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엔 사람 간의 관계와 사랑에 대해 나눈 이야기가 많았다. 나를 속상하게 하는 관계들을 어쩌지 못해 몇 번이나 마음이 멈춰 섰던 날들이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뭉개진 마음을 나눠지고 함께 걸으며, 마주 앉아서, 또는 전화로 이야기 나눠 준 친구들이 있었다.
한 친구는 항상 그랬다. 사랑이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만나지 말라고. 네게 쉬운 사람만 만날 시간도 부족하다고. 꼭 사랑뿐일까, 인간관계가 어렵고 피곤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들은 대체로 내게 해로운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의도와는 별개로 말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교육이란 상당히 강력해서, 세상에 쉬운 일만 있는 건 아니라고, 그러니 이런 관계도 있다고, 할 수 있는 한 타인을 포용해야 한다고만 생각해왔다. 타인에게 쉬운 사람이 되는 데에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썼다. 일방적으로 쉬워지는 건 너무 외로운 일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삶의 태도든, 사람을 대하는 태도든 일관성 있는 사람을 무엇보다 좋아한다. 거기에 모르는 것을 낯설어하기보다 호기심 어린 태도로 알려고 노력하는 유연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좋아한다. 그런 사람하고 있을 때 내가 어떤 모습이라도 안전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결국 어려워지고 싶지 않아서다.
몸과 마음에 늘 긴장을 품고 살기 때문에, 편안하고 안전한 사람 앞이어야 진짜 마음을 제대로 풀어놓을 수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내게 기꺼이 열어주는 사람, 그래서 쉽게 마음 놓고 좋아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았을 때 진짜로 좋아할 수 있다.
타인의 좋은 점을 쉽게 찾아내 예쁘게 보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편이지만 그건 그저 타인에게 쉬워지는 일이었다. 이제야 나를 중심에 놓고 내 마음을 직시하면서 내게 쉬운 사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깨달았다. 정말이지, 나 하나를 알고 건사하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어떻게 관계를 어렵게 만드는 타인을 만난단 말인가.
아주 다행히도 그렇게 일관성과 유연함을 동시에 가진 채 누구보다 내게 쉬운 친구들은 많다. 이 쉬운 사람들은 내가 아무리 괜찮다 말해도 괜찮지 않음을 알고, 내 안색과 잠 못 드는 밤을 걱정하다가 불쑥 마음을 건넨다. 덕분에 나는 대체로 쉽지 않은 세상의 일부분을 쉽고 편안하게 넘긴다. 그들이 있어 주어서 사랑스러운 봄날이다.
오늘 본 봄 풍경은 거짓말처럼 아름다웠다. 봄은 항상 그렇게 반갑고 사랑스럽고 그래서 더욱 벅차고 때로는 감당하기 힘들다. 봄과 함께 오는 마음들도 그렇다. 예뻐서 덜컥 겁부터 난다. 게다가 이번 봄은 유난스럽게 속도가 빨라 쫓아가기 어렵다. 성큼 찾아온 봄기운에 소스라치게 놀랐다가, 한편으로는 순식간에 사라질까 두려워 슬며시 애가 탄다.
하지만 봄밤의 공기에 휘둘리지 않고 내 마음을 먼저 들여다보면서 내가 편안한 자리를 찾아보려고 한다. 계절은 봄으로 끝나지 않으니까. 어떤 관계든 내가 편안할 때 여유가 생긴다. 내게 쉬운 사람은 그런 순간에 찾아온다.
얼마 전에 그런 일기를 썼다. 작년이 봄인 줄 알았는데, 올해가 진짜 봄인 것 같다고. 작년엔 민들레 홀씨 같은 마음이 여기저기 날아다녔다면, 올해는 좀 더 안정적인 바람을 타고 제대로 머물 자리를 찾아 낙하하고 있다. 어디가 되었든 그 자리는 볕이 잘 들어 내 마음을 풀어놓기 좋은 곳, 그래서 마음이 자라기 쉬운 곳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