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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소리 Jul 20. 2023

타슈켄트 재회1

판도라의 상자와 잊혀진 기억

"곧 도착해.(马上到了)"
 아이비에커의 전화를 받고 나는 3층에서 다시 1층까지 한 손에는 유아차와 짐을 들고 한 손으로는 주원이의 작은 손을 잡고 계단을 낑낑대며 내려왔다. 관람료 낸 걸 생각하면 1, 2층의 전시물을 더 보고 싶었지만, 아이비에커도 바쁜 시간을 빼서 오는 게 분명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에라. 모르겠다. 국립예술박물관은 화장실이 층마다 없었기 때문에 1층 복도에 있는 화장실 앞에 유아차를 잠깐 주차해 두고, 주원이의 소변을 뉘었다. 손을 씻고 화장실에서 나오는데 화장실 바로 앞 의자에 노란 곰 한 마리가 등을 숙이고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노란 폴로 카라티를 입은 아이비에커였다.
 "아이비에커! 우리가 여깄는줄 어떻게 알았어?"
 "하하. 너희가 어디에 있는 줄 나는 다 알지."
 아이비에커는 살쪘지만, 웃자 예전 그 귀여운 얼굴이 돌아왔다. 여기 화장실은 입장료를 내야 들어올 수 있는 복도에 있었는데, 넉살이 좋은 아이비에커가 박물관 매표소와 이야기해서 잠깐 들어왔고, 화장실 앞에 유아차가 세워져 있으니 눈치 빠르게 그 앞에서 앉아있었던 듯했다. 나는 어색하지 않은 척, 말을 꺼냈다.
 "우리 밥먹으러 가자. 요 맞은편에 가게 있던데 그리로 갈까."
 아이비에커와 우리는 15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자연스러웠고, 그렇게 길 건너 맞은편 식당으로 갔다.

 2주일 전, 타슈켄트에서 아이비에커와 바허와 재회하던 그 날, 아이비에커의 집에 가서 아이비에커의 부모님과 아내와 딸을 만났던 바로 그 날, 나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단 한숨도 잠들지 못했다. 음식도 소화가 잘 되어야 숙면에 방해가 안 되는데,  아마 나는 그날 나에게 발생한 모든 일들을 아직 소화하지 못한듯 했다. 도대체 하루 만에 무슨 일이 펼쳐진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비에커는 15년 만에 만난 나를 세상 쿨한 척 반겼지만, 나는 20대의 내가 사랑했던 아이비에커를 만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막상 만나니 반가웠고, 또 그의 집에 가니 말도 안 되게 질투가 났다. 잠들지 못한 그날 밤, 내 이성이 내 마음에 밤새 외치고 있었다. 심호흡 열 번. 심호흡 열 번. 그러나 심호흡을 아무리 해도 결국 엄마와 주원이가 자다가 뒤척이는 소리를 모두 들으며 잠들지 못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드는 나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덮어두었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 나도 회사다니고, 결혼하고, 애 낳느라 사실 아이비에커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두 잊어버렸다. 그와 얼만큼 서로 좋아했는지, 왜 헤어지게 되었는지, 어렴풋한 맥락 말고는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내가 연 판도라의 상자는 바로 그에게서 왔었던 수많은 이메일들이었다.
 '이거 니 이메일 맞지. 나의 타키토, 이메일 확인했으면 이제 안심이다. 사랑해.'
 '너를 공항에서 보내고 지금 나 혼자 PC방에 왔어. 자꾸 눈물이 흐르네. 사실 네가 아까 공항 들어갈 때만 해도 믿기지 않았거든. 근데 지금 나 여기 혼자야. 정말 갔구나. 타키토...'
 '왜 연락이 안 되는거야. 그렇게까지 바쁜 거야? 나는 정말 화가 나려고 해....'
 '드디어 연락이 되었네. 연락이 너무 안 되던 지난날들, 니네 생각만 하면 정말 가슴이 터질 것 같았거든. 그런데 이제 니 사진 보면서 웃을 수 있게 되었어. 답장해 줘서 정말 고마워.'
 무려 4년간이나 이어진 그의 메일 속에 청년 아이비에커가 녹아져있었다. 나는 그동안 아이비에커를 나쁜 놈으로만 정의하고 아예 잊고 살았는데, 내가 기억하는 아이비에커와 메일 속에 느껴지는 아이비에커는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한결같이 나를 바라봐줬고, 한결같이 사랑한다고 표현했고, 그 누구보다도 간절했다. 순수했던 그를 왜 나는 일방적으로 나쁜 놈이라고 기억하고 있었을까. 나는 그를 사랑하긴 했던걸까. 20대의 나는 그의 순수한 마음에 어떻게 반응했던 것일까. 아이비에커가 나에게 보낸 편지는 기록에 남아있었지만, 내가 그에게 보낸 회신은 모두 지워진 상태였다. 20대의 나는 도대체 왜 아이비에커를 멀리하게 된 걸까. 20대의 나도 그를 사랑한 느낌은 있는데 왜 그렇게 아이비에커한테 답장도 안 하고 연락도 안 하려고 노력했을까.
 히바, 부하라, 사마르칸트로 오는 여정동안 주원이가 잠들면 나는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그가 보낸 메일을 모조리 다시 읽었다. 그러면서 내가 굳이 잊고 살았던 내 20대의 영혼과 기억들이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순수한 그의 메일들을 30대인 내가 다시 읽어보니, 그의 순수한 마음을 오해해서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15년만에 찾아온 타슈켄트에서의 나와 아이비에커는 또 어땠는가. 나는 굳이 그를 피하려고 애썼고, 결국 만났고, 그와 그의 가족들이 엄청난 환대를 받았다. 순수한 그의 지난 영혼을 만나자, 오해해 미안했고, 또 나때문에 미친듯이 힘들었던 그에게 변명도 하고 싶고, 사과도 하고 싶고, 고맙다고도 하고 싶었다.




