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 책 쓰기 강의를 마치고
지인이 요청받은 것이 나에게 토스되어 시작한 글쓰기 수업이었다. 처음부터 내가 요청받은 수업이 아니었던 만큼 나는 내가 자격 있는 강사임을 증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했다. 강의 시작 전 필사 활동을 하도록 한 것부터 수강생 글에 대해 매시간 첨삭지도를 한 것까지 나의 역량을 갈아넣었다. 필사 활동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수강생들이 다가올 수업에 대한 기대를 갖도록 하는 것이었고, 둘째는 자기가 쓸 글의 모델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목적은 이루어진 것 같은데, 두 번째 목적은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것 같다. 20일이라는 기간은 다른 작가의 글의 스타일을 내면화시키기에는 짧은 기간이었나보다. 수업은 끝났지만, 자기들끼리 필사 모임을 하거나 합평 모임을 계속하도록 동기부여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종강을 하면서 수강생들이 여전히 어려워하는 것 몇 가지를 추려보니 주술 일치 문제가 최강자였다. 참고도서를 추천하긴 했지만 혼자서 숙달하기는 어려운 문제일 수 있다. 그래서 후속 강의를 한다면 이 부분에 좀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반복 연습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초에 수강생들의 글쓰기 수준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한 것인 문제였다. 그들 글의 수준을 어느 정도 알고 수업을 준비했다면 좀 더 수요자 중심의 수업이 되었을 것이다. 강의 주관자와는 겨울학기에 한 번 더 하는 것으로 이야기되었는데, 강의가 개설되면 수강생들의 글을 먼저 받아서 무엇이 문제인지 파악한 후 커리큘럼을 조정해야 할 것 같다.
이상은 강사로서 수업 내용을 평가한 이야기였고, 지금부터는 강의를 하면서 내가 경험하고 느낀 점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시작할 때는 여섯 명이었으나 마지막까지 글을 쓴 사람은 세 명이었다. 중도 포기자가 생긴 일은 강사로서의 내 자질을 의심하게 하는 큰 시험이었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은 사람들은 반드시 만족시키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결과적으로 소수 정예 수업이 되었는데 이는 수강생들이나 나에게나 더 나은 조건이 되었다. 글이 세 편씩만 제출되니 수강생들의 글을 꼼꼼히 피드백해줄 수 있었고, 그것이 수강생들에게는 개인지도 받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었다. 더 다양한 글이 공유되었다면 수강생들의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을 거라는 아쉬움은 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수업은 자신들의 장단점을 확실히 발견한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수강생들의 글을 읽으면서 큰 감동과 도전을 받은 것은 덤이었다.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어휘가 정확하지 않은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야기는 흥미롭고 글 속에 나타난 그들의 삶은 존경스러웠다. 내가 받은 감동을 수강생들도 서로에게 받았다는 것도 확인했다. 나는 이런 훌륭한 이야기들에 문법과 플롯이라는 옷을 입히면 최고로 근사한 작품이 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10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사람들에게 글을 쓰고 공유하는 설렘과 즐거움을 알게 해준 기간이었을 것이다. 내게도 바쁜 일정으로 중단되었던 글쓰기를 속행해야겠다는 동기가 생겼다. 수강생들의 글을 통해 글의 힘을 다시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나는 시간이 갈수록 수강생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들이 나에게 매시간 감사를 표현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들의 글 속에 나타난 아픔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둘 다일 것이다. 수강생들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이 일을 계속하기는 어려울 수 있으므로 그들을 사랑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그들을 사랑하면서 내가 행복해진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이다. 내 속에 행복감이 쌓이니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사랑이 더해지는 것을 느낀다.
4년 전 국민연금 책 쓰기 프로젝트를 마치고 글쓰기 전도사가 되기로 결심한 후, 나 자신이 제대로 된 길로 걸어왔다는 생각이 든다. ‘수북수북’ 독서 모임에서 함께 독후감을 쓰고 몇몇 기관에서 글쓰기 특강을 하면서 글쓰기의 유용성에 대한 확신이 깊어지고 나만의 글쓰기 철학이 조금씩 형성되어왔다. 합평 모임에도 두 번 참여했는데 합평 활동을 통해서는 내 글을 객관화하고 다른 사람의 글을 분석하는 시선을 갖게 되었다.
문자와 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경이롭게 느껴진다. 고미숙에 따르면 “존재는 늘 세계와 연결되기를 열망하고 있으며, 인간은 고립된 개별자인 적이 없었고 늘 집합적 지성으로”존재해왔다. 나는 문자를 배운 순간부터 과거와 현재 사람들이 구성한 집합지성의 세계 속으로 진입하여 그들과 연결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으니 더 큰 환희와 안도감이 몰려든다. “나는 세계의 일원이구나. 세계는 나를 받아주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나와 같은 기쁨을 느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언어도 문자에 담겨 불멸을 얻으면 좋겠다.