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르칸트에 방문한 한국 대통령
사마르칸트 3일 차, 엄마는 아침부터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셨다. 밤새도록 기침을 하시더니, 허리가 쑤셔서 거동이 힘들다고 하셨다. 감기약을 아무리 먹어도 소용이 없었다. 여기 사마르칸트 사람들은 아프면 러시아에 병원 찾으러 가는 판국에, 말도 안 통하는 내가 여기서 도대체 엄마께 뭘 해드릴 수 있을까. 일단 오늘은 주원이를 데리고 나가 엄마께 온전한 휴식을 드리는 게 최우선이었다. 엄마에게 말씀을 드리진 못했지만, 이렇게 상태가 악화되기만 하면, 타슈켄트에서 엄마가 조기 귀국하셔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아침을 먹고 나서 주원이와 사마르칸트에서 저녁 늦게까지 안 들어오는 것을 목표로 유아차를 끌고 무작정 나갔다. 첫날 사마르칸트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사마르칸트가 무지하게 크다고 겁먹었었는데, 막상 걸어 다니려고 지도를 보니 우리 숙소에서 1 직선으로 쭉 걸어 나가기만 하면 사마르칸트의 웬만한 유적은 다 찍을 수 있는 것이었다.
사마르칸트는 부하라나 히바와 정말 확연히 달랐다. 우리가 한국인 관광객으로 체감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한국어를 할 수 있는 현지인이 너무 많았다는 점이었다. 알고 보니, 우즈베키스탄 전 대통령인 이슬람 카리모프의 고향이 사마르칸트였는데, 그는 집권 시기 자신의 고향인 사마르칸트를 한국에 각인시키려고 애쓴 듯했다. 김대중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김영삼 대통령 이후 당선된 모든 대통령은 사마르칸트에 와봤다. 김대중 대통령은 아마 일정문제가 있었는지 직접 우즈베키스탄에 방문하지 않고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을 방한하도록 초대한 기록이 있다.
총 26년간 장기집권한 이슬람 카리모프 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은 한국의 대통령이 5번 바뀌는 동안 굳건히 우즈베키스탄에서 대통령 자리를 지켰다. 아무리 독재라지만 26년간이나 버텼던 걸 보니 독재자는 체력도 좋았나 보다.
1994.6.5 김영삼 대통령 사마르칸트 방문
2005.5.11 노무현 대통령 사마르칸트 방문
2009.5.12 이명박 대통령 사마르칸트 방문
2014.6.18 박근혜 대통령 사마르칸트방문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2019.04.21 우즈베키스탄 샤프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 내외와 함께 사마르칸트에 방문했다.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의 사마르칸트 홍보가 통한 것일까. 실제 사마르칸트에는 우리만 보면 한국어로 말을 걸어 자신이 언제 한국에 갔는지 구체적으로 말하는 현지인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거리를 걸으면 여전히 한국에 취업 및 유학을 알선하는 회사간판들이 꽤나 많이 눈에 띄었다. 생각해 보니 한국 서울 동대문의 가장 유명한 우즈베키스탄 음식점 이름도 사마르칸트였다.
우즈베키스탄의 소득 수준을 보았을 때 적게는 3배 많게는 10배 이상 벌 수 있는 한국은 얼마나 기회의 땅일까.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언어가 통하는 러시아보다도 더 많이 벌 수 있고, 한국 드라마로 인해 기본적인 호감도 있으니, 기회가 있다면 모두 한국에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14년 전 회사에서 야근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아이비에커의 한국인 지인으로부터 아이비에커가 연락을 기다린다는 전화를 받고 망설임 끝에 아이비에커에게 연락을 했다.
"은주, 잘 지내? 나 곧 대학원도 졸업해. 나 한국 가고 싶어. 지금은 내가 돈이 없으니, 네가 먼저 비행기표를 보내주면 안 될까? 너무 보고 싶어."
당시의 나는, 이미 새로 사귄 남자친구도 있었고, 아이비에커와도 감정이 많이 소원해진 상태였다. 더군다나 별로 전망도 없어 보이는 중문과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채 수중에 돈도 없다는 아이비에커가 너무나도 어리고 무능력하게 느껴졌다. 나는 말을 흐렸다. 정말 내가 보고 싶은 건가. 아니면 나를 이용하려고 하나. 오고 싶으면 스스로 돈 벌어서 올 것이지...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한국에 오고 싶은 사람들이 줄 서 있어서 지인의 초청없이는 취업비자는 커녕 관광비자조차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초청을 해야만 올 수 있는 것이었고, 우즈베키스탄 인건비가 워낙 낮아 대졸자가 취업해서 3달간 꼬박 모아야 왕복비행삯을 벌 수 있었다.
10여 년이 훨씬 흐른 몇 주전 타슈켄트에서 다시 아이비에커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나는 당시의 그가 정말 나를 이용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그가 모든 순간에 진심이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냥 철없고 나쁜 놈으로 생각하고 잊어버렸을 때는 아주 마음이 편했는데, 타슈켄트에서 그를 다시 만나고 그동안 내가 그에게 해왔던 그 오해들이 사실은 내가 마음 편하자고 만든 것이라는 걸 스스로 깨닫게 된 순간부터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내가 잊고 살았던, 그리고 매 순간 성의 없이 읽고 답장도 안 했던, 과거에 그가 나에게 보냈던 수많은 편지의 말미에는 늘 이렇게 쓰여있었다.
'나는 우리가 다시 만날 거라 믿어. 너는 믿니.(我相信我们一定会再见的。你相信吗?)'
그의 나라가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국력도 약하다고 매 순간 그의 진심조차 나는 무의식적으로 못 듣는 척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