”로 군자는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찾는다는 의미입니다. 두 인물은 혼란 속에서도 자기 성찰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君子和而不同(군자화이부동)”은 군자가 조화를 이루되 완전히 같지는 않다는 뜻으로 오성과 한음은 성격과 길이 달라도 서로 존중하며 우정을 지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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