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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미영 sopia Jan 30. 2024

영화 리뷰 《 엔딩 노트 》

일본 다큐멘터리 / 감독-스나다 마미 / 90분

엔딩 노트(Ending Note)는 2011년에 개봉한 일본의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회사 정년 퇴임을 하고 위암 판정을 받은 주인공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다. 주인공 스나다 도모아키는 향년 69세이다. 도쿄 올림픽이 열렸던 1964년 도쿄에 본사를 둔 화학 회사에 입사했다. 그는 67세까지 43년을 근무한 성실하고 꼼꼼함 샐러리맨이다. 은퇴 후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즐겼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내와도 주말 부부로 지내며 마음의 평화도 찾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에게 암판정이 내려졌다. 2009년 5월에 위암 판정 4기로 수술이 불가능한 상태로 다른 장기에 전염되는 악성이었다. 스나다는 암선고 후 엔딩 노트를 쓰기 시작했는데 가족에게 보내는 각서 같은 것이다. 아직은 정신이 있을 때 자신의 삶을 정리해 두고 싶다고 했다. 확고한 의지로 직장생활을 해냈던 그에게 죽음을 준비하는 건 마지막 프로젝트였다. 그는 버킷리스트를 적어가며 죽음에 필요한 것들을 적어 나갔다. 영화를 통해 엔딩노트가 공개된다.

주인공

2009년 11월 막내딸의 권유로 성당을 방문했고 사제를 만나 세례와 죽음에 관해 상의했다. 다큐멘터리를 찍은 딸이기도 하다. 스나다는 불교도로 살아왔지만 죽음을 앞두고 장례 절차가 간소한 천주교를 택하게 되었다. 스나다는 15살에 상경했다. 아버지가 시골 의사여서 의대 진학을 꿈꾸기도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경제학부에 진학했다. 졸업 후 도쿄 본사를 둔 화학 제조사에 입사했고 영업부에서 일했다. 그러나 그는 성공보다 실패한 기억이 많았다고 회상한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1984년 8mm 비디오 발매 때 설비를 다해 놓고 기다렸으나 채택이 되지 않았다. 소니가 발매 직전 방침을 바꿔 경쟁사 제품을 선택, 기대했던 만큼 실망감이 무척이나 컸다고 고백한다. 임원이 되었고 퇴직 때 그는 직원들에게 시장에서 발로 뛸 것을 당부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할 수 있어 좋았다고 감회를 밝혔다. 암 판정 후 평온해지고 싶어 성당을 찾게 되었다. 사제는 종교의 근원은 같다면서 조석으로 기도문을 외우라고 당부했다. 파울로 세례명으로 교리를 받기로 결심한다.

스나다와 손녀들
스나다와 준코 신혼시절

1968년 결혼한 비디오 영상도 있었고 자녀들이 태어나고 키우는 과정도 영상에 담겨 있었다. 두 딸과 아들 세 자녀의 가장이 되었다. 두 자녀는 출가를 했고 막내딸은 미혼인데 아빠의 졸졸 따라다니며 영상을 찍고 있다. 아들은 미국으로 전근해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며 두 손녀들이 무척 사랑스럽다. 가끔 아들 가족이 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성탄절에 미국 갈 목표로 본격적으로 치료받기로 한다. 항암제 치료와 무농약 당근을 갈아 마셨고 식생활도 신경 썼다. 아내의 이름은 준코이다. 회사를 다닐 때 일과 접대로 거의 집을 비우다 이제 같이 있으려나 했더니, 암에 걸려 죽는다니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신혼땐 소꿉놀이 하듯 즐겁게 지냈지만 자녀들이 생기면서 스트레스가 쌓여 자주 싸움을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다 아들 집관리로 아내와 떨어져 주말 부부로 지내고 있다. 스나다는 친구들과 여행 가고 평생 교육원도 다니고 40년 만에 독신생활을 하다 보니 평온함이 찾아왔다. 그러나 암이 찾아왔고 갈수록 살이 빠졌다. 9월 초 셋째 손녀가 태어났다.


11월에 94세 어머니, 아내, 딸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가족여행이 핑계였지만 목적은 어머니께 세례를 받는 걸 말하기 위해서였는데 허락하셨다. 가끔 방송으로 암치료에 대한 정보를 얻고 편안하게 잘 죽기를 바란다. 그는 아내와 성당에 가서 장례식장을 둘러보았다. 점점 힘들어지면서 하고 싶은 것도 못하자 자식들은 항암제를 끊는 걸 제안한다. 그러나 약을 끊으면 3년을 갈 수도 있지만 한 달안에 사망할 수도 있다. 미국에 사는 아들이 출장을 왔다가 집에 들렀다. 아들도 그를 닮아 꼼꼼하다. 10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는 작은 시골병원의 의사였다. 작은 진료실에 환자들이 많았던 기억한다. 아버지는 은퇴 후 치매가 걸렸는데 오지 않는 환자를 기다렸다. 스나다는 이제 잠을 거의 못 잔다. 혈압이 불안정하고 숨이 차다. 혼자 추측하거나 주변에서 한 마디씩 거들면 불안한데 병원 오면 마음이 편하다. 12월이고 2주 후면 올 해도 끝난다. 그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간이 비대해졌고 치료에도 호전되지 않았다. 올 해를 못 넘길 가능성도 있다고 의사가 말했다.