 아이비에커는 여행 중에 무슨일이 있으면 자신한테 꼭 연락하라고 했지만 나는 절대 연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사마르칸트에서 현지인 2명이 대낮에 집적대고나서 나는 이제야 무섭다는 느낌이 들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돌길에 유아차를 밀고, 또 기차에 실는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주원이의 유아차까지 망가져버렸다. 나는 그제야 아이비에커에게 현지인들이 밥 먹자고 초대할 때 무슬림에게는 어떻게 하면 예의 있게 거절할 수 있는 건지, 그리고 타슈켄트에 유아차 햇빛가리개 연결부위 플라스틱을 고칠 곳은 있는지 물어보느라고 문자를 보냈다. 키르기스스탄으로 넘어가기 전에 유아차를 고치지 않으면 귀국직전까지 2달은 더 망가진 유아차를 끌고 다녀야한다. 내가 문자를 보낸 즉시 답장했다. 유아차를 수리할 장소를 묻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일단 오기나 해.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할테니까."  

 내 유아차가 뭔지 알고 아이비에커는 뭐가 그리 자신만만할까. 여행내내 기댈 곳이 없었기 때문에, 엄마도 아프고, 주원이의 안위를 신경쓰기도 바쁘고, 이것저것 모두 다 내가 챙겨야 했기 때문에, 나는 말도 안 되게 자신만만한 아이비에커의 문자가 든든했다.


 나는 유아차를 끌며 그와 식당을 향해가며 마음 속으로 계속 되뇌였다. 이제 우리는 편한 친구, 지난날은 다 잊었고, 얘는 그저 내가 과거에 알게 된 편한 현지 친구... 나는 편하다, 나는 어색하지 않다. 식당을 향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도, 햇빛은 따가웠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한국의 가을하늘처럼 파랗고 높았지만, 내리쬐는 직사광선이 아직 내가 여름의 사막도시에 있음을 상기시켰다. 아이비에커의 얼굴도 금방 벌게졌다.
  길을 건너며 아이비에커가 살짝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여행은 재밌었어? 나 사실 현지남자들이 너한테 접근했다는 니 문자 받고 정말 질투났었어.(其实收到你被男人们挑逗的信息之后,我吃醋了。你知道吗?)"
  질투(吃醋)라니... 나는 마음 속에 '우리는 편한 친구다, 우리는 편한 친구다.'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그의 첫 문장부터 벌써 선을 넘고 있었다. 걱정(担心)도 아니고, 우려(发愁)도 아니고, 질투(吃醋)라니, 내가 잘못 들었나?
 앞을 보며 유아차를 밀고 있던 나는 순간 어이가 없어서, 겸연쩍은 미소와 함께 옆에 걷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아이비에커도 나를 여전히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둘 다 헛웃음을 지었다. 서로 빤히 보는게 너무 익숙해서, 나는 흠칫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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