영화 속 그의 이야기

준코는 아빠가 일주일을 넘기기 힘들다고 연락했고 아들네가 왔다. 그는 며느리에게 와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들은 소파에서 가족사진을 찍었다. 신부님은 신앙생활의 중심은 미사라고 했다. 미사는 그리스도가 죽기 전 제자들과 만찬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최후에 만찬 때 자신의 생명을 남기었듯 우리도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남긴다. 부부는 결혼부터 생활 속 영상을 영화처럼 잘 담아 놓았다. 거기엔 아내와 자신의 젊은 시절 생기발랄한 모습들이 있었다. 성탄 이후 그가 입원했으며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가족들은 장례를 상의했다. 진행속도가 빠르다는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였고 연락할 명단을 확인했다. 이젠 몸도 일으키지 못하고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손주들 목소리가 들리자 눈을 뜨고 말을 했다. 그가 가장 원했던 보고 싶었던 손주들이기에 눈이 떠지고 말도 했나 보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며느리와 손녀들

눈물을 흘렸고 어머니와도 전화로 작별인사를 했다. '어머니보다 먼저 가서 죄송해요' 노모에게 죄송함을 전했다. 막내딸은 스나다에게 세례를 준다. 다시 기력을 찾는 그가 가족들과 얘기한다. 아빠 좋은데 가느냐고 딸이 묻지만 그는 ''안 가르쳐 준다'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에 아내와 얘기했다. 아내는 '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라고 했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걸 후회하며 미안하다'라고 했다. 나흘째에 그는 의사에게도 고맙다고 했다. 다섯째 날 가족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스나다에게 사망선고를 내렸다. 연하장대신 부고장을 보냈다. 사후 연락처는 친척, 친구, 회사 신문 부고란에는 가까운 분들만 모신다는 글이 올랐다. 장례는 성당에서 치러졌다. 당부는 스나다 엔딩 노트에 빼곡히 적혀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 노래가 엔딩음악이 울려 퍼졌다. 항상 거기에 있을 것이라는 가사 내용이다. 그의 11가지 버킷리스트 내용을 정리해 본다.


To do list

1. 평생 믿지 않았던 신을 한번 믿어보기

2. 손녀들 머슴 노릇 실컷 해 주기

3. 평생 찍어 주지 않았던 야당에 투표하기

4. 꼼꼼하게 장례식 초청자 명단 작성

5. 소홀했던 가족과 행복한 여행

6. 빈틈이 없는지 장례식장 사전 답사하기

7. 손녀들과 한번 더 힘껏 놀기

8. 나를 닮아 꼼꼼한 아들에게 인수인계

9. 이왕 믿은 신에게 세례 받기

10. 쑥스럽지만 아내에게 사랑한다 말하기

11. 마지막 이야기 엔딩 노트

주인공 막내딸, 영화감독 마미 스나다

이영화 제목이 <엔딩 노트>인 이유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끝' 마무리했던 퇴직한 일본인 아빠의 다큐 스토리이기 때문이다. 그는 죽기 전 '꼭 해야 할 일' 버킷리스트를 적어가며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 나갔다. 영화의 주인공은 '스나다'이지만 내레이션은 막내딸이자 감독, 편집, 촬영을 맡은 '마미 스나다'이다. 아버지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싶었던 마미는 감독의 권유로 영화까지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가족의 기록물로 남는 것을 영화로 만들어 죽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잘 받아 들이수 있게 해 주었다. 가족 안에서 우리는 마지막까지 의미 있는 삶을 안고 가려는 주인공의 의지를 엿볼 수 있게 된다. 거의 죽음의 상태에 이르러 의식이 없었음에도 손녀들이 오자 다시 의식을 찾고 이야기를 나누는 주인공을 보면서 그가 꿈속에 얼마나 가족을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가족이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위로하고 사랑하는 모습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겪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부모나 주변 사람들의 죽음을 알고 있기에 더 짠하다. 친정아버지도 스나다 씨와 비슷한 69세에 돌아가셨다. 68세에 후두암 판정을 받고 일 년 정도 서울 세브란스 병원을 다니며 치료를 받으셨다. 시댁에서 3년을 살다가 남편이 직장에 취업이 되어 부천으로 이사를 했다.


당시 둘째를 낳고 남편은 수습 기간이라서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는데 친정아버지께서 오셨다. 아버지의 마른 몸과 제대로 해 드릴 수 없어 아팠던 마음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런 아버지께서 둘째 백일을 넘기고 5월에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두 아이 키우느라 정신없이 보내는 동안 아버지는 후두암의 병마와 싸우시느라 진이 다 빠지신 듯했다. 너무 마르셔서 제대로 눕지도 못하는 아버지를 보며 눈물을 펑펑 쏟았었다. 아들 여섯에 외동딸로 지냈던 친정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다. 아버지로서 위엄과 동네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던 아버지는 나에게 무척 살갑게 해 주셨다. 국민학교 때 남자애가 고무줄을 자르려다 다리를 베었을 때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 주셨다. 시냇물을 건너 학교를 다녔는 데 장마 때는 꼭 업어서 건네주셨다. 6년 개근했으니 아버지의 사랑이 크셨다. 여름 저녁에 모깃불을 피워 주셨던 것과 지게에 한가득 짐을 지고 들에서 오시던 모습이 아른거린다. 가끔 아버지가 그립기도 하고 생각나 눈시울을 적신다. 엔딩 노트를 보며 동영상과 사진을 많이 남겨 놓은 막내딸이 부러웠다. 아버지와 찍은 사진도 제대로 없어 아쉽다. 누구나 죽음은 예고 없이 온다. 평소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버킷리스트로 만들어 실천하면 좋을 같다. 엔딩 노트를 차분히 적어 간다더욱 멋진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https://brunch.co.kr/@sopia1357/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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